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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일(12.30)

① 홍콩 공항에서 네팔행 비행기를 기다리다

네팔로 가기 위한 경유지인 홍콩에 도착하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네팔 트레킹을 떠나는 많은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무슨 마음을 품고 떠나는 것일까?

우리는 네팔 에어라인의 카트만두행 비행기를 기다리기 위해 47번 게이트로 이동했다. 게이트 앞에 가니 한 네팔 여인이 나에게 반갑게 눈웃음을 쳤다. 나는 '안녕하세요!'하며 한국인의 도덕적 친절함이 묻어난 향기로운 미소를 네팔 여인에게 보냈다. 내 마음을 아는지, 그녀도 줄곧 나를 쳐다보며 따뜻한 웃음을 건넸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언어가 아닌 미소로 서로 소통하고 있었다.

부부가 한국에서 네팔로 돌아가는 중인데, 남편이 엄홍길 등반팀의 히말라야 등반 때 셰르파로 참가한 인연으로 한국에 자주 방문한다고 하였다. 부인의 미소가 얼마나 순박한지, 그 미소에 답하는 내가 천박해 보였다. 혹 날 향해 알몸으로 웃고 있는 순수한 인간을 마주하며 최고급 모피옷과 눈부시도록 화려한 보석을 치렁치렁 매달고 과시하는 ‘나’를 발견했다.

문명의 이기와 오만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내가 너무 가식적이고 지저분하지 않은가? 그녀는 나에게 그 너저분한 껍데기를 벗으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그것도 순수의 힘일까? 하얀 백지에 점 하나를 찍는다. 그녀의 미소가 한 공항 식당의 간판에 순수한 아이로 투영되어 거울처럼 비춰졌다. 

네팔 여인의 미소가 공항 식당의 간판에 순수한 아이로 투영되어 거울처럼 비춰졌다.
▲ 홍콩 공항 네팔 여인의 미소가 공항 식당의 간판에 순수한 아이로 투영되어 거울처럼 비춰졌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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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항에서 만난 사람 중에 내가 묵을 여행 숙소 <네팔짱(nepal-jjang)>에 예약한 분이 넷이나 있었다. 두 분은 점잖은 부부였고, 다른 두 분은 친구 사이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 외 세 명의 한국인이 있었는데, 한복을 입고 유난히 네팔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말을 건네는 중년 여성분은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네팔, 인도, 티베트 등 풍부한 배낭여행의 경험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프로였다.

남매지간처럼 보이는 다른 두 명의 젊은 남녀는 40여 일간 네팔과 티베트를 돈다고 하였다. 누나라 불리는 20대 후반의 여자는 이 배낭여행을 위해 직장도 그만 두었고, 남자는 한의대생으로 방학을 이용해 학창시절의 마지막 여행을 하고 있단다. 참 대단한 삶의 활동가들이다. 또 그 네팔 여인이 보고 있다. 빤히, 집요하게… ‘제발, 그만 날 벗기세요. 부끄럽습니다.’ 창밖을 보자.

출발 시간이 10분 전인데도, 아직 네팔행 비행기가 오지 않았다. 역시 'No fixed time'으로 이름이 높은 로얄 네팔 항공이다. 그에게는 '시간'이라는 구속도 벗어 던질 수 있는 히말라야의 초현실적인 힘을 양 날개에 담고 있었다. 게이트 입구에는 많은 네팔리들과 트레커들이 연착이 당연하다는 듯 초연한 태도로 환담을 나누었고, 왁자지껄 떠드는 젊은 일본인 세 명의 목소리만 정적을 깰 뿐이었다.

날씨가 너무 궂어 시야가 흐리다. 도착 때부터 지금까지 뿌연 대기가 가시질 않아 홍콩을 눈에 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오긴 오는 것인가? 언젠가 상해에서 3일을 연착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눈을 감고 인내하자. 네팔 국내 항공은 더 심하다고 한다.

