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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용지원센터에 모인 실직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용지원센터에 모인 실직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 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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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씨치고는 포근했던 지난 3일, 서울의 한 종합고용지원센터(이하 '고용센터') 대회의실에는 아침부터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실직자 200여 명이 모였다. 책상이 빼곡히 들어찬 100여 평 정도의 강의실을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채우고 있었다.

이들은 1시간 30분의 교육을 받고 자신이 실업급여 대상자인지 확인받는다. 이 과정을 통과하고 적극적 일자리 찾기를 하면 일주일 후부터 개인마다 정해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오마이뉴스>는 고용센터에서 실업급여를 받는 실직자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실직자에 역부족인 고용센터

오전 9시 고용센터가 문을 열자마자 300여 명이 몰려들었다. 200여 명은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온 실직자들이고 100여 명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온 실직자들이었다.

실업급여 지급 업무를 하는 창구는 모두 13개. 실직자 한 사람당 상담 시간은 3분 정도. 하지만 물밀듯 밀려오는 사람들을 감당하기에 벅차 보였다. 상담원들은 1인당 하루 80명 정도의 실직자들과 상담하고 구직활동을 확인한다. 작년에 비해 상담업무 직원을 1명 보강했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실직자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한다.

구직활동을 확인받고 고용센터 건물을 나서는 김아무개(57)씨. 부인과 딸 셋 등 모두 4명을 부양하고 있는 그는 회사를 퇴직한 뒤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를 찾았다고 했다. 재직시절 그는 한 달 40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았지만 퇴직 후엔 실업급여로 120만원을 받는다. 실업급여 지급 최고액은 월 120만원까지다. 월 소득이 3분의 1 정도로 줄어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씨의 큰딸은 대학을 휴학했고, 둘째 딸은 학자금 대출을 받을 예정이란다. 그나마 대학생 딸들은 아르바이트로 용돈이나 학비 일부를 충당할 수 있지만 막내딸은 대입을 앞두고 있어서 그마저도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김씨는 요즘 막내딸을 학원에 계속 보내야 하는지가 최대 고민이라고 했다.

"나는 한 달에 5만원만 있어도 살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게 안 되잖아요. 대학 다니는 애들은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고 하면 지들 앞가림은 어느 정도 하는데, 막내는 수능이 코앞이라 학원은 계속 보내야겠고. 지금 고민이에요."

그는 지금 받는 실업급여로는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한 달이면 5명 핸드폰 기본요금만 10만원이에요. 그렇다고 전화를 끊을 수는 없잖아요. 거기다 겨울이니 가스비 내고 세금 내고 아이들 용돈 조금 주고 하면 실업급여로는 안 되죠. 그래서 지금 퇴직금 받은 걸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어요. 이 돈도 한 1년 있으면 다 떨어질 판이니까 갑갑하죠. 지금 애들 엄마도 일자리 찾아본다고 돌아다니는데 일할 만한 자리가 없나봐… 평생 가정주부만 하던 사람인데."

부인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눈이 순식간에 빨갛게 충혈됐다. 취업 지원서를 여러 군데 넣어봤지만 전화는 한 통도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 김씨는 경비직이나 환경미화직에도 원서를 넣어 볼 생각이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는 실직자들이 수급 창구 앞을 가득 채우고 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는 실직자들이 수급 창구 앞을 가득 채우고 있다.
ⓒ 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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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

전문직이나 기술직종은 실직자 중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원서를 넣으면 가끔씩 면접을 보자는 전화가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면접을 보면 예전에 받던 월급보다 턱없이 낮은 급여를 제안한다고 한다.

물리치료사로 일했던 박아무개(39)씨는 작년 12월 실직 후 고용센터에 처음 왔다. 그는 병원 폐업이나 구조조정이 아닌 손가락 부상 때문에 쫓겨나다시피 병원을 나왔다. 업무 특성상 손을 다치면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원을 나올 때만 해도 다른 곳에 쉽게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박씨는 벌써 3개월째 실업급여를 받는 처지다. 그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원서를 넣은 병원에서 가끔씩 연락이 왔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면접을 보면 연봉이 맞지 않아 입사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어느 정도라야 근무를 하죠. 너무 낮은 월급을 제안하니까 자리가 있어도 쉽게 입사를 못하겠어요. 나이도 있는데 다시 그만두고 나와서 옮기기가 쉽지가 않잖아요."

