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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심법문(看心法問) 사조 도신(580-651)

 

도신선사가 쌍봉산에 사조사를 세운 유래는 자못 흥미롭다. 새로운 절터를 찾는 도신에게 쌍봉산의 상서로운 기운은 감탄을 금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며칠씩 금식하며 불경을 외우고 목어를 두드리니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노인이 다가와 그 사연을 물었다.

 

“스님, 왜 여기서 불경을 외우고 목어를 두드리십니까?”

“가사 한 벌 놓을 만한 땅에 절을 짓고 싶습니다.”

“가사 한 벌의 땅 정도쯤이야, 좋습니다. 내가 시주하겠습니다.”

 

도신이 던진 가사 한 벌이 덮은 땅은 놀랍게도 사방 십 리에 미치었다.

 

마침내 사조 도신은 쌍봉산 자락에 사조사를 짓고 농토를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불법을 전파하여 크게 선종의 문을 열었는데 한 때 사조사의 수행 대중이 5백 명에 이르렀다.

 

대사는 선과 노동은 하나라는 선농일여(禪農一如)사상을 주장하고 몸소 농사와 참선을 병행하는 농선쌍수(農禪雙修)를 실천하기 위하여 탁발에 의존하던 종래의 공양방식을 지향하고 사조사 주변의 농토를 개량하여 자급자족 하는 선풍을 확립하였다.

 

스님들의 건전한 정신과 신체를 단련시켰고 관의 도움이나 백성들의 시주 없이 대중살림이 가능해져 세금을 줄일 수 있었다. 대사는 한 승려가 먹을 거리를 얻어 평생 굶주림을 면하려면 좌선을 근본으로 수행하되 15년은 노동을 병행하여야만 된다고 하였으며 이는 훗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고 하신 백장선사의 가르침보다 백년이나 앞선 선지식의 지혜이다.

 

대사는 훗날 간화선 수행법으로 발전한, 부처가 곧 마음이라는 즉 마음 밖에 달리 부처가 없다는 간심법문(看心法問)을 폈다. 간심법문에서는 마음의 본체를 알고, 마음의 작용을 안 다음, 마음이 항상 깨어 있도록 하며, 신체가 공적(空寂)함을 관찰하면서, 하나를 지켜 흔들림이 없게 한다면 마음의 실체를 볼 수 있다는 법문이다.

 

한편으로 사조사 도신은 의술에 능했다. 당 태종 이세민의 옴을 치료한 대사는 상을 내리기 위한 황제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네 번째, “이번에도 도신이 응하지 않으면 목을 가져오라”는 명을 받은 흠차대신의 칼 앞에 목을 내밀며 입궐을 거절하여 흠차대신을 빈손으로 보냈다. 이러한 사실은 초조 달마대사의 ‘무공덕!’ 일갈과 같은 맥락의 수행자 위의(威儀)일 것이다.

 

수심법문(守心 法問) 오조 홍인(601-674)

 

홍인(601-674)은 전생부터 ‘불법을 펴 보이겠다.’라는 원력이 있었다. 그에 대한 사연은 설화 같은 느낌이 드나 홍인의 친모 주씨 전각이 오조사 경내에 설치되어 봉안되고 있는 것으로 미뤄 설화로만 치부해 버리기에는 석연찮다.

 

사조 도신선사가 파두산에서 정진하고 있을 때 근처에 이름 없는 한 노승이 살고 있었다. 노승은 시간이 나는 데로 소나무를 즐겨 심어 재송도자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어느 날 이 노승이 도신을 찾아와 “불법을 깨쳐 널리 펴 보이겠다.”며 도신에게 설법을 청하였다. 도신은 “그대는 너무 늙었으니 다시 어린애로 태어나 다시 찾아오시오”하면서 노승을 돌려보냈다.

 

도신선사에게 설법을 거절당한 노승은 다시 어린애로 태어나기 위해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처녀를 선택하고, 처녀에게 다가가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했다. 처녀의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 노승은 하룻밤 처녀의 집에 묵어간 것뿐 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처녀는 임신을 했고, 이로 인해 집에서 쫓겨났고, 갖은 고생 끝에 사내아기를 출산을 하게 된다.

 

아기가 자라 말을 하게 되니 처녀는 아기에게 노승과의 인연을 얘기해주며 동내사람들이 놀리는 무성(無性)이 아니라 불성(佛性)이라고 알려준다. 7살이 되던 해 인연에 따라 도신을 만나 스승과 제자로 전생에 못 이룬 연을 맺는다.