② 하늘 길을 타고 네팔로 향하다

비행기는 홍콩에서 17시 50분에 출발하였다. 기다림의 허기짐을 와인 세 잔으로 채우고 있다. 어젯밤 이불에서 뒤척이며 이 낯선 시간과의 만남을 기다렸건만 이제는 이것 또한 익숙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네팔 항공 여객기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매우 낡은 기종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좌석 시트는 누렇게 얼룩져 있고, 좌석 아래 구조물들은 떨어져 덜렁덜렁 안쓰럽게 매달려 있었으며, 안전벨트는 80년대 버스에서 볼 수 있었던 쇠로 된 낡은 것이었다. 그래도 낭만은 있어 보인다. 특히, 스튜어디스는 우리가 보아온 현대적인 외모와 세련된 복장의 모습과 달리, 네팔 전통 복장을 착용하고 통통한 원숙미를 풍기는 40대 아줌마의 수수한 모습을 하고 있어 유쾌한 가벼움을 느꼈다. 

창밖을 보지만 아무 것도 없다. 아니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곳에는 항상 무언가가 있으나, 내가 찾고자 하지 않는 이상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나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반쪽짜리 장님이구나. 창문 아래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뒤적거리니 조그만 불빛들이 '여기에도 삶이 있어요. 생명이 있어요.'라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이제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가서 지친 몸을 누이고 싶다. 시원한 맥주 한잔까지 곁들이면 좋겠다. 비행기 엔진 소리의 울부짖음이 창밖의 하늘과 어둠, 그리고 그 적막을 더 깊게만 한다. 뭐가 힘들어 저렇게 울부짖는 것이던가? 엔진의 울부짖음에 갑자기 아내와 지민이의 향이 그리워진다.

③ 카트만두에 도착해 떠남의 의미를 카뮈에게 묻다

대략 홍콩에서 5시간 넘게 비행을 한 것 같다. 도착한 카트만두 공항은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비행기의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들이키는 숨에 흙냄새가 묻어왔다. 왠지 이곳에서는 가식, 위선, 합리화, 경쟁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수한 차별과 편가름 등이 무의미해 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입국 및 비자 수속이 매우 더디게 진행된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서둘러 수속을 밟고 짐을 찾았다. 너무 서두른 벌인지 내 짐이 검색대를 통과하다 검색대가 고장이 나 버리고 말았다. 검색대에 낀 내 가방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일사천리 공항 밖으로 빠져 나갈 수 있었다. 뒤늦게 밖으로 나오자 많은 네팔리와 현지 여행사 직원들이 나와 있었는데, 우리의 숙소인 <네팔짱> 두목님도 픽업을 위해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역시 상상했던 그 모습이다. 활화산이다.

오래된 중고차들이 택시라는 이름으로 자연과 문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도로를 달렸다.
▲ 공항의 택시들 오래된 중고차들이 택시라는 이름으로 자연과 문명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도로를 달렸다.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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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의 거리이다. No fixed way!
▲ 카트만두 거리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의 거리이다. No fixed way!
ⓒ 윤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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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온 부부와 함께 택시를 타고 네팔짱으로 이동하였다. 시골길에서 맡았던 구수한 흙냄새가 좋았으나, 택시가 도심으로 들어갈수록 흙냄새는 사라지고 그 빈 공간을 낯선 풍경과 캐캐한 냄새들이 채워갔다. 도로라고 말하기 어려운 길을 택시 기사가 능숙하게 운전하였다. 20~30년은 돼 보이는 수입 중고차들이 아무런 구애도 없이 달릴 뿐이었다. 경적이 곧 신호등이요 도로는 수시로 뛰어드는 소떼들의 방목장이었다. 신호등이 있는지 중앙선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비행기는 'No fixed time', 차들은 'No fixed way.' 이것도 히말라야의 힘인가? 문명과 자연이 만나고 그 경계선이 무너진다. 모든 것이 뒤엉킨 혼돈일 뿐이다. 질서에 익숙한 나에게 혼돈은 악(惡)이다.

하지만 이 혼돈에서 자유가 느껴진다. 무엇인가 풀어져 있는 느슨함이 좋고 꽉 채워지지 않는 백지장의 여백이 있어 좋다. 언제부터인가 질서는 선(善)이고, 무질서는 악(惡)이라고 불리는 세상이었고, 그렇게 나는 길들여졌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면 안 되었고, 일상을 벗어나는 행동은 무책임한 무모함이라고 조소받았다.

