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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한국의 독자들

 

.. 미우라 여사는,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이 책이 읽히게 되어 참으로 영광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미우라 아야코/김찬국 옮김-좁은 문을 향하여》(삼민사,1978) 1쪽

 

 ‘독자(讀者)’는 그대로 둘 수 있지만, 바로 다음에 “이 책이 읽히게”라고 나오니 덜어낼 때가 한결 낫습니다. ‘영광(榮光)스럽고’는 ‘뿌듯하고’나 ‘반갑고’나 ‘고맙고’로 다듬어 줍니다.

 

 ┌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

 │→ 한국에 있는 분들한테도

 │→ 한국에 계신 분들한테도

 │→ 한국 분들한테도

 └ …

 

나라밖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분들은 으레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하고 인사말 첫머리를 엽니다. 때때로 “고국의 동포 여러분” 하고 말하는 분이 있기는 합니다. 서울에 있는 분들은 “지방에 사는 분들”한테 이야기를 합니다. 드물게 “지방의 분들”한테 말하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 학교의 아이들 (x)

 └ 학교에 있는 아이들 / 학교에서 배우는 아이들 /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o)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수많은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 학교에 남아서 교과서와 참고서를 파고들게 됩니다. 가만히 보면, 고3 아이들은 시험을 앞둔 때뿐 아니라 언제나 학교에 오래도록 갇혀 지냅니다. 고3 아이들뿐 아니라 고1과 고2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한 가지만 바라보도록, 대학교만 바라보도록 맞추어져 있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다른 꿈을 꾼다거나 다른 길을 찾게끔 이끈다거나 도와주지 않아요. 대학교에 가지 않고도 꿈을 꿀 권리란 처음부터 없고, 대학교를 홀가분하게 털어내면서 자기 길을 걸어갈 권리 또한 처음부터 없습니다.

 

 ┌ 시골의 아이 (x)

 └ 시골에 있는 아이 / 시골에 사는 아이 / 시골아이 (o)

 

어쩌면, 우리들은 세상에 처음 태어나던 날부터 ‘대학교 바라보기’만 하도록 길들여지는 가운데, 대학교라는 문턱을 넘으면 ‘돈만 벌고 꾸리는 삶’에 매이도록 이끌리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길들여지고 이끌리면서, 우리 둘레를 찬찬히 돌아보는 눈은 처음부터 잃게 되고, 우리 생각을 담아내는 말 한 마디 헤아리는 가슴 또한 처음부터 내버리게 되지 싶어요. 사람들 마음마다 깃들어 있는 빛을 사람들 스스로 놓치고, 사람들 몸마다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사람들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고 할는지요.

 

ㄴ. 대중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

 

.. 오로지 대중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막는 부도덕한 조직만이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  《레프 톨스토이/조윤정 옮김-국가는 폭력이다》(달팽이,2008) 77쪽

 

“자유로운 의사(意思) 표현(表現)을 막는”은 “자유로운 생각을 막는”이나 “자유로이 말하지 못하게 막는”으로 다듬습니다. ‘부도덕(不道德)한’은 ‘나쁜’이나 ‘몹쓸’이나 ‘그릇된’으로 손보고, ‘조직(組織)’은 ‘무리’나 ‘모임’으로 손봅니다.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는 겹치기이니 “사라지거나 없어지리라”로 손질해 줍니다.

 

 ┌ 대중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막는

 │

 │→ 대중이 자유로이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게 막는

 │→ 대중이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지 못하게 막는

 │→ 대중이 거리낌없이 생각을 나타내지 못하게 막는

 └ …

 

‘의사’란 ‘생각’입니다. ‘표현’이란 ‘나타냄’입니다. “의사 표현”이란 “생각을 나타냄”이고 생각을 나타내는 일이란, 말하고 글쓰는 일입니다.

 

 ┌ 사람들이 마음껏 말하고 글쓰지 못하게 막는

 ├ 사람들이 제 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내지 못하게 막는

 ├ 사람들 누구나 제 생각을 꾸밈없이 나누지 못하게 막는

 └ …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자유와 민주가 어우러지는 곳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법으로 이렇게 적혀 있고, 정치꾼과 언론인과 경찰 모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다만, 이들은 한 가지 토를 답니다. ‘사회를 어지럽히지 않는다’면 말입지요.

 

그러면 어떤 일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어떤 일이 사회를 안 어지럽힐까요. 어떤 일이 사회를 어지럽힌다고 여기기에 자기 뜻대로 말할 수 없고 자기 마음대로 글쓸 수 없으며 자기 생각대로 일할 수 없을까요.

 

우리는 어이하여 우리 스스로 ‘말로 말썽거리를 풀지’ 못하고 몽둥이로 짓눌러 버리려고 할까요. 우리는 어찌하여 우리 스스로 ‘주먹을 안 쓰면서 다툼을 풀려 하지’ 않으면서 힘과 이름값과 나이와 신분 따위로 억누르려고 할까요.

 

 ┌ 사람들 입과 귀와 눈을 막는

 ├ 사람들 입에 재갈을 물리는

 └ …

 

오늘날 우리 말과 글이 어지럽다면, 무엇보다도 우리 세상이 어지럽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오늘날 우리 말과 글이 계급에 따라 나뉘어 있다면, 우리 세상이 계급에 따라 사람을 나누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 쓰는 논문 말투가 한자 그득한 말투가 아니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탓도, 여느 사람하고는 동떨어질 뿐더러 구름 위로 올라가면서 낮은자리 사람들을 내려다보도록 해야 권력을 이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일 테며, 이러한 까닭에 우리 말과 글 또한 자꾸자꾸 찌들고 주눅들고 비뚤어지고 곪아터진다고 느낍니다.

 

사람을 푸대접하니 말도 푸대접하고, 영어권 나라를 우러르니 영어를 우러릅니다. 영어권 나라를 우러르는 만큼 이 나라 여느 사람은 깔보게 되고, 영어 쓰는 사람을 높이 여기는 만큼 우리 말을 알맞거나 올바르게 쓰는 일에는 스스로 젬병이 되면서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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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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