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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달집 태우기 보고 싶다고 조른다. 돼지 뼈다귀 해장국을 먹고 배가 든든한지 가잖다. 아직 4시 30분밖에 안 되었는데도 조른다. 진주는 5시 45분쯤 달이 뜬다고 했기에 1시간 이상이 남았다.

 

"아빠 달집 태우는 것 보고 싶어요?"
"아직 멀었잖아. 조금 기다려."

"달은 몇 시 뜨요?"

"진주는 5시 45분쯤은 뜬다고 했다. 한 시간 이상 남았으니 조금 기다려."

 

하지만 5시가 되자 가자고 보채니 어쩔 수 있나. 조카와 우리 아이 셋을 데리고 남강 둔치로 갔다. 너무 빨리 간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는 기우였다. 사람들은 많았다.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모두 달집을 보면서 무언가를 빌었다.

 

 

 

우리 가족은 보름달과 달집에 대한 신앙은 없다. 하지만 이들이 빌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큰 아이쯤 되는 아이들이 달집에게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엿듣기로 했다.

 

"니는 머 빌었노."

"내는 우리 아부지 회사 잘 다니도록 빌었다."

"나는 동생하고 잘 지내도록 빌었다. 만날 싸우모 엄마 내만 혼낸다 아이가. 고마 내가 동생 하고 잘 지내는 마음 달라고 빌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4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아버지 회사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힘든 세상임을 알았다. 그래 동생 사랑하는 마음을 빌었으니 올해는 동생하고 잘 지내기를 바란다.

 

다른 동네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는 정월대보름만 되면 잔치가 벌어진다. 벌써 잔치가 벌어졌다. 막걸리와 돼지고기, 김치, 떡과 과일을 함께 먹으면서 사람들은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5시 50분쯤 보름달이 떴다. 한순간 환호성과 함께 달집이 훨훨 타올랐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타오르는 달집을 보면서 사람들은 빌고 빌었다. 왜 저토록 빌고 비는지, 왜 저토록 빌 것이지 많은지 궁금하고 궁금했다. 민중들의 빈한함을 다 태우고 그곳에 따뜻함과 평강을 한 없이 채워줄 수 있을까.

 

 

 

달집이 다 타버리자 사람들은 쥐불놀이를 했다. 쥐불놀이 불꽃이 둔치 잔디와 풀섭에 붙었다. 억새도 있고, 잔디와 이름 모를 수많은 풀도 '탁' '탁' 소리 내면서 타 들어갔다. 타 들어가는 풀들을 보면서 용산철거민참사가 떠올랐다. 그들도 잔디처럼 타들어갔다. 그들도 이름모르는 풀처럼 타들어갔다. 그래다 잔디와 억새, 풀은 따뜻한 봄이 오면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지만 그들은 새생명으로 태어날 수 없다.

 

오늘 권력은 거짓을 발표했다. 진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버렸다. 그래 저 달집과 풀섭과 억새와 잔디를 태워버린 불처럼 올해 거짓된 권력을 태워버리는 민주주의가 다시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 정월대보름 남강 둔치에서 달집 태우기와 쥐불놀이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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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쥐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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