‘네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
  ‘남들 다 그렇게 사는데, 왜 너만 그러니?’
  ‘이렇게 사는게 정답이야. 시키는 대로 해.’

하지만 이제 이렇게 말하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왜 너만’이 아니라 ‘너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세상이 나에게 가르쳐 준 선과 악은 그들의 것이었지, 나의 것이 아니었다. 가지런히 정돈된 소품들을 손으로 무자비하게 휘저으며 웃고 있는 나를 생각한다. 이곳에서 선과 악의 경계, 삶에서 정답이라 부르는 것을 짓밟고 싶다. 그리고 미친 듯이 웃고 싶다. 울고 싶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나는 누구인가’ 

마낭(manang) 호텔 옆 골목에 들어서자 숙소인 '네팔짱'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 어린 스탭(네팔 현지 직원)들이 '나마스떼(안녕하세요)'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짐을 방으로 옮긴 후, 인사 겸 내일 일정을 상의하기 위해 산적 두목님이라 불리는 숙소 사장과 전통 민속주 '퉁바'를 한 잔 씩 마셨다. 기대 외로 맛이 좋고 장에도 매우 좋다는 말에 바닥까지 비워가며 내일을 이야기했다.

네팔이다. ‘떠남’으로 지배되었던 의식이 ‘만남’으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떠남의 이야기가 빼곡히 적힌 종이를 지우개로 박박 지워버리고 새로운 도화지를 편다. 멋드러진 명작을 그리기 위해서? 결코 아니다. 세상에는 특별한 명작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 삶이 진정한 명작이기 때문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어떤 가치로 함부로 평가하고 재단할 수 없는 것이 우리내 ‘삶’이 아닌가? 어제와 똑같은, 그렇지만 똑같지 않은 삶을 도화지에 적자.

이곳으로 떠나기 전, 일상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생각하며 새벽 이불 속에서 뒤척일 때, 똑같은 옷에 똑같은 가방을 들고 똑같은 교실에 들어가 똑같은 수업을 할 때,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빨간색 신호등과 눈을 맞춘 채 멍하니 기다릴 때, 갑자기 둔탁한 몽둥이로 머리를 맞은 듯 정돈된 일상이 뒤죽박죽 꼬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왜’냐는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도대체 이유가 뭐야? 목적은 있는 거야?’
 
특별함 없이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에 짜증이 나고 이유 없는 무기력함을 느꼈다. 이것을 '권태'라고 이름할까? 권태가 찾아온 순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보이고, 낯섦과 허무의 감정이 의식 전체를 지배했다. 권태의 벽에 홀로 선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나에 대해, 나의 삶에 대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질문을 시작하자, 꽁꽁 얼어붙은 대지에서 싹이 돋아나듯 모든 것들의 의미가 새롭게 태어나기 시작했다.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권태로움의 벽을 마주했던 것일까? 그는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단하는 것, 이것이 철학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라는 멋진 말로 시작되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권태의 발견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갑자기 무대 장치들이 무너져 내린다. 새벽에 일어나서 전차를 타고 출근,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네 시간 근무, 점심, 전차, 네 시간 작업, 저녁, 취침, 월, 화, 수, 목, 금, 토, 항상 똑같은 리듬.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편안한 길이다. 그러나 어느 날 “왜”라는 질문이 고개를 쳐든다. 그러면 놀라움이 섞인 이 권태와 더불어 모든 것이 시작된다. “시작된다.” 바로 이것이 중요하다. … 권태는 그 자체속에 무엇인가 진저리나게 하는 것을 지니고 있다.

똑같은 리듬에, 아주 오랫동안 편안했던 길, 그리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왜’라는 질문! 카뮈는 이런 인간의 삶을 ‘부조리’하다고 정의 내렸다. 부조리가 무엇인가?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이 덧없고 무의미한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부조리는 물음을 던지는 인간과 반이성적으로 침묵하는 세계와의 마주섬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런 부조리와 권태로움에 직면했을 때, 우리 앞에는 네 가지 선택의 길이 놓여있다고 말한다.

