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와 유가족들은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앞에서 '오늘 검찰은 죽었습니다'는 검은 현수막과 고인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용산철거민 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와 유가족들은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앞에서 '오늘 검찰은 죽었습니다'는 검은 현수막과 고인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용산철거민 참사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9일 검찰의 용산참사 수사 발표가 나자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텔레비전을 지켜보던 한 철거민은 "어차피 이럴 줄 알았다"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이런 느낌은 비단 철거민에게만 든 것이 아닐 터이다. 우리 국민의 다수는 애초부터 검찰의 수사를 기대하지 않았다. 이에 부응하여 검찰은 예상대로 가혹한 수사 결과를 내놓았다.

검찰은 수사본부가 결성되자마자 제2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농성자들부터 대뜸 구속했다. 또 그들은 유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시체를 부검했다. 이어 현장에 있었던 농성자와 유가족들의 증언을 철저히 배제한 채 특공대원들의 증언에만 의존했다. 반면 작전 책임자인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는 소환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일련의 사실들은 '검찰의 수사 결과가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것 아닌가'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정병두 수사본부장은 사건 개요를 발표하면서 시너와 화염병만 거론했지 물대포와 컨테이너는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 심지어 그는 농성자들이 준비한 골프공 개수까지 소상히 밝히면서도 경찰의 직무 남용은 물론 실수조차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6명이나 죽은 참사에 경찰은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이 된다.

검찰 수사 발표의 다섯 가지 맹점

이번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서는 적지 않은 맹점이 드러난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거론해 보기로 한다.

첫 번째 맹점은 검찰이 "화재가 경찰 진압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마땅한 근거가 없다. 따라서 이것은 단언해서는 안 되는 문제다. 화재는 특공대가 투입된 지 25분만에 발생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만약 특공대가 투입되지 않았더라면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을 확률이 아주 높다. 이로써 볼 때 농성자에게 100% 책임을 전가한 검찰 수사는 설득력을 잃는다. 검찰이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있다면 농성자와 함께 경찰의 쌍방 책임을 거론했어야 옳다.

검찰은 이보다 한 술 더 떠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호하고 나섰다.

"농성자들의 화염병 투척으로 인해 시민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현존하는 상황이었다. 공공에 대한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경찰의 진압이 위법한 조치였다고 보기 어렵다. 경찰의 안전 대비에도 문제가 없었다."

농성자들의 화염병이 도로나 옆 건물에까지 투척되었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기로 하자. 하지만 그 화염병으로 무슨 큰 피해라도 있었던가? 검찰은 화염병으로 인해 도로 교통이 지체되었고 옆 건물에 불이 붙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하루만에 특공대를 투입한 경찰의 처사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아무리 그렇다손 치더라도 도로 소통이나 옆 건물 보호를 위해 6명씩이나 되는 생명이 희생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검찰 말대로 경찰의 안전 대비에 문제가 없었다면 왜 참사가 일어났는가. 이것이 검찰 수사 발표의 두 번째 맹점이다.

국과수의 과학수사를 뒤집은 검찰의 수사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은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철거민 참사에 대한 검찰조사결과를 반박했다.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진상조사단'은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용산철거민 참사에 대한 검찰조사결과를 반박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세 번째 맹점은, 검찰이 화재 발생과 사망은 '제3자의 독립적 행위'였다고 하면서 "시너 투기와 화염병 투척에 의해 야기돼 경찰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한 만큼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떻게 시너와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가 '제3자의 독립적 행위'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주장은 경찰과 농성자들의 접촉이 전혀 없었을 때라야 가능한 것 아닐까?  그리고 화재가 경찰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농성자와 함께 희생된 특공대원은 또 뭐란 말인지. 그가 경찰의 지배영역을 이탈이라고 했다는 말인가?

