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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 보느라 바빠요.” 요즈음 제 입에 붙은 말입니다. 그러나 말이 이럴 뿐이지, 정작 제 삶은 “아기 돌보랴 집살림 꾸리랴 국어사전 만들랴 사진 찍으랴 눈코 뜰 새 없을 뿐 아니라 밥술 뜰 겨를조차 없어요.”입니다. 아마, 아이를 낳아 길러 본 어머님들은 아실 테지요. 아이키우기는, 젖 먹이고 기저귀 빨고 하는 일로 그치지 않음을. 게다가 집안일이란 하고 또 해도 끝이 나지 않으나 잠깐만 손을 놓아도 잔뜩 쌓이거나 밀리게 됨을. 밥하고 치우고 빨래하는 일만으로도 하루해가 모자람을. 이러는 가운데 아이키우기도 함께하고, 글쓰고 사진찍고 돈까지 벌어야 하니까 몸이 도무지 남아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회사 다니는 남자’하고는 주고받기 어렵습니다. 하나도 알아먹지 못할 뿐 아니라, 뚱딴지 같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사 다니는 여자’도 형편이 비슷합니다. 거의 똑같이 못 알아먹습니다. 저한테 어떤 사진 일감을 맡긴 분이 “아이 키운다는 핑계 ……” 어쩌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짜증이 아닌 꼭지가 돌 뻔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모르는가 싶어서. 그렇지만, 그분은 그분대로 자기 삶을 꾸려 왔기 때문에, 그분 눈으로만 세상을 볼 뿐, 너른 눈으로 보는 세상이 아니었기에, 짜증을 낸다 한들 왜 짜증을 내는지 알 턱이 없고, 꼭지가 돌아도 왜 꼭지가 도는 줄을 깨달을 턱이 없겠구나 싶어서 아뭇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저는 그 여자 어르신이 일감을 맡긴 날짜에 맞추어 사진을 찍어내어 넘기면 되고, 저는 제 깜냥껏 아이키우기를 하면서 사진을 즐기면 됩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도 그렇고 낳고 나서도 마찬가지인데, 집안일을 거의 모두 제가 맡아서 하다 보니, 옆지기가 안쓰러워하면서 “힘들지?” 하고 묻습니다. “다 생각하고 있던 일인데 뭐.” 하고 대꾸합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든 옆지기인 터라 젖물리기와 잠재우기를 뺀 거의 모든 일을 도맡게 된 살림꾸리기라서, 이제는 그예 내놓고 “힘들어, 힘들어.” 하고 읊고 다니는데, 이렇게 읊는 동안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아파할 때 아픔이 찬찬히 가시듯, 힘겨움 또한 조금씩 수그러듭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아기를 안고 (골목길) 사진 찍으러 다니면 많이 달라질 거예요.” “아무렴, 혼자 다닐 때하고 아기와 함께 다니며 사진 찍을 때는 동네사람들 눈길도 사뭇 다르지.” 참말 그렇습니다. 홀가분하게 일을 못할 뿐더러 사진 또한 못 즐기니 갑갑하지만, 한손으로 아기를 안고 한손으로 사진기를 들며 골목길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는 동네 어르신들은 ‘저 양반 뭐 하나?’싶은 얼굴이면서도 ‘뜨내기는 아니구먼!’ 하는 낯빛이라 언제나 웃음이 납니다.

 

 

사진책 《中國の朝鮮族》을 만났을 때 꼭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니, 일본사람 주제에 어떻게 이런 엄청난 사진책을 펴냈지?’ 하고 생각했는데, 사진책을 낸 야마모토 야사후미 님은 《중국땅 조선족》을 펴내기 앞서, 일찌감치 ‘일본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었고, ‘일본이 일으킨 전쟁 때문에 애꿎게 원폭피해자가 된 조선사람’을 사진으로 담고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씀은 러시아에 남겨진 조선족한테도 이어졌고, 남녘과 북녘으로 갈린 한겨레 아픔과 생채기를 읽어내는 데로도 이어졌습니다. 헌책방에서 드문드문 이분 사진책을 만났는데, 한 권 두 권 만날 때마다 가슴을 후려치는 주먹질을 느끼면서 눈물이 핑 돕니다. ‘그래, 일본사람 주제에 한국사람 아픔을 이렇게까지 담아낼 수 있단 말이지…?’

 

 섣부른 다가섬이었다면 함부로 ‘조선족’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어설픈 사진질이었다면 쉬 ‘남북녘 한겨레’ 사진을 찍을 수 없습니다. 사진쟁이 야마모토 야사후미 님은 ‘사진감 가운데 하나로 조선족을 꼽았을 뿐’이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이분이 내놓은 사진책을 열 번 넘기고 스무 번 들추고 서른 번 되새기는 가운데, 사진은 자기 삶을 온통 내바칠 때 엮어낼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기다리면서 엮어내는 사진이고, 다가서면서 이루어내는 사진이며, 자기뿐 아니라 자기 아이들한테도 물려줄 만하게 다져 놓는 사진입니다.

 

 헌책방 〈숨어있는 책〉을 찾아갑니다. 이곳 〈숨어있는 책〉은 서울 노고산동(신촌) 골목길 안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1999년 11월에 문을 열었으니 어느덧 열 해가 되는 살림살이입니다. 저는 1999년 12월부터 한 주에 한 번쯤 꼬박꼬박 이곳을 들러, 늘 열 권 남짓 되는 책을 장만했고 이 가운데 서너 권은 으레 사진책이었습니다. 야마모토 야사후미 님 책도 바로 이곳에서 만났습니다. 아마, 야마모토 야사후미 님 사진책을 만난 날에도 책방 아저씨한테 얘기했을 텐데, “이런 책을 이렇게 싸게 팔면 어떡해요? 오천 원 더 받으셔요.” “얘는 무슨 소리야, 그냥 그거만 내.” “책한테 미안하잖아요.” “됐어, 다음에 또 들어오면 그땐 올려서 붙일게.”

 

 그러나 다음에 이 책이 다시 들어왔을 때 들여다보면 책값은 그대로입니다. “야, 그렇게 받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난 그렇게 못하겠더라.”

 

 온삶을 책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인지 〈숨어있는 책〉 아저씨는 ‘좋은 책을 마땅한 값을 치르고 사 가도록 하는 일’보다 ‘좀더 눅은 값으로 더 널리 나눌 수 있는 길’로 가고 맙니다. 그래도 이런 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거나 아예 책방 나들이조차 안 하는 사람이 참 많지만, ‘아무개 출판사 편집장’이란 이름을 스스럼없이 내놓고 헌책 하나 만지는 당신은 늘 꿋꿋합니다. 즐겁습니다. 헌책방마실을 할 때마다 늘 새로 배웁니다.

 

 

사진책 + 사진책을 캐낸 헌책방

 

- 야마모토 야사후미 님이 펴낸 《中國の朝鮮族》은 중국땅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 삶과 삶터를 담아낸 사진책입니다. 이제 중국 연길시는 남녘나라로 돈벌러 들어오는 조선족이 몹시 많아지면서 차츰 숫자가 줄어 ‘자치구 해제’가 되었고, 이 사진책에서 엿보이는 만큼 고유한 문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냉전 서슬이 시퍼렇게 남아 있던 1980년대라고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뚫고 한겨레를 사랑하고 아끼는 눈썰미를 소롯이 담아낸 애틋한 사진책입니다.

 

- 헌책방 〈숨어있는 책〉 : 02) 333-1041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사진잡지 <포토넷> 2009년 2월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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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사진, #사진책, #야마모토 야사후미, #헌책방, #숨어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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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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