  첫째, 자살을 통한 죽음
  둘째, 철학적 자살, 즉 종교적 믿음에 귀의 하는 것
  셋째, 쳇바퀴(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귀환하는 것
  넷째, 부조리한 삶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

까뮈는 무엇을 선택하라고 할까? 삶의 권태를 느꼈는가? 그렇다면 죽어라? 신에게 의지해라? 그냥 질문하지 말고 살아라? 저항하라?

그는 네 번째 즉, 권태롭고 무의미한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저항하라고 한다. 도대체 저항이 무엇인가? 나를 노예로 만드는 모든 것을 물리치고 삶의 주인으로 다시 우뚝 서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백지처럼 펼쳐진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창조하고 책임지라는 것이다. 나에게는 자유가 있으며 나는 나다워야 한다. 이것은 바로 실제로 존재하는 나, ‘실존’이다. Don't touch me.

까뮈는 <시지프의 신화>에서 꼭대기에 올려도 올려도 다시 굴러 떨어지는 돌을 짊어질 수 밖에 없는 시지프의 고통을 말한다. 신들은 인간에게 가장 큰 형벌이 무엇일까 고민을 했고, 그들이 찾아낸 것은 바로 ‘무익하고 희망 없는 일’이었다. 결국 시지프는 떨어질 줄 알면서도 계속 바위를 짊어지고 올려놓아야 했다. 시지프의 운명에서 카뮈는 ‘새로움도, 희망도 없이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신의 예상과 달리 시지프는 결코 삶이 고통스럽다고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자신의 운명과 고통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도리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준 그들을 비웃고, 신과 세상에 저항한다. 삶을 긍정하고 저항하며 주인이 되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보자. 

시지프의 말없는 온갖 기쁨은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의 인간은 자기의 고통을 주시(注視)할 때, 모든 우상(偶像)을 침묵케 한다. 갑자기 침묵에 이른 우주 안에서 무수한 감탄의 작은 소리들이 대지로부터 솟아오른다.

부조리의 인간은 긍정으로 대답하며, 그의 노력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개인적인 운명은 있을지라도 초월적 운명이란 결코 없다. 혹 있다면 다만 숙명적이고 경멸해야 할 것으로 판단되는 운명이 있을 뿐이다.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인간은 자기의 나날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시지프를 산기슭에 남겨둔다! 우리는 언제나 그의 무거운 짐을 발견한다. 그러나 시지프는 신들을 부정하고 바위를 들어 올리는 고귀한 성실을 가르쳐준다. 그 또한 모든 것은 좋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 주인이 없게 되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不毛)의 것도 아니고 소용없는 것도 아닌 듯이 보인다. 이 바위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으로 가득 찬 이 산의 광물의 빛 하나하나가 유독 그에게는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족한 것이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지프를 통해 카뮈는 말한다. ‘삶을 긍정하라.’, ‘저항하라.’ 주인이 되어 너의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라.’ 그리고  ‘삶의 의미보다도 삶을 더 사랑하라!’

카뮈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는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라는 실존철학의 대표적 명제를 정의내렸다. 인간에게는 미리 설계된, 정해진, 명확한 목적이 부여된 ‘본질’에 앞서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자유를 가진 ‘실존’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의 자유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나아가 ‘내’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사회 현실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이를 ‘앙가주망’이라고 한다.

나도 ‘왜’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리고 ‘답’이 없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권태로운 일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나의 떠남은 이런 무의미한 삶에 저항하기 위한 도구가 될지도 모르리라. 그래서 떠났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삶의 주인이 되어 돌아와야 한다. 삶을 창조하는 주체자가 되어야 한다.

그때에는 나를 떠나게 한 이 현실을 눈물겹게 사랑하고 저항하리라!
권태 뒤에 숨어 구차한 삶에 기생하거나 비겁하게 도피하지 않으리라.

※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느끼고 고민했던 내용과 관련된 동서양 사상가의 사상을 빌려와 철학적 채색을 하였습니다.(공자에서 샤르트르까지)


태그:#네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철학,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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