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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결정되면 일사천리 막가파식으로 추진되던 골프장 사업이 취소되는 ‘기이한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골프장이다. 지난 1월 14일, 시행업체인 (주)동해임산은 구정리 일대 105만1256㎡, 18홀 규모로 추진해오던 골프장 사업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구정리 골프장 예정지는 2008년 국정감사를 비롯해 언론을 통해 사전환경성 평가 부실 작성과 고의 누락 사례로 문제제기를 받아왔다. 천연기념물 제328호인 하늘다람쥐를 비롯하여 삵, 담비, 수달과 같은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지만 사전환경성 평가서에는 모두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주민들이 야생동물전문가의 도움으로 설치한 CCTV에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이 촬영되면서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서식 유무를 두고, 논쟁만 무성했던 멸종위기 야생동물들의 존재가 실제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골프장의 중점 사전환경성 검토항목 및 검토방법 등에 관한 규정'은 “골프장 사업계획 부지 내에 야생 동·식물보호법에서 정하고 있는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지역은 제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멸종위기종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구만리 골프장 예정지는 법적으로 골프장이 건설될 수 없는 곳이다.

 

다행히도 구정리 골프장의 경우, 해당 토지를 체육시설용지로 용도변경 승인을 하는 도시관리계획변경 결정 이전에 사업자가 스스로 사업을 철회하여 불필요한 갈등이 사라지게 된 셈이다.

 

멸종위기 동물 발견... 용도변경 승인 전 사업자 스스로 철회

 

멸종위기종 서식지가 사전환경성검토서에서 누락된 채 지방환경청의 협의를 통과한 사례는 구정리 골프장 예정지만이 아니다. 강원도에만 홍천 구만리 골프장, 횡성 섬강 골프장, 원주 여산 골프장 등에서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의 조사결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조건부로 승인한 안성시 신미산 골프장 예정지에서도 황조롱이와 같은 멸종위기종 야생동식물이 다수 발견되었다.

 

문제는 사전환경성 검토서에 누락된 멸종위기종 야생동식물이 골프장 추진 중에 발견되어도 사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하다는 것.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골프장이 건설될 수 없는 지역에 잘못된 평가방법으로 행정절차를 통과해, 골프장이 건설될 수 있는 땅으로 용도변경 되면 이를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행정과 사업자의 잘못으로 주민들은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골프장 건설을 둘러싼 갈등에 휘말리는 것이다. 주민들이 받는 정신·재산상의 피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지난해 6월부터 매일매일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느라 농사도 제대로 못 지었지요. 지역발전 위해서 하는건데 뭘 그렇게까지 반대하느냐는 주변의 눈총도 따가웠어요. 우린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데... ”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골프장 대책위원회 조승진 사무국장의 말이다. 조 사무국장은 "사실, 시장이 너무 밉다. 행정상의 실수, 업무처리 부진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라며 취소결정에 대한 소감을 대신했다.

 

주민들, 골프장 건설 재시도할까봐 '노심초사'

 

구정리 골프장 주민들은 골프장 사업이 취소되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이미 사업자는 70% 이상의 땅을 매입한 상황에서 이 땅을 그대로 놔 둘리 없기 때문이다. 설계를 재변경하든, 컨소시움을 구성하여 문제가 되는 지역을 뺀 채 언제든지 재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 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들릴지 모른다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있지만, 구정리 주민들은 새롭게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주민들이 나서서 골프장 대신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사업이 강릉 생명의 숲에서 계획하고 있는 숲 문화기행이다. 인근에 있는 수목원과 연계한 숲 탐방도 구상하고 있다. 골프장 때문에 사라질 뻔한 소나무 숲을 시민들과 함께 가꾸어 가고 싶은 마음에서다. 환경부에는 멸종위기종 야생동식물이 발견된 숲에 대해 녹지자연도와 생태자연도 등급을 상향 조정해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할 계획이다. 자연환경이 잘 보전되어야 마을도 주민들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 골프장 사업 취소는 일종의 골프장 건설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전주곡이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에 비유되던 골프장 건설도 이젠 잘못하였으면 멈추고, 없던 일로 돌릴 수 있다는 선례가 되었다.

 

물론, 골프장 사업은 취소되었지만, 주민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는 응어리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골프장으로 뭉쳤던 구정리 주민들의 단합된 힘과 억울함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새로운 에너지로 더욱 빛이 나야 하는 이유다.


태그:#강릉 구정리, #골프장, #사전환경성 평가, #사업취소, #야생동물서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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