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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찾은 인천국제공항의 각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잇고 있다.
 25일 찾은 인천국제공항의 각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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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이요? 여기선 느낄 수 없는 거 같아요."

설을 하루 앞둔 지난 25일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 안내데스크에서 만난 이아란씨의 말이다. 많은 출국자와 만나는 그는 "작년 설과 비교해서 줄어들기보다는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와 불과 몇 마디 나눴을 뿐인데, 곧 기자 뒤로 안내데스크를 찾아온 사람들이 늘어섰다.

이씨는 "어제(24일) 5만명이 넘었다는 출국자수를 듣고 깜짝 놀랐다, 보통 4만명만 넘어도 출국자수가 많다고 한다"며 "어려워도 나가는 사람은 나가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 23일 4만6천명, 24일 5만1천명, 25일 3만4천명이 출국했다. 이는 지난해 추석 연휴 중 가장 많은 출국자수(3만7309명)를 기록한 9월 12일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설 연휴와 비교해도 이번 설 연휴 출국자 수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이번 설 연휴를 포함한 1월 23일부터 28일까지 출국예상자 수는 22만990명. 연휴가 하루 더 길었던 지난 설 연휴 출국자수 21만9035명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통계가 말하듯, 이날 인천국제공항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골프여행 가는 사람들 "우리가 외국에서 써야, 외국인들도 한국 온다"

 25일 인천국제공항은 골프여행객 등 많은 출국자들로 붐볐다.
 25일 인천국제공항은 골프여행객 등 많은 출국자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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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명절 연휴 전날과 첫날의 출국장은 언제나 붐비기 마련이다. 올 설에는 연휴 두 번째 날인 이날 오전에도 각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잇고 있었다. 이날 저녁에도 같은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출국장 동·서쪽 끝 편에 있는 여행사 만남의 장소는 다소 한가한 낮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북적였다. 단체여행객들이 여행사 직원을 만나 각종 출국 서류를 받은 후, 체크인 수속에 나섰다. 여행객들의 짐이 뒤엉키는 등 번잡한 모습을 보였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다른 지역의 경우, 여행객이 30%가량 줄었지만, 중국·동남아 쪽은 그래도 선방하고 있다"며 "여행사에서도 비자 비용만 남기며 특가를 내놓는 등 여행객 유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세부 퍼시픽 항공사 체크인 카운터에는 긴 줄이 늘어졌다. 필리핀 세부에서 4박 5일 동안 머무른다는 김영훈(가명·50)씨는 "가족 다섯 명이서 가는데 경비로 800만원을 예상한다"면서 "이때 아니면 시간 내기 어려워 부담돼도 여행 다녀오려 한다"고 말했다.

타이항공 체크인 카운터에도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잇고 있었다. 많은 이들의 카트에는 골프채 가방 한두 개씩은 눈에 띄었다. 그 가방에는 '해외골프투어 전문 ○○여행사'라고 쓰여 있었다. 박해영(가명·47)씨는 "1인당 경비 100만원씩 모두 8명이 골프 치러간다"며 "6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놓아서 크게 부담은 없다"고 전했다.

이형진(가명·50)씨는 "서울 근교 골프장에선 18홀에 25만원이지만 태국에선 10만원이면 호텔에 머물려 골프를 마음껏 칠 수 있다"며 "한국에선 겨울에 골프를 못 치니 매년 이맘 때 나갔다, 이번에도 연휴 이용해서 일주일동안 다녀오려고 한다"고 말했다.

경기 불황과 환율 상승으로 부담스럽진 않을까? 그는 "태국 골프장에선 할인을 많이 해줘, 비용은 작년과 비슷하고, 환율이 오른 걸 감안하면 오히려 싸게 가는 것"이라며 "우리가 외국 가서 써야 외국인들도 우리나라에 돈을 쓰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환율 상승으로 큰 부담... "서민 사정 고려해달라"

 25일 인천국제공항은 많은 출국자들로 분주했다.
 25일 인천국제공항은 많은 출국자들로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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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 만난 여행객 중 이씨처럼 "환율 상승이 부담되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은 소수였다. 많은 이들이 환율 상승에 대한 부담과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해외에 자주 나가는 사람들은 "예전과 비교하면 환율이 많이 올라 부담이 크다"고 밝혔다.

이날 가족과 함께 유학을 떠난다는 이진영(가명·37)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앞으로 4년간 캐나다에서 박사과정을 밟는다"면서 "2000년 캐나다에 체류할 땐 1캐나다달러 당 700원이었는데, 지금은 1100~1200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덧붙여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부담이 많이 된다, 안 쓰는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수출을 위해서 환율 정책을 썼는데, 뚜렷한 결과가 없지 않느냐. 많은 사람, 특히 서민들의 사정을 고려해주었으면 좋겠다."

고향인 중국 랴오닝성 안산에서 설을 쇠려는 중국동포 박진용(51)씨는 환율부담 때문에 싼 여행사를 선택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중국 교포 대상으로 하는 한 여행사에서 1달 전 왕복 비행기 표를 끊었다. 38만원인데 10만원 깎아준다고 했다. 입금하고선 오늘 오전 6시에 나와 봤더니, 표가 없단다. 알고 보니 여행사에서 표를 못 구한 상태였다. 여행사에서는 밤 9시 30분까지 기다려보라는데, 표가 있을지 모르겠다."

중국 동포·이주노동자 "일자리 없어 떠납니다"

그래도 강원도 원주에서 불도저 운전을 하고 있다는 박씨의 사정은 다른 중국 동포나 이주노동자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이날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출입국민원실에는 기약 없는 출국을 선택한 이들로 분주했다.

한국 땅을 밟은 지 10년 만에 방글라데시로 떠나는 사자한 알리 바드사(30)씨도 그들 중 하나다.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5년간 불법체류했는데, 문제가 없다는 확인을 받았다"면서 "1시간 뒤에 떠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떠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경기도 광주 침대공장에서 일했다. 예전에는 오전 8시부터 밤 9시까지 주6일 일하면서 170만원을 벌었다. 80만원씩 고향에 보냈다. 하지만 이젠 낮 12시까지 일할 때도 많다, 많아야 한 달에 100만원 번다. 환율도 올라 고향의 부모님이 받는 돈은 훨씬 더 적어졌다. 일이 많다면 떠나지 않는데…."

랴오닝성 선양이 고향인 중국 동포 백종학(가명·39)씨도 일이 없어 한국을 떠난다. 그는 "몇 년 전까진 공사판에서 한 달에 27~28일 일해 일당 12만원씩 300만원 넘게 벌었다"며 "요샌 한 달에 보름 나가는 날도 적고, 나가도 일당 7만원짜리 자리만 있다"고 말했다.

백씨는 이어 "어떻게든 한국에서 버텨보려고 했지만, 너무 힘들다"며 "다시 한국 경제가 좋아지는 날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비행기 시각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서둘러 민원실을 떠났다.

그 시각에도 민원실엔 중국 동포와 이주노동자들이 끊임없이 몰렸다. 필리핀항공·베트남항공 등 동남아시아 항공사 발권 카운터 관계자는 "여행객들보다는 부인과 함께 처가를 찾는 국제결혼자, 고향에서 설을 쇠려는 중국 동포, 귀국하는 이주노동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행 비행기에는 여행객들의 설렘보다는 경기 불황으로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의 한숨이 더 많이 실렸다. 분주했던 설날 연휴의 인천공항은 불황 속 나홀로 호황의 모습이 아니라, 경기 불황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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