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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이 억새 태우기를 기다리고 있다.
▲ 억새 태우기에 찬가한 관람객들 관람객들이 억새 태우기를 기다리고 있다.
ⓒ 박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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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여분 만의 일이었다. 한순간에 산상에 들이닥친 화마는 9일 자정 현재 50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사고는 화왕산 정상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동남쪽 배바우, 헬기장 부근에서 발생했다. 그 당시 기자는 배바우 봉우리가 내려다 보이는 화왕산 정상에 있었다.

본 행사는 9일 오후 5시 배바우산악회 주관으로 상원제가 40여분 거행됐다. 이어 축포가 밤하늘을 수놓을 즈음 세 사람의 제관들이 가족의 화목과 사랑, 건강을 기원하는 소지가 빼곡하게 달라붙은 달집에 불을 붙였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때 화왕산성 동문 위로 둥그런 보름달이 떠올랐다. 이때만 해도 대형 참사가 생기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화왕산 상원제를 김충식 창녕군수가 올리고 있다.
▲ 상원제 화왕산 상원제를 김충식 창녕군수가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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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이 상원제를 지켜보고 있다.
▲ 상원제를 지켜보는 관람객 관람객들이 상원제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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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제 제관들이 달집 사르기를 하고 있다.
▲ 달집점화 상원제 제관들이 달집 사르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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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이 뜨는 것을 시작으로 달집을 살랐다.
▲ 달집 사르기 보름달이 뜨는 것을 시작으로 달집을 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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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달집 태우기를 지켜보는 것보다 억새가 타는 장관을 카메라에 담을 요량으로 화왕산 정상을 향했다. 그때 안내자는 계속해서 "관람객 여러분! 곧 이어서 억새 태우기 행사를 거행할 예정이니 빨리 억새밭에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달집이 다 탈 때까지는 억새에 불을 붙이면 안 됩니다. 약속을 지키고 방화선 밖으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 공지했다. 이때부터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방화선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방화선 밖으로 물러나 있었다

채 어둠이 짙어지기 전이라 화왕산 정상에서 배바우 바위 주변은 환히 내려다 보였다. 그곳뿐만 아니라 산성을 에워싸듯 곳곳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억새 태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바우 바위 위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 있었다. 평소 같으면 기자도 정상에서 화왕산 억새를 조망하는 것보다 배바우에서의 경치를 한층 더 좋아했다. 그래서 화왕산 산행 경험이 있는 등산객일수록 그곳을 선호했으리라 짐작한다(그런데 왕왕 그곳에 서면 산성 골바람이 심했다).

달집이 사그라질 때쯤 억새 태우기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오늘 화왕산 억새 태우기에 참가해 준 모든 관람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신호에 맞춰 억새에 불을 붙이겠습니다. 모두가 불잽이가 되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 둘! 셋!"

신호에 따라 산상 둘레 12㎞에 이르는 억새밭에 일제히 불길이 살아 올랐다. 순식간이었다. 그동안 억새 태우기 행사에 몇 번 참석했던 기자였지만 이번 불길은 예전보다 훨씬 거세게 타올랐다. 몇 달 동안 가뭄에 억새가 불쏘시개처럼 바짝 말라 있었기 때문이다.

억새에 불을 댕기자마자 화들짝 순식간에 탔다.
▲ 불바다 억새에 불을 댕기자마자 화들짝 순식간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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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짝 마른 억새가 타는 불기운은 맹렬했다.
▲ 불바다 바짝 마른 억새가 타는 불기운은 맹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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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둥이 산등성이를 넘나들고 있다.
▲ 산등성이를 넘나드는 불기둥 불기둥이 산등성이를 넘나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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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용광로와 같은 불바다
▲ 불바다 마치 용광로와 같은 불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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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운은 거셌다. 20여m에 달하는 방화선 끄트머리까지 물러섰지만 견디기 힘들 만큼 따가웠다. 그렇지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에 모두들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는 불기둥을 보며 연신 디카를 눌러댔다. 순식간에 산상 억새밭은 그야말로 화산이 폭발하듯이 온통 불바다가 되었고,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광로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장관은 불과 십여 분에 지나지 않았다. 그 많던 억새밭이 새까맣게 타버려 한 가닥도 남아 있는 억새 대궁이 없었다.

