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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대보름을 이틀앞두고 집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에 가보았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장도 보고 산책도 하고, 대목을 앞둔 재래시장 실태도 조사할겸, 사드락사드락 나선 길이었다. 때는 저녁 7시 35분 가량.

 

 

요즘 불경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재래시장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추운 날씨에 불을 지펴놓은 상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거나, 간혹 지나는 행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여느 때 같은 적극적인 호객(?)행위도 없었고 한푼이라도 더 값을 깎으려는 시장주인과 손님 간의 에누리 소리조차 없었다. 웃음소리, 고함소리, 차 경적소리, 음식굽는 냄새, 왁자지껄한 사람 내음이 사라진 시장의 모습은 촉이 나간 전구를 보는 듯 싸늘한 기분이 들었다.

 

큰 규모의 시장은 아니지만 명절같은 대목에는 으레 차량이 마비되던 곳이었다. 장을 보러나온 사람들의 인파에 떠밀려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분주한 시장이었다. 물론 아직 대보름을 앞둔 주말이 남아있긴 하지만 여느때 금요일 저녁과 비교해보아도 너무 썰렁한 시장의 모습이다. 상인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보다보다 이렇게 장사안되는 때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에서 10년간 나물을 판매했다는 김원상(65) 씨는 꽤 이른 시간인데도 점포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얼마나 팔았느냐는 질문에 “삼만 원도 못팔았다”고 말했다. 더 이상 있어봐야 손님도 올 것 같지 않아서 오늘은 이만 장사를 접을 거라고 했다.

 

맞은 편에서 어패류를 판매하는 오미순(49)씨는 “IMF때도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래도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나면 다만 얼마라도 손에 남는 게 있었는데 요즘은 아예 손님이 들지않는다.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사람 구경하기가 정말 힘들다. 명절도 시절 좋을 때의 얘기지, 먹고살기 힘든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얼마나 명절을 챙기겠느냐”고 푸념했다.

 

견과류를 판매하는 쪽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15년째 잡곡을 판매해 온 이영자(56)씨는 높은 환율 때문에 땅콩이나 잣, 호두 가격이 배로 뛰어올라 작년에 비해 반절도 채 들여놓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예전같으면 넉넉하게 물건을 들여놓고 지나가는 손님에게 조금씩 맛보라고 나눠주기도 하고 퍽퍽 퍼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단골아니면 그런 인심도 못쓴다니까요. 물건을 팔고 못팔고를 떠나서 경제 사정이 갈수록 안좋아지다보니 내 마음도 더 구두쇠가 되는 것 같다니까요. 그게 젤 서운하죠.”

 

“요즘 누가, 이런 거 만들어 먹나요”

 

재래시장에 이렇듯 찬 바람이 부는 탓에는 명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탓도 있었다. 예전에는 정월대보름은 4대명절에 포함될 정도로 큰 명절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정월대보름을 그렇게 크게 마음두지 않는다.

 

특히 젊은 주부들은 설날에 쌓인 노독이 풀리기무섭게 돌아오는 대보름 명절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명절날처럼 어른들을 모시고 지내야하는 것도 아니고, 휴일도 아닌 마당에 각자 집에서 정성껏 명절 음식을 만들어먹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안팔리죠. 진짜 안팔려. 요즘 누가 이런 거 해먹나. 우리때의 얘기지. 요즘 젊은 사람들 대보름날 뭘 먹는지도 잘 모를껄. 누가설사 안다고해도 마트에 가지 사지 이런데는 안와요. 갈수록 젊은 사람들이 장보러 오는 게 보기 힘들어.”

 

재래시장 상인들의 소망은 똑같다. 하루빨리 경기가 풀려 올해는 장사가 좀 잘 되었으면 하는 것외에는 별달리 다른소원은 없다. 예전같은 활기참과 시끌벅적함이 철철 넘치는 곳. 퍽퍽 퍼내주어도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인정이 살아있는 그곳이 그립다. 사람사는 맛이 물씬 나는 시장을 다시 꿈꾸는 것. 이것이 정월대보름 그들이 소망하는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재래시장, 이래서 젊은주부에게 유리하다!

 

썰렁한 재래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재래시장 특유의 훈훈한 인심은 남아있었다. 한 소쿠리분량의 나물을 사면 어김없이 덤으로 한두 주먹분량의 나물을 얹어주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을 보면서 마음한켠에 난로를 켠듯 훈훈해졌다. 값이 비싸다는 견과류도 마찬가지. 일단 그냥 보내는 법 없이 조금씩 더 얹어주고 게다가 레시피까지 자상하게 일러주기도 한다. 혹은 내가 일부러 물어보기도 했다.

 

“할머니 이거 진짜 국산맞지?”

“맞당게. 이게 중국산이고 이게 국산 맞어. 맞다니께.”

“울 시어머니가 알면 나 혼나. 잘 사가야돼요. 근데 이거 어떻게 먹어야 맛있어요?”

“어떻게 만들긴... 시엄니랑 같이 산다면서 뭘 물어봐. 그냥 시엄니한테 물어보면 돼지.”

“그래도 제가 잘 몰라서요. 좀 알려주세요.”

“그냥 조선장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볶으면 되지. 깨즙 좋아하면 깨가루넣고 볶으면되고, 아니면 그냥 볶아먹으면되고.”

“이거(호박고지) 많이 불려야 되나?”

“아녀. 금방 불응께 한시간쯤이면 되려나...”

“새댁, 그런 거 할때는 들기름으로 볶아야되요. 그래야 더 맛있어. 참기름으로 볶으면 안돼. 참기름은 콩나물이나 시금치나물에 넣어야 더 맛있거든.”

옆에서 과일을 팔고있던 한 젊은 아주머니가 거들어준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마터면 참기름으로 볶을 뻔했다.

 

 

이날 정확히 만 칠천원어치 장을 봐가지고 돌아왔다. 고사리나물, 파, 호박고지, 토란대, 양송이버섯, 땅콩 등..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재래시장은 젊은 주부들에게 유리하다. 물건을 사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나누다보면 의외로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되기 때문이다.

 

우선 좋은 물건을 사는 법, 맛있게 만들어 먹는 법을 알게된다. 이거 매우 중요하다. 요리책이나 인터넷에서 얻을 수 없는 생생정보가 있다.

 

혹은 그 물건이 여기까지 오게된 경위같은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다. 대개는 이런 식. ‘이거 우리 시골에서 직접 다듬고 삶아서 말린 것이야’이라든지, ‘우리 친정에서 직접 시골텃밭에서 기른 것이야.’...그런 이야기들이다. 물론 믿거나말거나.

 

요즘 재래시장도 믿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단순히 기계에서 일률적으로 찍혀나오는 상품에 비해 그런 이야기가 있는 먹을거리는 훨씬 믿음직스럽다.

 

무엇보다, 젊은 주부가 재래시장에 있으면 확연히 눈에 띈다. 온 상인들의 눈길을 한 눈에 받게 된다. 대개는 무척이나 기특해하는 눈빛이다. 만약, 물건을 구입하면서(꼭 구입해야한다) 음식만드는 법에 대해 은근히 물어보라. 아마 신이 나서 알려줄 것이다. 정말 소상하게도 알려준다. 물건 덤으로 얹어주는 것도 물론이다. 평소 이야기상대가 그리웠던 그들에게 싹싹한 젊은 주부는 최고의 VIP가 될 수도 있다.

 

조금 무겁긴해도, 불편하긴 해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재래시장은 젊은 주부에게 이래저래 완전 유리한 곳이다. 

 


태그:#재래시장, #정월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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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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