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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봉 오르는 길에서
 성제봉 오르는 길에서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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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다리를 건너고 섬진강변을 따라 이어진 국도 19호선으로 들어선다. 길 양편으로 봄을 기다리는 벚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얼마 남지 않았겠지?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그리워진다. 길가로 소설 <토지>의 무대로 너무나 유명한 최참판댁을 알려주는 표지판도 보인다.

오늘(1월 10일) 찾아갈 산은 하동 성제봉(聖帝峰. 1,115m)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내려온 능선은 촛대봉, 삼신봉을 지나고 시루봉을 거쳐 성제봉으로 솟았다가 섬진강과 만난다.

성제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섬진강변 외둔마을에서부터 능선 길을 따라 청학사로 돌아오는 12㎞정도 되는 산행 길을 택했다. 성제봉은 바로 옆에 똑같은 봉우리가 하나 더 있어 형제봉이라고도 불린다.

섬진강변 외둔마을로 올라서서

섬진강 변 외둔마을 공터에 차를 주차했다. 마을 유래를 적어놓은 외둔마을 표지석이 멋있게 서있다. 표지석에는 이 지역이 악양소상팔경(岳陽瀟湘八景)의 하나인 평사낙안(平沙落雁)과 같다고 해서 평사리라고 했으며, 평사리는 상평(上平), 외둔(外屯)을 합쳐서 구성되어 있다고 적고 있다. 외둔마을은 바로 위에 있는 고소성을 지키던 병사가 둔전(屯田)을 하던 둔촌(屯村)이었다고 한다.

섬진강 변에 맞닺아 있는 외둔마을. 감나무가 있고 메주가 익어가는 정감있는 마을
 섬진강 변에 맞닺아 있는 외둔마을. 감나무가 있고 메주가 익어가는 정감있는 마을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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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둔마을에는 등산로 표지판이 보이지 않는다. 산 능선에 팔각정이 보이는 걸로 봐서는 어디로든 올라가면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마을로 들어섰다. 초록색 망을 씌워 달아 놓은 메주가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다. 마을은 깨끗하고 편안하게 보인다.

마을을 지나고 대나무 숲을 관통하는 좁은 시멘트도로를 타고 산으로 오르니 등산리본이 보인다. 안개에 쌓인 네모로 잘 쪼개 놓은 악양벌이 넉넉하게 보인다. 사진으로만 보던 두 그루 소나무도 보인다. 날씨가 조금만 더 맑으면 좋았을 텐데.

산길을 따라가니 팔각정이 길을 막는다. 막아선 길 잠시 경치구경을 한다. 섬진강이 구불구불 산모퉁이를 돌아 나간다. 날이 추웠는지 강 가장자리로 하얗게 얼음이 얼었다. 다시 길을 잡고 올라서니 소나무 숲길이다. 소나무 사이로 살며시 들어선 햇살이 따사롭다.

너무나 깔끔하게 단장한 고소성

외둔마을에서 45분쯤 올라서니 하얀 성벽이 가로막는다. 사적 151호로 지정된 고소성(故蘇成)이다. 안내판에는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되어 있는 성으로 고령의 대가야(大伽倻)가 백제의 진출에 대비하면서 왜(倭)와의 교통을 위해 이곳에 성을 쌓았다고 적어 놓았다.

고소성에서 바라 본 섬진강과 악양들
 고소성에서 바라 본 섬진강과 악양들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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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다가갈수록 너무나 깔끔한 성벽은 의외로 감흥을 반감시킨다. 잘 다듬고 정비하는 것도 좋지만 세월의 고통을 제거해버린 복원은 좋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성벽에 앉아 잠시 쉰다. 바로 아래로 넓은 악양들판이 초록으로 물들 봄을 기다리고 있다.

성벽을 따라 걸어가니 소나무 한그루가 성벽 사이로 자라고 있다. 아름답다. 하지만 영양이 좋지 못한지 많은 솔방울을 달고 힘들어 하고 있다. 어렵겠지만 오래 살기를 바라며, 길을 재촉한다.

까마귀도 겨울을 보내기 힘들구나

산길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서 섬진강도 보여주고 넉넉한 악양들판도 보여준다. 가끔 전망 좋은 곳에 서면 커다란 마을도 보인다. 가야할 길로는 동그란 바위봉우리를 가진 신선대가 아득하게 보인다. '저곳까지 언제 가나.'

