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폴로라이드 사진기를 보며 추억에 잠기신 유재천 할아버지
▲ 유재천 할아버지 폴로라이드 사진기를 보며 추억에 잠기신 유재천 할아버지
ⓒ 박창우

관련사진보기


어린 시절 '로망'을 하나 꼽아 보자면, 어린이 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을 거니는 것이었다. 한 손에 솜사탕이나 풍선을 들고 있으면 더욱 ‘그림’이 된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카메라다. DSLR이나 디지털 카메라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시절, 1회용 카메라는 가족 나들이의 필수품이었다.

조금 사는 집에서는 자동카메라를 들고 나오기 했지만, 어쨌든 필름을 넣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1회용 카메라와 다르지 않았다. '필카(필름 카메라)'의 묘미는 뭐니 뭐니 해도 온 가족이 둘러앉아 사진 한 장 한 장을 돌려보던 재미. 가끔은 빛 조절이 안 돼 하얗게 변해 버린 사진이 나오기도 하고, 사진 속 잘려나간 팔다리에 눈물 아닌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사진은 결국 추억의 다른 이름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이제 '디카(디지털카메라)'는 개인의 필수품의 돼 버린 지 오래다. 놀이공원이나 유원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사진사들은 하나둘 자취를 감췄고, 1회용 카메라와 필름을 팔던 사진관들도 하나 둘 문을 닫았다.

올해로 29년째, 전주동물원 내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유재천(64) 할아버지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난 19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동물원 사진관을 찾았으나 필름이나 1회용 카메라를 찾는 손님은 없었다. 가끔 꼬마아이들이 천 원 짜리 한 장을 쥐고 와서 뻥튀기를 사갈뿐이었다.

그간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부탁에 할아버지는 잠깐 생각에 잠기시더니 "좋을 때도 있었는데…"라며 자신의 과거사(?)를 풀어놓기 시작하셨다.

4명의 사진사, 이젠 혼자 남아….  

1978년 개원한 전주 동물원은 지방 동물원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규모있는 동물원으로 80~90년대에는 늘 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1980년 동물원에서 사진사를 시작한 할아버지는 당시 동물원 내에 자신을 포함해 4명의 사진사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때만 해도 동물원 찾는 사람이 많았고, 카메라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 4명이 사진을 찍어도 각자 먹고 살 정도가 됐어. 3-4사이즈 한 장에 300원에서 500원 받던 시절이었는데, 보통 단체로 사람들이 몰려오거든. 그래서 단체사진 찍고, 돌아가며 개인사진 찍고, 또 부부끼리 찍으면 엄청 많이 찍어. 한 팀에 보통 3만원씩 벌곤 했지."

당시 사진사들은 그렇게 찍은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사진이 나오면 미리 받아둔 주소지로 우편을 통해 사진을 보내는 방식으로 장사를 했다고 한다. 비록 4명의 사진사가 함께 구역을 나눠 장사를 했지만, 돈벌이가 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상황은 급속하게 달라졌다. 관람객들이 직접 카메라를 가지고 오면서 사진사를 찾는 횟수가 줄어만 간 것이다.

결국 함께 일을 해 온 사진사들은 각자 다른 일을 찾아 동물원을 떠났고 유재천 할아버지는 지금의 건물을 허가받고 세운 뒤, 필름과 1회용 카메라를 파는 일로 업종변경(?)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지금은 사진관이란 간판이 무색할 정도다. 뻥튀기가 효자 상품이라니 말 다했다.

"2~3년 전부터 필름을 찾는 손님이 완전히 끊겼어. 그전에 최고로 잘 나갈 때는 하루에 필름 200통도 나가고 1회용 카메라도 20~30개는 팔렸는데. 이젠 뭐, 사양 산업이지…. 사실 뻥튀기를 팔면 안 되는데, 어쩔 수 없는 거야.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까. 평일에는 교통비도 안 돼. 그나마 주말이나 날씨가 좀 풀리면 좋아지겠지만…."

유행 따라 즉석사진, 스티커사진기 마련도

1990년대 말 유행에 따라 사들인 스티커시진기. 지금은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 스티커사진기 1990년대 말 유행에 따라 사들인 스티커시진기. 지금은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 박창우

관련사진보기


넓은 동물원 안쪽으로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어나가던 할아버지는 옛 추억에 잠기셨는지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할아버지, 그럼 저 옆에 스티커 사진기는 언제 들여온 거예요?"

90년대 말, 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이미지 보정 작업과 각종 기능을 추가해 팬층을 넓혀 나가고 있는 스티커 사진기가 이곳에도 있었다. 기계 상태를 보니 왠지 90년대 말 초창기 버전인 듯싶었다.

"아~ 그거. 들여온 지 한 11년 쯤 됐나. 스티커 사진은 당시 최고의 인기였지. 그래서 나도 기계를 구입했어. 그것도 처음에는 많이들 찍더라고. 가족들도 와서 찍고, 학생들끼리 와서 찍기도 하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것도 시들하더라고. 5년 전 쯤부터는 그것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할아버지는 필름과 1회용 카메라만으로는 장사가 되지 않아 유행에 맞춰 스티커사진기를 구입했으나 잠깐 재미를 보고 말았다고 한다. 스티커사진기 구입에 앞서 할아버지는 80년대 중반 폴로라이드(즉석사진기)로 사진을 찍어주는 일을 하기도 했다. 역시 자구책의 일환이었다.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많이 찍었지. 폴로라이드의 매력이야 말로 바로 나오는 재미 아니겠어. 그때 당시에 한 장에 2~3천원씩 받았는데, 상당히 고가였지. 그래도 찾는 사람이 있었어. 물론 지금은 이마저도 없고.. 아주 가끔 요청이 있기 한데데, 한 장에 5천원이야. 찾는 사람이 없으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거든…."

사진이 좋아서 시작한 일, 이젠 안녕

전주동물원 내에 위치한 사진관. 필름보다 뻥튀기가 더 많이 나간다.
▲ 사진관 전주동물원 내에 위치한 사진관. 필름보다 뻥튀기가 더 많이 나간다.
ⓒ 박창우

관련사진보기


"혹시 다른 일을 생각해 보시지는 않았나요?"
"나이 들어서 다른 일을 찾기가 쉽나…. 그렇다고 놀 수는 없고. 이제는 그냥 하루에 한명의 손님을 받더라도 하는 거야, 그냥…. 그냥…."

평일에는 교통비를 벌기도 힘들고, 조그만 가게에서 종일 홀로 지내기가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짐짓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그 미소에는 처음에는 카메라에 대한 호기심에서, 그다음에는 사진을 찍는 거에 재미를 느껴서 시작한 일이지만 기술의 발달과 시대에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한 개인의 30년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다.

"그럼, 언제까지 계속 할 생각이세요?"
"몸도 예전 같지 않고, 한 2년 정도 생각하고 있어."

30년 가까이 전주동물원에서 일을 한 까닭인지 할아버지는 동물원 내부사정에도 밝았다. 동물원 운영권이 전주시에서 시설관리공단으로 넘어갈 거라는 소문과 함께 동물원에 얽힌 이런 저런 비화(?)를 들려주셨다. 문득,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30년 동안 동물원 안에서 생활했던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동물원으로 놀러오는 가족 연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행복한 순간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해왔던 만큼, 이제는 할아버지 스스로의 행복한 시간과 순간을 찾기 위해 애쓰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시 전주동물원을 찾게 되면 할아버지 얼굴에 웃음꽃 피어나도록 다함께 이말을 외쳐보자. 

"할아버지~김~치~!"

찰칵.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선샤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사진, #추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