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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공황위기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한반도까지 흔들 때 부평에 있는 GM(지엠)대우 자동차공장은 조업중단과 재가동을 반복하고 있다. 파산위기에 몰린 지엠 미국 본사의 생산 중단 명령으로 공장이 멈춘 까닭이다.

 

지난해 12월 중순, 이명박 대통령은 환한 웃음으로 사진을 찍고 공장을 둘러보며 훈시를 내렸다. 전대미문의 위기이기 때문에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이다. 굉장히 어려우니까 많은 희생이 뒤따를 테고 참고 견뎌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미국 지엠의 위기가 노동조합의 과도한 요구를 경영진이 다 들어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무슨 뜻일까. 갸우뚱하다. 그래서 결국 누가 희생해야 한다는 말인지 생각하면 마음이 참 언짢아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완벽한 노사관계'라고 칭찬한 바 있었던 일본의 도요타는 노동의 유연성을 극대화한 생산방식으로 엄청난 노동강도를 자랑한다. 반면 참혹한 수준의 복지로 빈번한 과로사가 일어나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떠오르는 기업이다.

 

대통령이 멀리 공장까지 가시어 노사화합의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자고 설파한 이유는 세계 자동차시장 생산량의 다섯 번째라는 한국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 내수 판매는 지난해에 비하여 20% 남짓 떨어졌고 수출은 아예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다.
 
혼수상태 자동차 산업, 외려 공격적 마케팅
 
미국 본사가 파산할 지경인 지엠대우나 상하이차 경영진이 대뜸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먹튀'해버린 쌍용자동차는 거의 혼수상태라 봐도 좋겠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비지니스 프렌들리'한 정부답게 이명박 정부는 온갖 기업 규제 완화와 감세를 하려 안달이다. 고환율 정책도 한몫했다. 이에 배짱과 힘을 얻었는지 자동차업계는 외려 공격적 마케팅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미국 시장을 노려 파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나홀로 독주'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자사 차량을 구매하고 1년 내에 직장을 잃거나 사업장이 문을 닫을 경우, 또한 건강상의 문제로 운전을 못하게 되면 차량을 되사준다'는 '현대 보증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는 것. '구매한 차량의 가격과 상관없이 최고 7500달러까지 보상해준다'는 조건이다.
 
뿐만 아니라, 마침 찾아온 미국 슈퍼볼에 광고 5개를 내보내는데 현대차가 쓴 광고비는 100억원 가량. 1초당 광고비가 대략 1억 4000만원인 셈이다. 하도 실적이 신통치 않으니 다들 바다 건너 시장을 집중 공략해 패권을 잡아 보겠다는 심산인 모양이다. 미국 시장에 보여주는 모습만 보면 현대차는 돈이 많아 보인다. 해외공장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했다.

 

그런데 또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현대차뿐 아니라 경영계가 입을 모아 워낙에 세계적 경제위기라 사정이 어렵다며 노동자의 임금 삭감이 당연하다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잔업과 특근이 사라져 노동자의 월급봉투는 부쩍 가벼워졌다. 하도 여러 군데 공장이 문을 닫았다 열었다 하는 판이니까 노동자들은 불안해 죽겠다.

 

아무도 모른다, 비정규직 그들의 외로움을

 

 

하지만 그나마 정규직 노동자는 나은 형편이다. 경제위기를 탓하는 자본의 칼은 '고통 분담'이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에게 먼저 떨어지고 있다. 금속노조에 의하면 실제 완성차 공장에서만 현대자동차 약 200명, GM대우자동차 약 100명, 쌍용자동차 약 300명 등 약 60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났다.

 

그 이면에는 '희망퇴직'이라고,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희망'과 '퇴직' 두 단어의 비루한 조합어가 있다.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이지만 정규직보다 더한 노동을 한다. 살벌한 틈바구니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는 홀로 외롭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때문에 제 일자리가 사라질까 무서워 좀체 비정규직을 끌어안으려 하지 않고, 정부는 실업의 공포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의 눈물에는 도무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란 원체 공황을 피할 수 없다. 경제성장의 갈등과 문제가 공황을 통해 폭발하고 회복하기 때문이다. 공황은 자본주의의 주기적인 성질이다. 역사적으로 1929년과 1974년 두 번의 세계대공황이 있었고 이번에 또 세계적 규모의 공황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공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생산의 과잉과 수요의 부족이다. 자본주의는 이윤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경쟁이 심화된다.

 

그런데 그 싸움판을 투기적 자본이 이리저리 뛰며 모험을 했다. 모험이니까 성공의 대가만큼이나 당연히 실패의 위험도 크다. 하지만 다들 신자유주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자본의 자유란 그저 좋은 것이라고 부추기기 여념이 없었다.

 

한국은 미국을 역할모델 삼아 열심히 따라하다 덩달아 고꾸라져 피멍이 주식부터 산업까지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정말이지 안타깝다. 1997년 IMF에게 경제주권을 빼앗기며 처량하게 살아남아야 했던 한국의 외환위기가 기억난다. 모험을 조심하지 않으면 그때보다 더한 공황이 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자본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며 책임을 노동에게 떠넘기기 바쁘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지하벙커까지 들어가 사뭇 비장한 얼굴로 비상경제체제를 선포하는 '쇼'를 벌였으나 보는 이가 민망했다.

 

정부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경제위기를 돌파하겠다며 열심히 밀고 있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정리해고제 완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대상 확대, 최저임금 삭감 등을 골자로 한다. 실용주의가 아니라 그냥 야만이다. 말은 노사화합이지만 실은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이 또렷하다.

 

이명박 정부, 민망한 '쇼'는 치워라 

 

대한민국의 절대다수는 노동자다. 돈을 받고 일하며 먹고 사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다. 철수네 엄마도 노동자요, 영희네 아빠도 노동자다. 이명박 정부는 반드시 경제를 살리겠다며 경제성장의 신앙을 열렬히 간증한다. 허나 실상 그동안 한국은 경제성장에 있어서 뒤처지기는커녕 오히려 앞서는 나라였다.

 

한 언론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한국은 2000년대 들어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4~5%대로 OECD 회원국 중 상위권을 달리면서도 고용률은 60% 초반으로 OECD 평균에도 못 미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는 극심한 수준이다. 경제성장을 해도 벌어들인 돈이 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이러한 숫자들은 현실 노동자의 불안을 말하기에는 체온이 부족하다. 정말 중한 것은 온기 없는 숫자가 아니라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일 테다. 대한민국은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은 이유다.


태그:#자동차산업, #비정규직, #현대자동차, #지엠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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