앞에 보이는 바위 봉우리가 신선봉. 맨 뒤에 솟은 봉우리가 성제봉
 앞에 보이는 바위 봉우리가 신선봉. 맨 뒤에 솟은 봉우리가 성제봉
ⓒ 전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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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한참을 가도 신선대와 가까워지지 않는다. 넘어서면 멀어지는 신선대. 산길은 이제 질린다. 산행을 시작한 지 2시간 반이나 지났다. 다리도 묵직하다. 더 이상 가면 힘들겠다. 점심도 먹을 겸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햇살 좋은 바위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산에는 까마귀가 조용한 산을 깨우고 있다. 얼마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한기가 몰려온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일어서자 까마귀 두 마리가 점심 먹은 장소로 날아든다.

아! 까마귀가 배가 고픈가 보다. 겨울 산에 먹을 게 적다보니 산행객들이 흘린 음식이라도 먹어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밥알이라도 많이 남겨둘 텐데. 남긴 것이라곤 고시래 했던 밥 한 숟갈이 전분데.

조용히 흐르는 저 강물도 정치인들에게는…

잠시 쉬었더니 조금 낫다. 힘을 내서 신선대로 향한다. 앞을 가로막은 바위 봉우리는 사이로 길을 열어 놓았다. 그 길을 따라 올라 웅장하게만 보이던 신선대 위에 섰다. 주변이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산과 강이 어울려 만들어낸 경치가 너무나 아름답다.

신선대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보니 섬진강변에서부터 걸어 올라온 능선길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신선대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보니 섬진강변에서부터 걸어 올라온 능선길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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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거리며 말없이 흘러가는 섬진강.
 구불거리며 말없이 흘러가는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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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 생기를 잃어버린 채 구불거리며 흘러가는 섬진강을 바라본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저 강물도 4대강 정비사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이 5대강 정비사업에 포함시켜 달라고 한다. 어떻게 하나. 어쩌면 저 아름다운 강변이 콘크리트 구조물로 말끔하게 단장되어 버린다면….

신선대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에 구름다리를 걸었다. 다리는 쇠줄에 나무로 바닥을 깔았다. 조금 걸어가니 무척 출렁거린다. 먼저 가던 아내는 장난치지 말라고 한다. 나는 아직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신선대 암 봉을 연결해 주는 구름다리. 무척 출렁거린다.
 신선대 암 봉을 연결해 주는 구름다리. 무척 출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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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봉 가는 길에 뒤 돌아본 신선대 풍경
 성제봉 가는 길에 뒤 돌아본 신선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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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보여주기 싫었니?

바위 봉우리를 몇 개 넘으니 키 작은 철쭉밭이 펼쳐진다. 가끔 가다 하나씩 보이는 푸른 소나무가 날 보란 듯 군데군데 서있다. 신선대만 넘으면 다 온 줄 알았는데 정상까지 1.5㎞를 더 가라고 한다. '아이고! 다리야.'

이미 많이 지쳐버린 발길로 힘들게 걸어간다. 완만하게 이어진 길은 지쳐버린 나에게 너그럽게 타이르는 것 같다. '나 이래봬도 1000m 넘는 산이야. 쉽게 오를 줄 알았어?'

성제봉 산행은 다른 산행과 많은 차이가 있다. 높은 산이라고 해도 산행 들머리가 높은 곳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실제로 올라간 높이는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성제봉은 섬진강변에서부터 바로 올라서니 1000m를 고스란히 올라간다고 해야 한다. 해발고도 1000m이상 오른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신선대에서 성제봉 가는 길에 펼쳐진 철쭉밭
 신선대에서 성제봉 가는 길에 펼쳐진 철쭉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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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봉 정상에 올라서서
 성제봉 정상에 올라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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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대에서 50분을 더 가니 바위 봉우리가 하나 보인다. 정상이다. 산행 시작한 지 4시간 10분 정도 걸렸다. 반갑기도 하지만 얄밉기도 하다. '이렇게 성제봉을 보여주기가 싫었니?' 정상에는 작은 표지석이 서있다. 바위에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한다. 바로 아래 까마귀들이 대여섯 마리 모여 있다. 너희들이라도 지키고 있으니 반갑다.

내려오는 길은 청학사까지 엄청 가파른 길이다. 급하게 경사진 길은 지친 다리를 휘청거리게 한다. 시간도 많이 지난지라 쉬지 않고 달려서 내려오듯 서둘러서 내려왔다. 1시간 반 정도 내려서니 청학사에 도착했고, 택시를 불러 외둔마을로 돌아왔다. 최참판댁도 들러보려고 했던 마음은 산행에 지쳤는지 다음 기회로 미뤘다.

덧붙이는 글 | 성제봉 올라가는 길 : 외둔마을 -(5㎞)- 신선대 -(2.4㎞)- 성제봉 -(4.7㎞)- 청학사, 총 산행거리 12.1㎞/ 6시간 소요

산을 넘어 돌아오는 길은 악양택시(055-883-3009) 이용하면 1만원(청학사-외둔마을)



태그:#성제봉, #형제봉, #고소성,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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