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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자가 있다.

- 재즈를 좋아해서 재즈 음반만 750장을 소유하고 있다.
- 흰색 컨버터블 승용차를 몰고 다닌다.
- 베스트 드레서라는 말을 들을 만큼 옷 입는 센스가 뛰어나다. 지난 번 크리스마스 파티 땐 빨강 체크 무늬 자켓과 초록 바지를 입는 탁월한 패션 감각을 과시하기도 했다.

블레인이 정기구독하고 있는 잡지들.
 블레인이 정기구독하고 있는 잡지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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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아침 인터넷으로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USA투데이> <리치몬드 타임즈> <배런스>를 읽는다.
- <포브스> <포천> <스마트머니> <비즈니스위크> <배런스> 잡지를 정기 구독한다.

- 재택근무를 하면서 자신의 고객 자산을 관리해 준다.   
- 대학에서 경제학, 경영학을 가르쳤고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일한 적도 있다.

어떤 남자인지 그림이 그려지는가. 대단히 모던한 느낌의 보보스족을 연상시키는 남자. 여기까지만 읽어도 이 남자를 만나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것이다. 남자에 관한 묘사는 계속된다.

- 남자가 최근에 읽은 책은 작년 12월에 출간된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스(Outliers : The Story of Success)>다. 오래 전에 읽은 케케묵은 책을 최근에 읽은 책이라고 소개하지 않을 만큼 책과도 친하다.     
- 남자가 건네는 말에는 늘 배꼽을 잡게 할 유머가 넘쳐난다. 그래서 이 남자와 얘기를 하고 있노라면 엔도르핀이 솟는다.

- 큰 키에 건강미를 자랑하는 남자는 과거에는 수영, 테니스, 골프 등을 즐겨 했고 요즘엔 옥시사이즈(Oxycise) 운동 전도사로 불릴 만큼 옥시사이즈에 빠져 있다. 
- 재즈를 들으면서 마시는 한 잔의 붉은 와인이 남자의 하루 끝을 알린다.

남자에 대한 느낌이 어떠한가. 만약 그대가 미혼 여성이라면 이 남자를 만나보고 싶다고 소개해 달라고 기자에게 요청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 된다. 왜냐고?

남자에게는 2년 전 크리스마스 때 '아이팟'을 선물한 여자, 부인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에 관한 이 글을 읽으면서 눈치챘겠지만 이 남자,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자, 그럼 이쯤에서 남자에 관한 묘사를 마치고 직접 남자를 만나보시라. 

혀수술을 받은 뒤여서 몸이 좋지 않았던 블레인의 지난 3일 모습. 하지만 패션 감각은 여전히 뛰어나다.
 혀수술을 받은 뒤여서 몸이 좋지 않았던 블레인의 지난 3일 모습. 하지만 패션 감각은 여전히 뛰어나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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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블레인 샐쳐
나이: 94세(1916년생)
직업: 투자 상담가 (과거 직업이 아닌 현재 직업임)
가족: 아내 팻. 결혼한 딸

사진 속의 블레인 모습과 아흔 넷이라는 그의 나이를 보고 혹시 놀랐는가. 나는 그랬다.

작년 여름,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와서 바로 옆집에 사는 블레인 부부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친정 부모와 비슷한 연배인 70대 부부로 봤다. 아니, 내 부모보다는 조금 젊은 부부인줄 알았다. 왜냐하면 차고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이들 부부의 모습이 영락없는 영화배우였기 때문에. 천장이 뚫려서 하늘을 구경할 수 있는 흰색 컨버터블 자동차, 원색 티셔츠, 멋진 썬그라스, 다정한 포즈.

지난 12월 크리스마스 파티 때 초대를 받아 블레인 부부 사진을 찍었다. 블레인은 빨강 체크 무늬 자켓에 초록 바지를 입는 감각을 과시했다.
 지난 12월 크리스마스 파티 때 초대를 받아 블레인 부부 사진을 찍었다. 블레인은 빨강 체크 무늬 자켓에 초록 바지를 입는 감각을 과시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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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서야 블레인의 나이가 아흔이 넘은 걸 알고 깜짝 놀랐던 기자는 ‘아흔 넘은 이 남자의 젊게 사는 법’을 취재하고 싶었다. 그래서 블레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인터뷰는 지난 3일 그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인터뷰에는 그의 아내인 팻이 통역(?)으로 자리를 함께 했다. 왜냐하면 블레인은 원래 청력이 좋지 않아 50대부터 보청기를 착용해 왔고 인터뷰 며칠 전에는 혀 수술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팻은 블레인의 두 번째 부인이다. 금혼식을 치렀던 첫 부인과는 십여 년 전에 사별 했고 다시 만난 여성이 바로 팻이다.

그의 집에서 한 시간 동안 인터뷰를 했고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이메일을 통해 부족한 내용을 주고받았다. 그의 장수 비결을 정리해 본다. 

