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구층석탑 탑신의 몸돌에는 면마다 이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둔 기하학적 문양이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 운주사 구층석탑(보물 제796호)과 석불군의 모습. 구층석탑 탑신의 몸돌에는 면마다 이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둔 기하학적 문양이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역사 속으로 묻혀 버린 듯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간직하고 있는 천불천탑 운주사(雲住寺,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우리나라 여느 절과 달리 특이한 형태의 석불과 석탑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그 절이 어느 시대에 어떤 배경으로 세워졌는지, 또 창건의 주체 세력이 누구인지조차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흥미로운 불사이다. 

나는 지난 17일 중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서정일 선생님, 유치원에서 놀이 수학을 지도하는 조수미씨, 학원을 운영하는 김경옥씨와 함께 전라남도 화순군에 있는 천불산 운주사를 찾았다. 오전 8시 50분에 마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이 운주사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50분께였다. 2여년 전, 고정관념을 깨고 편견을 버려야 했던 그곳에서 기뻐서 큰 소리로 웃고 싶었고 좋아서 울고 싶었던 내 모습이 문득 그리움처럼 가슴을 촉촉이 적셔 왔다.

전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984년부터 1991년까지 네 차례에 걸친 발굴 조사와 두 차례의 학술 조사를 했지만 운주사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발견하지 못했다 한다. 그러나 고려 중기에서 말기까지 매우 번창했던 절로 추정되며, 현재 돌부처 70분과 석탑 18기밖에 남아 있지 않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미루어 천불천탑(千佛千塔)이 조선 초기까지는 분명히 있었다고 전해진다.

 
▲ 구층석탑(보물 제796호)의 탑신(塔身) 몸돌에 새겨진 특이한 문양.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탑신 몸돌에 'X'와 같은 보기 드문 무늬와 마름모꼴(측면) 형태가 장식되어 있다.
▲ 운주사 쌍교차문칠층석탑(전남유형문화재 제 277호) . 탑신 몸돌에 'X'와 같은 보기 드문 무늬와 마름모꼴(측면) 형태가 장식되어 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일주문을 지나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깔린 눈길을 느긋한 걸음으로 5분쯤 걸어가자 구층석탑(보물 제796호)과 석불군이 나왔다. 석불군은 암벽 위에 세운 작은 석탑과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 가슴에 두 손을 모은 독특한 손 자세(手印)를 취하고 있는 돌부처들을 볼 수 있었다. 위엄을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못생긴 얼굴로 무리 지어 자연 암벽에 기대어 있는 부처들이 왠지 친근하고 따뜻한 이웃처럼 내 마음속으로 성큼 들어앉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층석탑(보물 제796호)은 커다란 바윗돌을 지대석 겸 아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상층기단과 9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의 몸돌에는 면마다 이중으로 마름모꼴을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두는 기하학적 문양이 있어 운주사 석탑에서만 접할 수 있는 독특한 기법에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받침을 생략한 지붕돌 밑면의 문양 또한 여러 겹의 빗살무늬가 새겨져 있어 이색적이다.

운주사에서 유일하게 광배(光背)를 갖추고 있는 석불좌상(전남유형문화재 274호) 앞에 위치한 쌍교차문칠층석탑(전남유형문화재 제277호)의 탑신 몸돌에도 'X'와 같은 보기 드문 무늬와 마름모꼴 형태가 장식되어 있었다. 그런데 파격의 미에 빠져 감탄만 하고 있던 우리들에게 늘 긍정적인 사고를 지닌 서정일 선생님이 던진 한마디, 가위표가 싫다는 생각지 못한 유머에 모두들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했다.

석조불감은 두 부처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어 창조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 운주사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앞에서. 석조불감은 두 부처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어 창조의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 모두 원형이다.
▲ 운주사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 모두 원형이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들은 모든 형식이 파괴되었다고 할까.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의 전통적인 형식에서 벗어났을 따름이지 그 나름대로 일관성을 지니고 있어 더욱 신비스러운 것 같다. 두 부처가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석조불감(보물 제797호)과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앞에 이르자 진정 창조의 힘과 아름다움이 무엇인가가 몸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불감(佛龕)은 불상을 모셔 두는 방이나 집을 뜻한다. 운주사 석조불감은 팔작지붕 형태로 직사각형 감실 안에 판석을 세워 공간을 이분했다. 그 윗부분이 터져 있어 남북으로 통해 있고 양쪽에 불꽃무늬를 새겨 광배 역할을 하고 있다 한다. 등을 맞댄 감실 안 두 불상의 모습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아도 그저 놀랍기만 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 모두 원형인 원형다층석탑 또한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재 6층으로 남아 있지만 원래 몇 층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원형다층석탑이 원반 모양으로 호떡처럼 생겼다면 대웅전 뒤편에 있는 발형(鉢形)다층석탑(전남유형문화재 제282호)은 원구에 가까운 주판알이나 떡시루 모양이라 그 아이디어가 참으로 기발했다. 색다른 형태이면서도 전혀 눈에 거슬리지 않는 독특한 석탑 앞에서 운주사 석공들의 예술혼이 느껴져 나는 말할 수 없는 감동에 젖었다.

