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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9일)은 1년 중 가장 밝은 보름달이 뜬다는 정월 대보름입니다. '율력서(律曆書)'는 한해를 시작하고 설계하는 정월을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즉 천지인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지방에 따라 각종 놀이와 행사가 열리는데,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는 ‘보름 새기’, 종기와 부스럼 방지 등 건강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부럼 깨기’와 ‘더위팔기’ 등이 대표적인 풍속일 것입니다.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 등 풍성한 먹을거리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장수를 상징하는 오곡밥은 신라 21대 소지왕이 행차를 했는데 날아온 까마귀가 왕을 깨닫게 해서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제사를 지낼 때 약밥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밤, 대추, 잣 등 약밥의 재료가 귀해 구하기 어려웠던 평민들이 잡곡밥을 해먹으면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보름날 하루만 실컷 먹었던 찰밥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돌아가신 부모와 밥해 먹느라 고생했던 누님들, 산동네 아이들과의 패싸움과 달집태우기를 했던 동네 친구들, 그리고 정겹던 아저씨·아주머니들의 다양한 표정과 익살이 떠오르며 미소가 지어집니다.

 

보름날에는 찹쌀, 찰수수, 팥, 차조, 콩이 들어간 오곡밥을 해먹었는데, 어머니는 열나흘 초저녁에 거리제를 지내고 들어와 집안 이곳저곳에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큰 시루에 찹쌀과 팥을 넣은 찰밥을 찌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아버지가 오곡밥보다 팥이 들어간 찰밥을 더 좋아했거든요. 

 

새벽까지 일하며 쪄낸 찰밥은 보름날 하루만 가족 모두가 먹고 이튿날부터는 아버지 혼자만 드셨는데요. 그믐이 가까워지면 아버지 밥 색깔도 달라졌습니다. 찰밥을 아끼느라 밥을 찔 때 시루에 깔았던 채에 묻은 밥알까지 긁어 흰밥에 조금씩 섞어 상에 올렸거든요.   

 

그래도 보름날은 먹고 싶을 때마다 부엌에 들어가 먹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찰밥은 멥쌀밥보다 영양분이 풍부하고 차진 기운이 많아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팥 광주리에 쥐 드나들듯 드나들었나 봅니다. 그렇게 맛있게 먹었으면서도 쓴웃음이 나오는 추억이지요. 곳간에 쌀도 있었고 쌀장사를 했으면서도 왜 그리 엄하게 했는지···. 

 

형제들이 모였던 지난 설에도 아버지가 곧 하늘이었던 당시를 얘기하며 웃었는데요. 아버지 입맛을 닮았는지 저는 지금도 찰밥을 무척 좋아합니다. 고소한 들기름을 발라 구운 김에 싸먹을 때 마시는 두부 탕과 명태탕 국물 맛이 그만이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대신 해주고 있습니다. 

 

도망간 입맛을 잡아줬던 묵은 나물들

 

 

대보름에는 오곡밥을 아홉 가지 나물에다 아홉 번 먹었습니다. 서당 학동들은 천자문을 아홉 번 읽어야 했고, 물을 길어도 아홉 동이, 나무를 해도 아홉 짐, 새끼도 아홉 발을 꽜다고 합니다. 매를 맞아도 아홉 번을 맞았을 정도로 ‘9’라는 숫자는 3이 세 번 곱한 큰 길수(吉數)로 여겼는데 너무 지나치게 좋다 보니 액운이 낄 수 있으니까 아홉수가 들어간 나이에는 결혼하지 말라는 속설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아홉 가지 나물 종류에는, 고사리나물, 무나물, 시래기 나물, 취나물, 호박고지, 도라지나물, 가지나물, 콩나물, 고구마 순이 있는데, 호박고지는 지난 가을에 말려놓은 게 있으니 보름날 기름에 볶아먹어야겠습니다.    

 

묵은 나물은 기름으로 볶아야 제 맛을 낼 수가 있고 필요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가 있다고 하는데, 저는 도라지와 취나물, 그리고 깻잎과 아주까리(피마자) 나무의 연한 잎을 따서 말렸다가 무친 나물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연한 아주까리 잎을 구하기가 무척 어렵더군요.

 

국물이 있는 음식 중에는 소고기에 두부를 넣고 곰탕국물처럼 맑게 끓여낸 두부 탕과 마른 명태에 무를 얇게 썰어 고춧가루와 함께 넣고 끓인 명태탕이 백미인데, 찰밥을 먹을 때 빼놓을 수 없는 보름 음식이었습니다. 두부 탕은 담백하고 시원하고 고소한 맛이 그만이고, 명태탕은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거든요.

 

대보름은 항상 24절기가 시작되는 입춘(立春)을 전후해서 듭니다. 반갑잖은 ‘춘곤증’이 찾아오는 때이지요. 봄이 되면 새롭게 도약하는 자연과 달리 겨우내 푸른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사람은 몸이 나른하고, 자꾸 졸리며, 입맛도 없어 스트레스를 받기 쉽고 일을 해도 능률이 오르지 않는데요. 지난해에 말려둔 다양한 나물로 도망간 입맛을 잡아 부족한 무기질과 비타민을 보충했던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노화억제와 항암효과가 탁월한 견과류 

 

 

엊그제는 시장에 나갔다가 아내에게 주려고 잣을 1봉지 사왔는데 처음에는 호두를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값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2만 원 하는 호두 봉지를 만지작거리다가 한 번만 먹을 것도 아니고 해서 포기하고 잣을 1만 원어치 사왔습니다.

 

호두가 엄청나게 비싸다니까 견과류 가게 주인은 미안했는지 생존경쟁에서 살아나려고 고군분투하는 청설모 탓을 하더라고요. 청설모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통에 그물을 쳐도 잡을 수 없다며 호두나 잣이 영글기도 전에 따먹어버려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며 하소연했습니다. 거기에 장사도 안 되는데 국내산은 내리고 중국산은 올랐다며 장사하기가 겁난다고 하더군요.

 

대보름날 새벽에 하는 ‘부럼깨기’ 재료인 땅콩, 호두, 잣 등 견과류에는 비타민 E가 풍부해서 노화억제 및 항암효과가 탁월해 일주일에 3-4회 먹으면(땅콩으로 25알) 효과가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니까 환자들을 돌보느라 고생하는 아내가 생각났습니다. 

 

견과류에 들어 있는 리놀렌산과 같은 불포화지방산은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몸에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춰주고, 암의 진행과 촉진을 방해한다고 해서 계피와 생강을 넣고 끓인 물에 잣을 작은 수저로 한 숟가락 넣어 기관지가 약한 아내에게 챙겨주고 있거든요.

 

턱관절을 튼튼하게 하며 뇌에 자극을 주기 때문에 뇌혈관 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되는 동시에 암을 예방하고 억제하는 물질이 다량 함유된 견과류를 기축(己丑)년 대보름을 기해 상시로 드실 것을 권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보름, #찰밥, #견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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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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