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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 다섯명과 경찰관 한명 등 여섯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용산참사.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내가 사는 천안에서는 용산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집회가 개최됐다.

 

참사 소식이 전해진 뒤 이틀만에 지역 진보정당들과 사회단체 중심으로 마련된 촛불집회는, 천안의 가장 번화가인 야우리 광장에서 열렸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았다. 광장 한 편에 마련된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 참배를 시작으로 1시간 30분 가량 집회가 계속되는 동안 시민들은 가던 발걸음을 재촉할 뿐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들을 탓할 노릇은 아니다. 시민들은, 모든 것이 바삐 돌아가는, 그래서 빨리빨리 분주히 움직여야 하는 도시에 살고 있지 않는가.

 

분명히 그곳에 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존재. 도시의 군중 속에서 그날 촛불집회는,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그랬다. 집회를 지켜보는 내내 도시 속 작은 집의 처지를 글과 그림으로 옮긴 책 <작은 집 이야기>(시공사)가 떠올랐다.

 

 천안에서 열린 용산참사 추모제 모습.
천안에서 열린 용산참사 추모제 모습. ⓒ 윤평호

 

“금과 은을 다 주어도 작은 집은 절대로 팔지 않겠어”

 

“옛날 아주 먼 옛날, 저 먼 시골 마을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었습니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집이었죠. 튼튼하게 잘 지은 집이었고요. 작은 집을 튼튼하게 지은 사람이 말했어요. 금과 은을 다 주어도 이 작은 집은 절대로 팔지 않겠어. 이 작은 집은 우리 손자의 손자, 그리고 그 손자의 손자가 여기서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거야.”

 

버지니아 리 버튼의 그림책 <작은 집 이야기>의 첫 장에 실린 글귀다. 책 속의 구절처럼 우리 사회에도 집이 손자의 손자, 그 손자의 손자가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에는 그 집들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됐고 이웃이 있었고 정겨움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집은 더 이상 대를 물려 사는 주거공간이 아니라 금과 은은 고사하고 가격만 맞으면, 얼마의 수익만 생긴다면 어느 때라도 처분해 떠날 수 있는 소모재가 됐다. 평생을 살아가는 집이, 순간의 거처로 바뀌며 집과 그 집을 둘러싼 도시의 풍경도 삭막해졌다.

 

"어느날, (…) 측량사들이 나타나서 작은 집 앞의 땅을 재어 갔습니다. 오래지 않아 증기 삽차 한 대가 나타나서 데이지꽃으로 덮인 언덕을 내고 길을 팠습니다……. 그 다음에는 트럭 몇 대가 나타나서 커다란 돌을 쏟아 내리더니, 그 다음에는 자갈을 실은 트럭 몇 대가 나타났고, 그 다음에는 콜타르와 모래를 실은 트럭 몇 대가 나타났고, 마지막으로 증기 롤로 한 대가 나타나서 땅을 평평하게 고르자 도로가 만들어졌습니다."

 

밤이면 별과 달을 볼 수 있고 겨울이면 마을 아이들이 썰매를 지치고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감상하던 언덕 위의 ‘작은 집.’ 초록색의 들판이 황금색으로 바뀌는 것으로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던 ‘작은 집.’

 

동네 주민들의 산책길이자 말이 끄는 수레가 다니던 언덕의 소로가 사라지고 대신 '작은 집' 앞에 말끔한 도로가 새로 놓이자 변화는 쏜살같이 시작됐다.

 

“이젠 아무도 작은 집에 살려고 하지 않아”

 

 버지니아 리 버튼의 '작은 집 이야기' 표지 모습.
버지니아 리 버튼의 '작은 집 이야기' 표지 모습. ⓒ 윤평호

 

“도로는 자꾸자꾸 늘어났고, 마을은 조각조각 나뉘었습니다. 더 많은 집들과 더 커진 집들…… 아파트들과 연립 주택들…… 학교들…… 가게들…… 그리고 차고들이 땅 위를 온통 메우고, 작은 집을 빽빽이 에워쌌습니다. 이젠 아무도 작은 집에 살려고 하지 않았고, 누구도 작은 집을 돌봐 주지 않았습니다.”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칼데콧 상을 수상한 <작은 집 이야기>는 거대 자본주의 국가로 변모하던 1930~40년대 미국이 배경이다. 그림책의 초반부에 목가적인 전원 공동체 풍경을 보여주던 ‘작은 집’은 도로가 놓이고 지하철이 신설되고 빌딩이 들어서며 철저히 소외되어간다.

 

한번 시작된 도시의 변화가 멈추는 법이 없기는 한국도 마찬가지. 책을 보면 볼수록 <작은 집 이야기>의 배경은 도시 곳곳에서 재개발과 재건축의 삽질 소리가 끊이지 않는 오늘날 한국이 더 합당하다.

 

차이라면 그림책 속 '작은 집'은 도시 탈출에 성공, 평안을 되찾은 반면 2009년 한국의 무수한 작은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때로 죽음마저 감수해야 한다는 점일 뿐.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작은 집을 에워싸고 있는 아파트와 연립 주택 들을 헐어 내고 깊게 지하실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집 양쪽에다요. 증기 삽차로 한쪽에는 3층짜리 지하실을 팠고, 다른 쪽에는 4층짜리 지하실을 팠습니다. 오래지 않아 높다랗게 건물을 지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쪽에는 25층짜리 건물이 세워졌고, 다른 쪽에는 35층짜리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작은 집 이야기

버지니아 리 버튼 지음, 홍연미 옮김, 시공주니어(1993)


#작은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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