네 번째 맹점은 검찰이 동영상에 나타난 얇은 불꽃을 근거로 발화 지점이 망루 3층이라고 확정했다는 것이다. 망루 3층이라야 4층에 있던 농성자들의 화염병 투척과 결부시킬 수 있기 때문일 터이다. 발화 지점은 원래부터 논란거리였고 미궁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화재 감식 결과, 망루가 화재 당시 고열로 완전 붕괴해 발화 장소를 특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건에서는 당시 화재 현장에 없어서 증거 수집에 한계가 있다고 발뺌하던 검찰이 유독 이 건에 대해서는 국과수의 과학수사를 뒤집는 엄청난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검찰이 수사 결과 발표 때에 애써 만들어 가지고 나온 모형 망루는 아마 이런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다섯 번째 맹점은, 검찰은 '시너에 화염병을 던져 화재가 났다'면서도 그 시너를 누가 뿌렸는지, 그리고 화염병을 누가 던졌는지를 전혀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검찰은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은 없는' 해괴한 수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국과수의 과학 감식도 뒤집는 검찰의 수사력이라면 이쯤은 밝힐 수 있어야 논리가 서는 것 아닌가? 하지만 검찰은 이를 밝히는 대신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농성자들만 구속해 버렸다.

검찰 수사의 실질적 지휘자는 이 대통령?

서울지검 정병두 1차장 검사가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대회의실에서 지난달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 '용산철거민 참사'에 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지검 정병두 1차장 검사가 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대회의실에서 지난달 20일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 '용산철거민 참사'에 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번 검찰의 수사는 경찰을 비호하고 경찰의 잘못을 은폐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처럼 보인다. 정병두 수사본부장의 발표는 딱하게도 경찰 대변인이나 한나라당 수구 의원들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한국 검찰이 권력이 결부된 수사에서 한 번이라도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었던가? 검찰은 가장 '검찰다운' 또는 가장 '검새스러운' 수사 결과를 냈을 따름이다. 하지만 희생된 농성자들과 유가족들의 처지를 조금만이라도 감안했다면 이렇게까지 일방적인 발표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면에서 이번 수사의 실질적 지휘자는 정병두 수사본부장도 아니고 임채진 검찰총장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용산 참사가 있은 후 이명박 대통령이 수사에 영향을 끼칠 만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석기 경찰청장 문책 여론이 비등하던 지난 1월 30일 SBS <원탁대화>에 출연해 "공직자에게 정치적 책임만 묻는다면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누가 일하겠느냐?"며 "지금은 경찰청장의 내정을 철회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2월 9일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기 직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용산 참사와 관련해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지만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의 사퇴 여부는 시급한 일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권력의 개'와 '권력의 시녀' 중 뭘 택할 텐가

대통령이 이런 말을 앞서 하는 마당에 검찰이 대통령의 의중과 다른 결과를 내놓기란 한국 검찰의 속성상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국민들은 이번 수사를 지휘한 정병두 검사가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의 전문위원이자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재직할 당시 벌어진 이른바 '황제 테니스' 사건에 무혐의 처분을 내린 인물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있다.

유가족들과 각종 시민단체 그리고 야당에서는 검찰의 수사 결과에 일제히 분노를 터트리고 있다.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은 "사건 발생 20일이 지나고 나서야 검찰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결과를 발표했다"면서 "경찰이 앞으로 물리적 폭력과 살상을 가해도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 경찰이 마치 007영화처럼 살인면허를 가졌다는 것을 검찰이 확인시켜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검찰 발표 후 이곳저곳에서 검찰을 두고 '권력의 개', '권력의 시녀'라고 부르는 듯하다. 이것 역시 지난 '잃어버린 10년' 동안에는 우리가 잘 들을 수 없었던 소리다. 그런데 이런 불명예스러운 이름들이 다시 한국 사회에 풍미하고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검찰이 우뚝 서 있다. 미안하지만 검찰은 어차피 '개' 또는 '시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정황이 되었다. 선택이 어려우면 둘 다 이름으로 가져도 좋다.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는 것이 오늘 한국 검찰의 자화상이니까.


태그:#용산참사, #검찰, #권력의 개 시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