 

도신은 길을 가다 7살 동자에게서 전생에 자기가 돌려보낸 노승을 발견하고 말을 건넨다.

“ 네 성이 무엇이냐?”

“성의 있으나 예사 성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성이더냐?”

“불성(佛性)입니다.”

“네게는 성이 없던가?”

“성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대화로 어린 동자의 전생을 확인하고 자신의 멸도 후 20년이 지나면 어린 동자에 의해 크게 불사가 이뤄 질 것을 예언한다. 어린 동자는 20년 동안 스승의 종지인 농선쌍수를 충실히 수행하고 절의 일을 감독하고 챙겨 스승으로부터 의발과 법을 전해 받아 선종의 오조가 된다.

 

홍인의 가르침 핵심은 수심법문(守心法問)이다. 스승 도신의 수일불이(守一不二)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본래 마음을 지켜 행주좌와(行住坐臥)중에도 항상 본래의 진심을 지키어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을 지켜 일체만법이 스스로 마음을 떠나지 않도록 간직하는 하는 것이다.

 

홍인대사는 스승의 예언대로 크게 불사를 일으켜 10대 제자를 양성하여 오조사가 선의 황금시대로 들어서게 하는 발원지 같은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선의 양대 산맥인 신수의 북종선과 혜능의 남종선의 산파와 같은 역할이다.

 

돈오선법(頓悟禪法) 육조 혜능(637-713)

 

날품을 빌어 살아 가는 혜능은 어느 날 길을 가다 안도성이라는 사람이 독송하는 금강경의‘마땅히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라(응무소주 應無所住 이생기심 而生基心)’구절을 듣고 밝아지는 마음을 느껴 안도성에게 출처를 묻고 은화 1백 량을 보시 받아 노모께 드리고 빙모산으로 홍인을 찾아가 스승과 제자의 연을 맺는다.

 

홍인의 10대 제자 중 가장 탁월한 신수을 제치고 방앗간 사미승이 의발과 참법을 전수 받은 과정은 10대 선사의 얘기 중 절정과 같은 얘기이다. 항상 들어도 혜능의 선의 정의에 경외심과 신심을 일어난다.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맑은 거울과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갈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가 묻지 않게 하라.

 

신시보리수 身是菩提樹

심여명경대 心如明鏡臺

시시권불식 時時勸拂拭

물사약진준 勿使惹塵埈

 

라는 신수의 게송에, 무지렁이 혜능은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아니고

맑은 거울의 받침대도 아니다.

깨달음은 상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것이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오

 

보리본무수 菩提本無樹

명경역비대 明鏡亦非臺

본래무일물 本來無一物

하처야진준 何處惹塵埈

 

라는 게송으로, 홍인으로부터 돈오(頓悟)를 인가 받는다. 의발과 전법게를 전수 받으나 워낙 신분이 미천하여 시기하는 무리들로부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스승의 배려로 오조사를 탈출하여 15년을 산속에서 사냥꾼들의 속에 숨어 살고 또 3년을 떠돌며 때를 기다린다.

 

40세에 이르러 법성사로 나와 법을 편다. 이 때가 오조 홍인으로부터 17년이 지난 후이며, 생보살(生菩薩)로 추앙 받는 남종선의 마지막 조사이다. 혜능 이후 선종이 크게 번창하여 특정 제자에게 달마의 의발을 전수할 수 없었다. 한편 신수는 북위에 이르러 북종선의 조사가 된다.

 

혜능은 무념(無念)을 세워 종(宗)으로 삼고, 무상(無相)으로 체(體)를 삼으며, 무주(無主)로 본(本)을 삼았다. 무념이란 생각에서 생각이 없음이요. 무상이란 상에서 상을 여윔이요. 무주란 사람의 본성이 선하거나 악하거나, 밉거나 곱거나, 친하거나 모질거나, 거친 말을 하거나, 속이고 다툼을 당할 때 그 모두가 공(空)임을 인식하여 대들거나 해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대승불교의 근본 교리는 혜능 때 완성되어 천하에 두루 퍼져 생보살의 도를 다하는 공덕으로 참법을 완성한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뜰 앞에 잣나무 - 도우 스님의 禪이야기

도우(道雨) 지음, 방남수 엮음, 화남출판사(2007)


#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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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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