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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담배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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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양말을 벗었다. 그 다음 바지, 스웨터를 벗고 메리아스까지 벗었다. 이제 팬티만 벗으면 '알몸'이 된다.

'혹시! 연애소설에 등장하는 장면이 아닌가' 하는 야릇한 상상을 하는 분이 있을 터. 하지만 아니다. '아담'들만 득실거리는 남자 목욕탕에서 옷 벗는 순서를 나열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필자인 내가 목욕탕에서 옷 벗은 순서다. 

설을 이틀 앞둔 24일, 동네 목욕탕에 갔다. 오래전부터 벼르고 또 벼른 일이다. 목욕탕 한번 가면서 웬 호들갑이냐고 타박하는 분도 있을 터. 맞다. 설 앞두고 목욕탕 가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행사라고 벼르고 또 벼르겠는가!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 이틀 후면 다섯 살이 되는 아들 녀석과 함께 였다.

난 아들 얻고 싶어 환장한 놈도 아니고 '남아선호사상가' 는 더더욱 아니다. 또, 딸만 둘 있는 친구 녀석 '딸딸이 아빠'라고 놀리며 목에 힘을 주는 그런 부류는 더더욱 아니다. 이번 설이 지나면 열두 살이 되는 첫 딸을 둔 이후 장장 7년 만에 둘째 녀석을 보았지만 그 동안 단 한번도 '아들타령'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해 하는 그런 부류다. 아내도 나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아들 녀석 손잡고 목욕탕 가서 등 밀어 주고 고사리 같은 손에 등 밀리는 것이다.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드디어 아들 녀석 손잡고 동네 목욕탕으로 향한 것이다.

소원 풀려고 찾은 동네 목욕탕

담배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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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배기 아들 녀석은 옷 벗을 생각은 하지 않고 목욕탕 옷장 열쇠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동그란 열쇠고리에 숫자가 쓰여 있는 것이 제 딴에는 신기한 모양이다.

"호연아 이제 옷 벗어야지?"
"아빠 이거(옷장 열쇠) 나 가져도 돼?"
"안돼 저 아저씨 거야.(구두를 닦는 분)"

눈치 빠른 아저씨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쇠 아저씨 거야 가져가면 안 돼~" 라며 한마디 거든다. 그제 서야 호연이 녀석은 열쇠를 놓고 두리번거리며 탈의실 '탐험'을 시작한다. 아마도 옷을 벗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호연이도 나처럼 목욕하는 것을 좋아 하지 않는다. 

벗지 않으려고 버티는 아들 녀석 옷을 반 강제로 벗기고 목욕탕에 들어설 때 쯤,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온 것을 무척 후회하게 만드는 모습이 목격됐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중년 남성이 비좁은 탈의실 안에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목욕탕 관계자 그 누구도 담배 피우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목욕탕은 손님들로 붐볐다. 특히,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들도 꽤 많았다.

'거 보소, 담배 좀 끕시다. 공공장소 아닙니까? 애들도 많은데 ......거 참' 이라는 말이 목 까지 차 올라왔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난 심사가 조금이라도 뒤틀리면 그 자리에 쏘아 버리는 그런 성격은 아니다. 어느 정도 까지는 참는 편이다.

호연이 녀석은 연신 기침을 해 댔다. 담배 연기가 무척 거슬리는 모양이다.  난 8년 전 담배를 끊었고 아내는 담배를 배운 적이 없다. 때문에 아들 녀석은 담배 연기를 거의 맡아 본 적이 없다. 실내,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맡는 담배 연기가 무척 고통스러운 모양이다.

잠시, 목욕 포기하고 그냥 나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방금 지불하고 온 목욕비가 너무 아까웠다. 주인에게 항의하고 환불해 달라고 할까 고민했다. 그것도 마뜩치 않다. 이 동네에 사는 동안은 수시로 얼굴 부딪힐 사람이기에.

결국, 목욕탕 안으로 도망치는 길을 선택했다. 아들 녀석 손을 재빨리 잡아끌고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한번 언짢아진 기분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집에서 샤워 하듯이 몸을 씻고 다시 나왔다.

아뿔싸, 탈의실에서 두 명이나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조근조근 담소까지 나누면서. 난 아들 녀석 손을 잡고 도망치듯 탈의실을 빠져 나왔다. 집에 오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벼르고 별러서 목욕탕을 간 것인데 담배 때문에 망친 것이다.

동네 목욕탕에는 약 2년 전에 가보고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쯤은 담배를 피우지 않을 줄 알았다. 목욕탕에서 까칠하게 따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그 후회를 이 글로 푼다. 이 글을 읽고 공공장소에서 특히, 목욕탕 탈의실에서 담배 피우는 분들이 '각성' 했으면 좋겠다. 알몸으로 담배 피우는 모습, 절대 멋있어 보이지 않는다.  

알몸으로 담배 피우는 당신, 정말 비호감이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기사가 안양뉴스와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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