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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통신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KT와 KTF 합병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KT를 뺀 나머지 거의 모든 통신업체들이 합병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KT 합병에 대한 기업결합심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KT 합병을 둘러싼 논란과 쟁점을 두차례에 걸쳐 알아봅니다. <편집자말>

"(KT)F와의 합병은 오래된 이슈 아니에요? 우리(KT)도 오래동안 검토해왔던 것이고, 언젠가는 (합병으로) 갈 수밖에 없지만..."

 

전직 KT 고위임원 출신인 A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달 말께 기자와 만난 그는 "(KT가) 민영화 이후 그동안 공기업의 티를 벗기 위해 노력해 왔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통신시장뿐 아니라 재계의 큰 관심사인 KT-KTF의 합병을 두고 벌어지는 일들을 염두에 둔 듯했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본다.

 

"정권이 바뀌면서, 통신시장을 바라보는 정부의 분위기도 달라졌어요. 친기업적이라고 하지만, 시장의 자율을 인정해 주기 보다는 정부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

 

그는 "(KT 입장에선) 오히려 해묵은 숙제(KTF와의 합병)를 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면서 "하지만, 남중수 전 사장 체제에서의 합병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지금의 (정부) 분위기는 전혀 딴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오래동안 떠돌던 통신업계의 낡은 이슈, KT-KTF 합병

 

그의 말대로 KT와 KTF와의 합병은 통신업계에선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지난 2002년 KT의 민영화 이후, 2004년 이용경 전 사장(현 창조한국당 의원) 시절 때부터 KTF와의 합병설이 나돌기 시작했고, 이후 꾸준히 통신업계와 증권가에서 거론돼 왔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민영화 이후 정부 지분 감소와 외국인 지분율의 급증 등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있었다. 이어 합병 비용뿐 아니라, KT의 유선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와 정부의 규제 등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KT 내부에서조차 작년 여름까지만해도 합병 비용과 시장상황 등을 들어 "합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도 여전했다. 그럼에도 KT는 'KTF와의 합병을 통한 새로운 모습'이라는 큰 그림은 유효했다.

 

과거 KTF 사장 시절부터 합병에 부정적이었던, 남중수 전 KT사장도 작년부터 별도의 합병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는 등 KTF와의 합병을 적극 추진해 왔다.

 

KT 관계자는 "KTF와의 합병설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돼 왔다"면서 "무엇보다 민간 통신기업으로서의 미래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요구가 컸다"고 설명했다. 

 

이는 바꿔말하면 KT가 안팎으로 위기에 처해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 국내 시내전화의 90% 가까이를 갖고 있고, 초고속인터넷시장도 43%를 차지하는 등 통신업계의 최대기업이지만, 최근 4~5년새 매출액은 12조원을 넘지 못하면서 정체 국면이 뚜렷했다. 한때 2조원이 넘던 순이익도 매년 감소추세로 돌았고, 급기야 작년엔 매출액마저 SK텔레콤에게 추월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KTF도 마찬가지다. 지난 1996년 이동통신시장에 진출한 KTF는 한솔텔레콤 인수 등으로 덩치를 키우고, 3세대 휴대전화 서비스인 '쇼(SHOW)'라는 브랜드를 내세웠지만, 1위업체인 SK텔레콤과의 격차는 여전하다.

 

'정치수사' 논란속 남중수 전 체제 무너진 후, 분위기 반전

 

이같은 위기감속에 지난 2007년말 연임에 성공한 남중수 전 KT 사장은 작년 초부터 KTF와의 합병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KT는 유선과 무선의 통합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당위성을 알리기 시작했고, 작년 여름께는 KT의 합병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에 맞춰 기업의 합병 승인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정책당국도 검토작업에 들어갔다. 작년 8월께 방송통신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KT쪽에서 (KTF와의) 합병 인가 신청을 해올 것을 대비해 여러가지 내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외국에서도 시장지배력이 큰 유선사업자와 무선통신 사업자간의 합병 사례가 많지 않다"면서 "여러 시장 경쟁 상황 등을 면밀하게 검토해야할 것들이 많다"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 KT 합병을 둘러싼 진척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9월 들면서 분위기는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검찰의 KTF 조영주 전 사장의 납품비리 수사가 불거졌고, 곧바로 시장에선 남중수 KT 전 사장의 연루설도 거론됐다.