원구에 가까운 주판알이나 떡시루 모양이라 그 아이디어가 참으로 기발했다.
▲ 운주사 발형다층석탑(鉢形多層石塔, 전남유형문화재 제282호) . 원구에 가까운 주판알이나 떡시루 모양이라 그 아이디어가 참으로 기발했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 거북바위 밑에 있는 석불군.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천불천탑에 대한 신앙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하나의 절 안에 천불천탑이 봉안된 운주사는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게 되는 것일까. 통일신라 시대의 승려인 도선국사가 도력으로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과 함께 미완의 불사로 그대로 묻혀 버리는 것일까. 운주사에는 어찌하여 마치 우리들의 얼굴을 표현한 듯 남편 부처, 아내 부처, 아들 부처, 딸 부처 등으로 불리는 소박한 불상이 만들어졌을까. 

우리는 거북바위라 불리는 큰 암반 위에 서 있는 거북바위 오층석탑(전남문화재자료 제256호)과 거북바위 교차문칠층석탑(전남유형문화재 제 279호)을 거쳐 와형(臥形) 석조여래불(전남유형문화재 제 273호)이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도선이 천불천탑을 세울 때 마지막으로 그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 했으나 새벽닭이 우는 바람에 공사를 그만 중단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유명한 석불이다.

세계 어디에 결가부좌한 형태로 누워 있는 불상이 있을까? '와불이 일어나는 날에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이 마치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정도였다.
▲ 와형(臥形) 석조여래불(전남유형문화재 제 273호). 세계 어디에 결가부좌한 형태로 누워 있는 불상이 있을까? '와불이 일어나는 날에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이 마치 전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정도였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과연 세계 어디에 결가부좌한 형태로 누워 있는 불상이 있을까? 민초들 사이에 '천 번째 와불이 일어나는 날에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을 정도로 와형 석조여래불은 운주사의 많은 석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미완성 석불좌상과 입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와불이 있는 곳 입구에 머슴 부처가 서 있다. 와불을 지킨다 하여 시위불, 또는 상좌불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공사에 싫증난 상좌가 거짓 닭 울음소리를 내서 도선국사의 천불천탑 공사를 그르쳐 돌부처가 되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 북두칠성이 지상에 그림자를 드리운 듯한 칠성바위를 보러 우리는 내려갔다. 7개 원반형 바위의 지름이 북두칠성의 밝기와 비례하고 배열 상태 또한 북두칠성과 흡사하다는 칠성바위를 이리저리 쳐다보며 감탄사만 연발했다.

7개 원반형 바위의 지름이 북두칠성의 밝기와 비례하고 배열 상태 또한 북두칠성과 흡사하다 한다.
▲ 칠성바위와 칠층석탑(전남유형문화재 제281호). 7개 원반형 바위의 지름이 북두칠성의 밝기와 비례하고 배열 상태 또한 북두칠성과 흡사하다 한다.
ⓒ 김연옥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천불천탑의 비밀을 간직한 운주사를 뒤로하고 하얀 눈길을 따라 걸어 나왔다. 마침 운주사에 사는 개가 일주문 밖까지 놀러 나와 있었다. 개 이름도 '운주'이다. 우리는 맛있는 소시지를 사 주고 '운주'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꽃 피는 아침에는 절을 하여라
피는 꽃을 보고 절을 하여라
걸어가던 모든 길을 멈추고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서서
부처님께 절을 하듯 절을 하여라

꽃 지는 저녁에도 절을 하여라
지는 꽃을 보고 절을 하여라
돌아가던 모든 길을 멈추고
헤어졌던 사람과 나란히 서서
와불님께 절을 하듯 절을 하여라

 - 정호승의 '운주사에서' 전문

그리고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에 있는 한 음식점에 들러 꼬막정식을 사 먹었다. 1인당 만원으로 삶은 통꼬막에 꼬막 회무침, 양념 꼬막, 꼬막전, 꼬막탕이 줄줄이 나온다. 예전에 한번 맛보고 그 맛을 도저히 못 잊어 다시 찾았는데 이상스레 예전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순천만 갈대밭 구경을 한 뒤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또 달리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광주(12km)→화순(10km)→능주(5.1km)→평리사거리(2.4km)→클럽900(2.8km)→도장리(8km)→도암삼거리(3km)→운주사(50분 소요)



태그:#운주사, #천불천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