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사람들의 옛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둠벙', 연못 따위의 작은 저수지를 가리키는 사투리 말로 물 웅덩이의 방언이라고 한다.
지난 1월 31일, 둠벙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한 가족(성관용씨 가족)을 만났다. 논의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연못이었다. 가족 모두가 둠벙의 물을 퍼내고 고기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잡은 미꾸라지를 보니 누런빛이 도는 토실토실 살이 찐 토종 미꾸라지다.
아이들은 둠벙의 진흙 속에서 미꾸라지를 건져낼 때마다 소리를 마구 질러댄다.
"야! 무진장 크다."
"아빠! 여기 또 있어."
"어! 작은 새끼 미꾸라지도 있네!"
둠벙 속의 진흙을 논 밖으로 한 삽 퍼내 그 흙을 헤집을 때마다 그 속에는 미꾸라지가 몇 마리씩 꼭 숨어 있었다. 수염을 달고 있는 토종 미꾸라지는 제법 실해 보였고,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주어 담으려 하면 이름처럼 손안을 쏙쏙 잘도 빠져나갔다.
둠벙은 옛날 다랭이 논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작은 연못이다. 관개시설이 부족했던 옛날에 이곳에 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논농사로 물이 필요할 경우, 둠벙의 물을 퍼서 쓰던 일종의 작은 저수지였다. 지금은 양수시설이 발달하고 논의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어 거의 찾아 볼 수가 없다. 대개 이 둠벙은 물이 솟아나는 수렁배미 논에 많이 있었다.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농심이 타들어 가면 농부들은 둠벙으로 달려가 온종일 두레박으로 이 물을 푸곤 하였다. 둠벙은 옹달샘만한 작은 것부터 시골 마당 정도 크기의 여러 종류가 있었다. 대체로 크기가 작았으며 깊이는 1~2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둠벙에는 참으로 많은 물고기가 살았다. 방개, 붕어, 우렁, 거머리, 미꾸라지, 개구리, 물장군, 잠자리 애벌레 심지어는 뱀까지 살았다. 정말 많은 종류의 수생생물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였다.
예전에는 바쁜 농사철이 끝나고 겨울철이 다가오면 마을 사람들은 할 일이 별로 없어 논에 있는 둠벙을 자주 품곤 하였다.
누군가가 둠벙을 품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용케도 알고 모여 든다. 마을사람이 지나다가 보고는 떠들어대는 것이다.
"아까 보니까 개똥이 형제가 둠벙을 품는 거 같여."
"그려! 워디서!"
"조기 거식이네 논배미에서."
"한번 가볼까?"
그들은 둠벙을 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와 짖굿은 농담을 하기 시작한다.
"야! 어째 너희들 물 품는 폼새가 허당이다."
"그렇게 굼 뜨게 품었다간 고기 다 도망가겄다"
"힘뒀다 어따 쓸려고 해."
"야 임마! 헛소리 그만하고 얼기미나 갖고와."
둠벙의 바닦이 드러날 때면 성질 급한 마을사람은 장화를 싣고 얼른 뛰어 들어간다. 그리고는 둠벙 속을 손으로 더듬어 가며 고기를 비료포대에 주워 담는다. 그렇다가 갑자기 비명을 질러댄다.
"엄마야!"
"이게 뭐야!"
뱀같이 생긴 웅어를 논 밖으로 내 던지고는 너스레를 떤다.
"어이쿠! 뱀인줄 알고 깜짝 놀랐네."
그러면 동네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웃느라고 정신이 없다.
"야 임마! 고기가 너를 잡것다 이 붕신아!"
오늘 한 가족이 논에 있는 둠벙에서 미꾸라지를 잡는 풍경을 보자, 고기잡는 재미에 빠져 허리 아픈 줄도 모르고 죽어라 두레박질해대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새롭다. 둠벙에서 고기를 잡는 아이들은 어찌나 재미있어 하는지 또 다른 데로 가보자며 아빠를 조른다.
"그렇게 재밌냐."
"엄청 재미었어요."
처음으로 짚 앞에 있는 둠벙에서 고기를 잡는 아이들은 무척 즐거운 표정이다. 사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이런 솔솔한 재미에 빠져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둠벙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세수대에 담아 놓고 깨끗이 씻기 위해 소금을 한 줌 뿌리면 그들은 팔딱팔딱 뛰며 몸서리를 친다. 그리고 호박잎이나 짚을 이용하여 박박 문지르면 미끈미끈한 액이 없어지고 목욕을 한 듯 깨끗해진다. 여기에 감자, 고추, 호박 등을 썰어 넣고, 끓는 물에 수제비를 몇 첨 떠 넣으면 겨울에 먹는 별미중의 별미가 된다. 게다가 누군가가 막걸리 한 병이라도 들고와 한 사발 걸치면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시골에 사는 재미가 그만이다.
미꾸리를 잔뜩 잡아 들고 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신바람이 나서 발에 날개를 단 듯 행복해보인다.
집에서 찍어온 사진을 보다가 다시 그들 집으로 달려 갔다. 다시 잘 생긴 미꾸라지를 보기 위해서다. 마당 한켠에 깨끗이 씻어 놓은 미꾸라지가 양동이에 담겨 있다. 주인아저씨가 다가오더니 양동이에 담겨 있는 미꾸라지를 얼기미에 쏟는다.
"미꾸리는 얼기미에 담아야 보기 좋아요."
얼기미에 담긴 미꾸라지는 힘찬 몸부림을 치며 서로 엉켜 있다. 겨울철 별미 토종 추어탕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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