 

결국 작년 11월 5일 남중수 전 사장은 납품업체로부터 3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고, 다음날(6일)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난 님을 보내지 않았다.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정들었던 집을 잠시 떠나 여행 다녀오는 마음으로 가고자 한다"고 적어 묘한 여운은 남겼다.

 

KT내부와 업계에선 국내 거대통신기업인 KT와 KTF 사장의 잇단 비리의혹과 구속을 두고, "이명박 정부 출범후 대선 보은인사를 위한 정치 표적수사"라는 의견도 나왔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 KT 수사를 두고 말들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며 "9월 미국의 리만브라더스 파산이후,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갑작스런 KT 수사는 여러가지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KT와 KTF 등은 이미 외국인 지분이 40%가 넘는 등 민간기업으로 자리 잡았지만, 정치권 등에선 (KT를) 여전히 공기업으로 보는 것 같았다"고 지적했다.

 

친정부 성향의 이석채 KT사장의 합병 급물살, 통신시장 재편?

 

'정치수사'라는 논란속에 KT는 작년말 신임 사장으로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영입했다. 민영화 이후 관료출신이 사장이 된 것은 처음이다. 일부에선 '민영기업의 자율경영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 전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국민경제자문회의 민간위원을 역임했으며,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 현 정권 실세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번 KT-KTF 합병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SK텔레콤의 고위인사가 공개적인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번 합병이 정부차원에서 제대로 공정한 검토 없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같은 분위기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업계에선 거대 통신기업의 KT와 정부와의 밀월관계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이석채 신임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내놓은 사업 내용들이 현 정부의 방송통신 정책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맞춰 IPTV와 와이브로 사업에 적극 투자하겠다는 것이나, 심지어 후발 사업자들이 추진해 온 인터넷 전화 사업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LG데이콤 등에서 내놓은 인터넷 전화는 기존 시내전화보다 크게 가격을 낮춘 것으로, KT의 주요 수입원인 시내전화 사업과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다.

 

이석채 KT의 친정부적인 정책드라이브에 방통위 등 정부에서도 적극 화답하는 모습이다. 이미 KT 합병건을 두고, 최시중 위원장을 비롯해 방통위 고위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합병 허가'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고 있다.

 

최 위원장은 지난달 15일 이석채 사장을 만나"KT가 방송통신융합의 시대 변화속에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발전하는데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했었다. 또 이병기 방통위 상임위원도 최근 기자들과 만난자리에서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사업자들이 시장 변화에 따른 자구책으로 합병할때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방송통신의 주요 규제기관인 방통위의 고위인사들이 통신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민감한 사안에 대해 너무 쉽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선 이번 합병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문제는 공정위와 방통위 등에서 합병 승인을 허가해주는 조건으로 무엇을 내놓을 것이냐인데, 이 역시 KT의 입장이 상당히 반영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많다"고 전했다.

 

공정위, 4일부터 기업경쟁심사 본격 심사 착수

 

KT는 지난달 21일 방통위에 합병인가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현행법상 방통위는 합병인가가 접수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기간동안 결론을 나지 않을 경우, 무기한 심사기일을 연장할수도 있다.

 

현행법상 방통위는 기업합병 승인을 위해선, 공정위로부터 기업 결합에 따른 시장의 경쟁제한 여부 등 의견을 수렴해야한다. 물론 공정위 의견을 방통위가 반드시 따라야 할 규정은 없다.

 

방통위 관계자는 "합병을 허가하기 위해선 공정위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면서 "공정위의 의견을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의견을 참조해 시장상황에 맞게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4일 오후 간담회를 열고, SK텔레콤과 LG텔레콤을 시작으로 이번 합병에 대한 기업들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다.

 

SK텔레콤은 이날 공정위에 낸 의견서에서 "이번 합병은 통신시장 전체의 경쟁사업자 수를 감소시키는 등 시장의 경쟁구조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면서 "기업결합 자체를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SKT의 이같은 주장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공정위나 방통위 어디에서도 아직 KT 합병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KT쪽에선 큰 무리없이 합병인가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들 뜻대로 가면, 빠르면 올 상반기 중으로 매출 20조원짜리 거대 통신공룡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태그:#KT, #최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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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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