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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는 영화의 내용을 암시하는, 이른바 스포일러가 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말]
영화 <작전>의 네 주인공.
 영화 <작전>의 네 주인공.
ⓒ ㈜영화사 비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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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 투자해서 반토막 난 우리 엄마가 물어보더라고요. 반토막 난 내 돈이 어디로 사라진 거냐며 이해가 안 된대요. 그런데 엄마가 잃은 돈을 누가 가져간 거죠?"

얼마 전 술자리에서 만난 한 후배가 던진 말이다. 그는 "경제 지식이 없으니 설명해 달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기자는 그에게 "가치가 반으로 줄어든 것 아니냐"고 면박을 줬다.

대화는 이어졌다. 그 후배는 "잘 이해가 안 가는데, 물질은 그대로 있는데, 어떻게 돈이 사라질 수가 있죠? 사라진 돈은 누가 가져간 거죠?"라고 재차 물었다. 주가가 반토막이 됐으니, 나머지 반은 사라진 것 아니냐는 그의 말은 분명 틀린 건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돈이 '증발'해버린 건 신기한 일이다. '한계효용의 법칙'이라는 기본적인 경제학 지식도, '주식은 기업의 미래가치를 나타낸다'는 사실에도 기자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다만, 2일 저녁 기자 손에 영화표 한 장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전쟁같은 주식시장은 남의 돈 먹겠다고 덤비는 곳"

영화 <작전>의 주인공 강현수(박용하 분).
 영화 <작전>의 주인공 강현수(박용하 분).
ⓒ ㈜영화사 비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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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증권사 객장에 앉아 주가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전광판의 붉은색 숫자는 줄어들고, 그 자리를 녹색 숫자가 대신한다. 결과는 수많은 하한가의 탄생. 이내 객장은 한숨과 분노와 탄식으로 채워진다.

영화 <작전>의 첫머리는 이렇다. 이어 IT버블 붕괴로 주식 투자금을 잃은 후, 5년째 좁은 골방에서 주식시세판만을 바라보고 있는 주인공 강현수(박용하 분)의 모습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언론매체를 통해 바라봤던 장면들이다. 바로 이곳에서 '작전'은 시작된다.

차트를 분석하는 강현수, '판돈'을 끌어오는 자산관리사 유서연(김민정 분), 전직 조폭 두목인 '지휘자' 강종구(박희순 분), 증권사 차장 '설계자' 조민형(김무열 분) 등이 600억원 규모의 주가조작 '작전'에 나선다.

그들의 작전으로, 주가차트는 거대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의 눈 먼 돈을 유인한다. 그리고는 작전 세력들간의 서로를 속고 속이는 제2·제3의 작전이 터져나오고, 상승하던 그래프는 수많은 개미들의 꿈과 함께 수직낙하한다.

승자보다는 패자가, 번 돈보다는 잃은 돈이 많다. 돈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새로운 작전은 계속된다. 다시 수많은 개미들의 돈을 유인한다. 큰 탐욕이 작은 탐욕을 끊임없이 일으킨다. 바로 그곳이 주식시장이라고 강현수는 말한다.

"아홉시, 전쟁은 시작된다. 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아군도 없다. 개미, 기관, 코쟁이들까지 남의 돈 먹겠다고 덤비는 곳이 이 판이다."

아파트 투기꾼 욕하던 사람들, 주가 상승에 환호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이날 오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51.63으로 표시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장중 주가 1,000선이 붕괴된 가운데 이날 오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시황판에 코스피지수가 951.63으로 표시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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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펀드에 돈을 넣어놓고, 마이너스 수익률의 쓰라림을 맛 본 사람들이라면 영화에 몰입하기도 전에 스스로의 씁쓸한 현실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영화에서 개인투자자 강현수는 희극의 주인공이지만, 현실의 개인투자자들은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자신은 땀 흘리지 않으면서, '돈의 노동'을 통해 돈이 돈을 낳는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주식시장으로 밀려들었다.

2007년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를 향해 막바지 스퍼트에 나서자 대한민국은 펀드로 떠들썩했다. 모두가 작전에 뛰어들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투기꾼들을 욕하던 사람들은 치솟는 주가를 보며 즐거워했다.

땀 흘리던 소시민들이 투자가인지 투기꾼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펀드열풍에는 대학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돈을 낳는 건 땀이 아니라 돈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들은 주식거래 관련 공인인증서를 만드는 코스콤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이해하기보다 공인인증서로 손쉽게 주식거래하는 법에 대해 고민했다.

탐욕을 동력으로 삼는 작전에 대한민국이 빠져든 셈이다. "펀드 안 하면 바보"라는 말은 작전의 구호였다. 바로 그때, 정점에 다다랐던 주가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로가 하강곡선에서 먼저 빠져나오려다 오히려 하강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었다.

바닥론 솔솔... 아직 끝나지 않은 작전

2008년 들어 주가가 하락하던 그 와중에도 수많은 작전들이 끊임없이 이뤄졌다. 펀드매니저로 상징되는 증권사들의 작전은 노골적이었다. 곧 주가가 오른다는 바닥론을 퍼트렸다. 증권거래 중개 수수료가 주수입원인 이들 증권사들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의 작전에 일부 언론이 가세했다. "증권사와 몇몇 언론의 말 반대로 하면 돈 번다"고 비판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몇몇 언론은 증권사들의 주장을 확대 재생산했다. "위기가 기회"라며 사람들의 탐욕을 조장했다.

하지만 이 작전은 2008년 9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무너지고 만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주가가 급전직하로 폭락했다. 탐욕의 끝은 잔인했다. 탐욕이 클수록 그 상처는 깊었고, 부동산, 주식 등을 담보로 내놓고 주식에 투자했던 사람들 중 일부는 목숨을 끊기도 했다.

영화 <작전>의 결말은 개인투자자를 위로하는 쪽이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최근 증권사와 일부 언론에서는 "주가가 충분히 싸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사람들 속 깊이 숨겨놓았던 탐욕을 일깨우고 있는 중이다.

영화 <작전>의 포스터.
 영화 <작전>의 포스터.
ⓒ ㈜영화사 비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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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후배의 질문에 답할 시간이 왔다. 후배의 어머니, 아니 우리 모두가 잃은 돈을 정확히 누가 얼마나 가져갔는지 알 길이 없다. 신도 모른다는 주가 흐름 속에 일부 운 좋은 사람들 정도만 돈을 벌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딱 우리 스스로의 탐욕만큼 돈을 잃었다는 거다. 높은 수익률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이는 모든 것을 잃었다.

반면, 당장의 주가 흐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투자·가치투자를 했던 이라면 아직 그렇게 많은 것을 잃지는 않았을 터다. 땀 흘려 일했던 노동자들은 오히려 탐욕의 끝이 어디인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 됐다.

이 영화 끝에서 이른바 '마산창투'가 말한다. 강현수가 주식 세계에 빠져들게 한 책을 쓴 사람이자, 강현수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그는 주식이 하루에도 수천만원씩 뛸 수 있다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의 욕심이 뒤엉켜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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