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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鄕校)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국가에서 세운 교육기관입니다. 고려,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중앙의 사부 학당과 같은 역할을 했으며, 조선 중기 이후 서원(書院)이 발달하자 그 기능이 약화되었다 합니다.

 

 

그런 향교가 인천의 진산인 계양산 아래 자리한 것은 고려 인종 5년(1127년)때입니다. 그런데 병자호란(1636)으로 건물이 소실되자 다시 지었고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18세기 이후 세워진 것으로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다 합니다. 현재 향교에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동.서 양무, 동.서 양재, 내삼문 등입니다. 전사청과 공수고 등의 건물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향교 내 건물 배치는 한국 향교의 전형적인 전당후묘(前堂後廟)의 방식을 취하고 있고, 명륜당 등 교육시설을 앞에  놓고 그 뒤에 대성전과 동.서무의 문묘 시설을 배치해 두고 있습니다. 명륜당은 학생들을 상대로 강학이 이루어지던 곳이고, 재실은 유학생들이 기숙하던 곳이며, 대성전은 공자를 위시한 중국의 성현들을 배향한 곳입니다. 동.서무에는 한국의 성현을 배향하는데 부평향교에는 최치원 등 역대 유생이 배행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의 기능은 없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습니다. 부평향교는 향교재단이 소유.관리하고 있고, 1990년 11월 인천시의 시도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지역문화재 찾아보기'의 일환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겨울내내 자전거를 타고 인천 서구와 계양구 일대의 문화재를 우선 탐방하고 있어, 날이 풀린 어제(29일)는부평향교를 찾았습니다. '인천 계양구 계산동 982-1'에 숨어있는 부평향교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실 경우, 인천지하철 경인교대역에서 내려 5.6번 출구로 나와 교대길을 따라 오르다가 주택가 골목길로 접어들어 '고향골쉼터'를 찾아가시면 됩니다. 밀집한 주택가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어느 골목길로 나아가도 향교에 이르게 됩니다. 부평향교 견학시간은 평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주말에는 오후 3시까지오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단체 견학시에는 향교를 관리하는 곳에 미리 연락을 취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찾아갔던 어제 오후에는 향교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솟을삼문의 아담한 나무문은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은채 문고리만 채워져 있어, "여보세요! 아무도 안계세요!"하고 인기척을 내며 살며시 들어가 고즈넉한 향교 안을 둘러봤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바대로 부평향교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명륜당과 대성전이었습니다.

 

명륜당 안은 정겨운 나무바닥에 이런저런 잡기들이 놓여있었고, 창틈 사이로 건너본 대성전에는 공자인 듯한 이의 위패와 초상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내삼문의 돌담 양편에는 수령이 족히 500년은 넘었을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장승처럼 버티고 서있었습니다. 옛 유생들이 학문과 인성을 갈고 닦았던 그 곳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합니다.  


 

1신. 명륜당과 솟을삼문

 

ⓒ 이장연

 

2신. 동.서 양재와 내삼문

 

 

3신. 대성전과 동.서 양무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부평향교, #지역문화재, #공자, #최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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