걱정스러운 말투에 고민이 잔뜩 묻어 나온다.

"뭐, 일자리가 있는데도 연봉 때문에 안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욕할지도 모르죠. 그런데 막상 자기 일이 되어 보면 달라질 겁니다. 더군다나 나이가 좀 있으면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고요."

하지만 이전보다 낮은 연봉에 취업한 사람들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일식집에서 근무했던 박아무개(25)씨는 지난해 12월 일식집이 폐업한 지 두 달 만에 재취업에 성공했다. 지금 당장 취업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작은 동네 식당 보조로 들어갔다. 연봉도 이전보다 300만원가량 적다. 당장 벌어 놓은 돈이 없고 실업급여액과 기간이 적어 일단 입사는 했지만 그는 이곳에 오래 다닐 생각은 없다.

"돈이 없으니 급하게 들어간 거고요. 사실 얼마나 다닐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빨리 옮겨야죠."

박씨는 당장 돈이 필요해 들어갔지만 하는 일과 연봉도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일자리를 찾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다른 일자리가 나면 바로 이직하겠다"고 했다.

실직자 대부분이 실업급여 기간과 금액에 불만

한 실직자가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있다.
 한 실직자가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번호표를 뽑고 있다.
ⓒ 김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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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디딜 틈 없는 고용센터의 한쪽 구석에 서서 상담 차례를 기다리던 이아무개(여·31)씨도 회사 구조조정으로 퇴직했다. 내비게이션 제조업체에서 경리 업무를 봤었다는 이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뒤져보지만 신규 채용 정보는 눈을 씻어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숨을 토해냈다.

"요즘 정말 일자리 없어요. 나와 보시면 알아요. 진짜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네요. 계속 찾다가 안 되면 '취집'이라도 갈까 봐요."

지방이 고향이라는 그녀는 직장 때문에 서울에서 생활했지만 일자리가 쉽게 잡히지 않아 다시 고향으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렇듯 신규 취업이 바늘구멍 통과하기처럼 어려워져 실직기간이 늘고 있지만 실직자들에 대한 뚜렷한 해결 방안은 없다. 

고용센터에서 만나본 실직자 대부분이 실업급여 기간과 금액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경기여건에 따라 급여기간과 급여액을 조정해 달라는 것이다.

현재 실업급여는 직장 재직 시절 고용보험비를 6개월 이상 내고 비자발적 퇴사(권고사직, 구조조정 등) 시 월 최대 12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120만원은 4인 가족 최저 생계비 132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 금액과 지급기간도 선진국 수준에 못 미치는 편이다.

노동연구원이 발간하는 <노동리뷰>에 따르면 한국은 OECD국가 중 실업급여 대체율이 하위권인 43%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스위스(81%), 덴마크(78%) 등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방하남 선임연구원은 "실업급여 지급 기간이 짧은 것은 아니지만 지급액의 상한선이 있어 중간소득 이상자들에게는 실제 급여의 절반이 되지 않아 수급상한액을 차츰 조정하고 있다"며 "금액보다는 수급기간을 실업률에 따라 탄력 조정하는 것이 근로자들에게는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노동부는 최근 경기침체로 재취업이 어려운 실직자들을 위해 개별 연장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완화했다고 4일 밝혔다. 하지만 확대시행으로 늘어나는 개별 연장 실업급여의 기간은 최대 60일이고 기준요건이 까다로워 실제 혜택을 받는 실직자가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작년의 경우 개별 연장 실업급여 수혜자는 200여 명에 그쳤다.

덧붙이는 글 | 김태헌 기자는 <오마이뉴스> 9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구조조정, #실업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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