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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마다 안개가 자욱합니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법이라 생각하고 바라봅니다. 

 

꽃샘추위가 잔뜩 웅크리고 있는 요즘입니다. 완연한 봄이 오기 전에 한 번쯤을 기승을 떨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 운전을 하다 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안개가 짙어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산자락에 말라있는 작은 풀에 상고대가 활짝 피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약속시간도 있고, 차를 세울 곳도 아니라 아쉬워도 마음에 담아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아름다운 것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조금 다가가려는 마음만 있으면 우리 일상에 우리가 만나고 싶은 것들이 지천입니다.

 

너무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날씨도 따스하고 모임이 끝나고 나면 한낮이 될터이니 나중을 기약해야 할 것입니다. 약속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주위를 돌아보니 이미 아침햇살에 전부 녹아버렸습니다. 약속시간 30분 전, 잠시 산책을 할겸 카메라를 챙겨들고 걷다가 아직 햇살이 들지 않은 곳에 피어있는 상고대를 운좋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것들을 담을 장비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아쉬운대로 담을 수 있었습니다. 마르고 시든 풀, 비쩍 마른 열매, 안개, 상고대를 만들 수 있을 만큼의 추위가 어우러져 잔치를 벌이는 곳에 초청을 받은듯하여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마른잎들이 그렇게 피어날 줄은 그들도 몰랐을 것 같았습니다. 이제 봄오면 잊혀질 것들, 흙으로 돌아갈 것들이 봄 오기 전에 이렇게 예쁘게 단장을 할 것이라고 그들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지난 계절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곳에서 잠시 피어난 아름다움을 조심스럽게 담습니다. 이런 풍경을 만나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행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일상에 이미 들어와 있는 행복도 알지 못해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갈 때가 더 많습니다.

 

 

꽃을 한창 피었을 때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매 순간 아름다운 것이 자연이긴 하지만 더는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할 것 같았던 존재가 또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공평합니다. 좋은 시절 다 지났다고 생각할 때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또한 인생이니까요.

 

 

꽃같지도 않은 꽃이기에 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조차 외면당했던 쑥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나는 그에게 푹 빠져있습니다. 이제 나는 쑥꽃을 볼 때면 오늘 아침 만났던 이 모습을 떠올리며 감사할 것입니다.

 

절망같이 보이는 이 세상에도 희망의 편린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희망을 노래할 것입니다. 혹자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것은 사치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치라도 꼭 누려야할 사치입니다. 그런 사치는 모든 것이 풍족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제 다시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을지 나도 모릅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런 잔치가 그 곳에서 계속된다고 해도 주어진 일상으로 인해 나는 그곳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니면 내일 아침 큰 맘을 먹고 이 곳에 다시 온다고 해도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지금 만나는 것, 그것을 소중하게 바라는 것은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결과만 보고 달려갑니다. 과정을 필요없다고 합니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래서 지금 당장 고통당하는 이들에게도 강압적으로 그 고통을 감내하라고 합니다. 조금만 더 고통을 참으면 될일인데 아우성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니,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건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 구성원 중에서 누군가 고통을 느끼고 있다면 감내하라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라 분담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사는 세상입니다.

 

 

새까맣게 말라버린 나뭇잎. 지난 가을 단풍이 알록달록 물들 때조차 아름답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그럴 줄 알았을까 싶고, 이렇게 아름답게 피어났음에도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는다면 슬펐겠다 싶기도 합니다.

 

안개 자욱한 봄날 아침, 풀섶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꼭 보고 싶었던 그 풍경을 도시에서 살다보니 너무 오랜만에 보았습니다. 착한 일 한 것도 없는데 큰 상을 받은 것 같아서 감사한 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상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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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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