재택 근무를 하는 94살 투자 상담가 블레인의 책상.
 재택 근무를 하는 94살 투자 상담가 블레인의 책상.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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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퇴가 없다

블레인의 과거 경력은 화려하다. 젊은 시절, 펜실베이니아 주에 있는 리버럴 아트 컬리지인 게티스버그 대학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가르쳤던 그는 교수직을 그만 둔 뒤 미국 금융의 1번지라고 할 월스트리트에서 수 년 간 일을 했다. 블레인이 '풀타임' 직장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한 것은 1990년. 하지만 그에게는 사실상 은퇴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 뒤로도 블레인은 파트타임으로 계속 일을 해 왔기 때문이다.

현재 블레인의 직업은 투자 상담가이다. 많지는 않지만 몇 명의 고객이 그에게 돈을 맡겨둔 상태다. 그는 자신의 고객 자산을 최대로 불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시사 경제 관련 일간지와 주간지를 꾸준히 읽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아날로그 세대인 1916년생 블레인이 디지털 세대의 총아인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를 찾고 재택 근무를 하면서 모든 업무를 인터넷으로 처리하고 있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블레인의 서재에는 경제 관련 책이 많다.
 블레인의 서재에는 경제 관련 책이 많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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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앙은 내 생활의 근간

블레인의 현재 생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신앙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블레인은 동네에서 '가시(Thorn) 클럽'을 조직하여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시클럽은 성경 <고리도후서 12장 7절>에 나오는 "너무 자고(自高)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使者)를 주셨으니"에 나오는 것처럼 정신적, 또는 육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65세 이상 되는 장년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한 달에 두 번씩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자신이 가진 고통이 자신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 나누면서 좋은 신앙 서적을 선정해 독후감을 발표하기도 한다.

또한 책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창조한 목적에 부합되는 인생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등을 나누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블레인이 회원들에게 나눠주는 유인물에는 늘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간다.

"PBPGINFWUY"

암호 같이 생긴 알파벳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제발 인내하세요. 하나님은 아직 우리에 관한 일을 완성하지 않으셨습니다(Please Be Patient, God Is Not Finished With Us Yet)."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이들 크리스천들의 독실한 신앙심을 엿볼 수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 파티 때 블레인은 이웃들과 가시 클럽 멤버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지난 크리스마스 파티 때 블레인은 이웃들과 가시 클럽 멤버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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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산소 운동과 재즈, 그리고 붉은 와인

젊었을 때 수영과 테니스, 골프 등을 즐겨 했던 블레인은 나이가 든 후에 이런 운동을 계속 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옥시사이즈(Oxycise). 기자에게도 적극 이 운동을 권유할 만큼 옥시사이즈에 대한 믿음은 확고하다.

블레인은 부인과 함께 호흡을 조절하면서 이 운동을 한다. 크게 힘들지 않아 나이든 사람에게는 굉장히 좋다고 한다.

또한 블레인이 즐기는 것은 음악 감상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재즈광인 블레인은 좋은 음악을 들으면서 잠자리에 들기 전, 한 잔의 붉은 와인을 마신다. 재즈와 와인은 그에게 삶의 에너지를 주는 요소다. 

재즈를 들으면서 마시는 한 잔의 붉은 와인은 블레인에게 활력을 준다.
 재즈를 들으면서 마시는 한 잔의 붉은 와인은 블레인에게 활력을 준다.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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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름다운 여성과의 동행

블레인의 아흔 넷 인생에는 늘 헌신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이 곁에 있었다. 이들은 블레인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블레인의 부모는 그가 4살 때 이혼을 했다. 그래서 싱글맘인 어머니 손에서 어렵게 자랐지만 아들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 덕분에 어긋나지 않고 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어머니 외에도 블레인에게는 아름다운 여성이 또 있었다. 바로 아내다. 결혼 50주년 기념식인 금혼식까지 치렀던 첫 번째 아내와는 딸 하나를 낳았고 결혼한 그 딸은 블레인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이따금 딸네 가족이 그의 집으로 찾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아내가 죽은 뒤 블레인은 재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두 번째 부인인 팻과의 로맨스 역시 대단히 흥미롭다. 팻은 원래 블레인이 일하고 있던 회사의 직원이었다. 미혼이었던 팻은 점잖고 매력적인 상사 블레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냥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일 뿐이었다.

그 뒤로 팻은 블레인의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팻은 갑자기 옛 상사로부터 연락을 받게 된다. 혼자가 된 블레인과 미혼이었던 팻의 운명적인 재회가 이루어지고 블레인은 팻에게 정식 청혼을 하여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19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은 뒤늦은 사랑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팻은 결혼한 뒤 두 번이나 암수술을 받는 시련을 겪게 된다. 그 때 블레인은 건강 때문에 요가를 시작한 아내를 위해 크리스마스 때 '아이팟'을 선물하는 깜찍한(?)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75살 부인 팻에게 '아이팟'을 선물한 94살 블레인.
 75살 부인 팻에게 '아이팟'을 선물한 94살 블레인.
ⓒ 한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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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넷 블레인에게는 이렇게 특별한 장수 비결이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굳이 비결을 말하라고 하면 블레인이 좋아하는 P로 시작되는 세 개의 단어 '긍정적인(Positive), 가능한 (Possible), 목적이 있는(Purposeful)' 태도가 답이 될 것이다. 

즉, 블레인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자신이 살아야 할 목적도 분명히 알고 있고. 거기에 덧붙여 감사하는 태도, 풍부한 유머를 구사하는 것도 그의 장수 비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태그:#블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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