산상 억새밭은 그야말로 화산이 폭발하는 불바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잔불들은 방화요원들이 가벼운 등짐 유등소화기로 끄고, 관람객들도 등산화 발로 문질러 껐다. 그리고 이내 하산을 서둘렀다. 하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열기와 잔불들로 쉬 발 디디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서려 있어 앞을 분간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저 앞 사람 발치만 보고 따라 걸었다.

한참을 그렇게 걸었을 때다. 일행 중 누군가가 "배바우 쪽에 불이 넘어간다"고 외쳤다. 걸음을 멈추고 배바우 쪽을 바라보았다. 웬걸, 불이 다 꺼진 줄 알았는데, 그쪽은 처음 불을 지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불기운이 맹렬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한참을 내려왔는데도 그때까지도 불기운은 사그라지지도 않고 드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일행은 산불이 났다고 생각했다.

당일 산성 위나 배바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 산성 위의 사람들 당일 산성 위나 배바우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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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에 이르렀을 때 한꺼번에 하산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겨우 계단에 발을 딛고 동문을 벗어났다. 얼마쯤 그렇게 걸었을까. 흰색 카렌스 차량 한 대가 경광등을 켜고 "사곱니다! 비켜주세요. 사곱니다! 비켜주세요"를 외치면서 차를 몰았다. 하산하는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며 길을 비켰다(이때까지도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화재 참사를 모르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화재 참사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동문에서 20여분을 걸어 막 임도에 도착했을 때 방금 지나간 차량에서 불탄 사람을 구급차 들것에 옮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물론 그 순간까지도 산상에서의 참사를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순간, 아들의 휴대폰이 울렸다. 공주에 있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온 것이다.

"현아, 창녕에서 억새 태우기를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고 하는데, 너는 괜찮아?"
"응, 나 지금 산을 내려가고 있는 중이야. 그런데 어떻게 알았니?"
"방금 뉴스에 나왔어?"
"그래, 나는 모르는 사실인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 구급차가 줄을 이었다. 소요가 일어났다. 일행 중에 먼저 하산하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동행을 챙기느라 부산했다. 그러나 화왕산정 부근에서는 휴대폰이 불통이다. 그래서 대부분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기자는 취재차량으로 산성 부근까지 올라간 덕분에 여느 사람들보다 빨리 하산했다. 하지만 감리 임도를 내려오면서 병원 구급차를 일곱 대나 만났다. 길이 협소해서 교행이 힘든 까닭에 서둘러 떠나는 방송취재차량들이 한쪽으로 비켜나야 했다.

하산하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고 동행을 챙기느라 부산했다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직감하고도 남을 만했다. 모퉁이 돌며 차를 세우고는 행사 진행을 돕고 있는 행사관계자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산상에서 큰 사고가 났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몇몇 취재차량은 차를 돌려 다시 올라갔다. 그 시각이 9일 저녁 7시 28분이었다. 억새 태우기 행사를 오후 6시 20분경이 시작했으니 불과 한 시간 남짓한 때였다. 배바우 근처 관람객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것이다!

이 많은 사람들, 그러나 아무도 화마를 걱정하지 않았다.
▲ 관람객들 이 많은 사람들, 그러나 아무도 화마를 걱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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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쉼 없이 달려가는 병원 구급차를 만났다. 급박한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집에 도착하니 텔레비전에서 '화왕산 참사'에 관한 뉴스 속보를 보도하고 있었다. 끔찍했다. 그처럼 아비규환의 나락에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는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솟구치는 불기둥을 보며 즐거워한 나머지 환호성까지 내질렸다니! 심한 자괴감이 들었다. '사망 4명, 실종 2명, 중상자 5명, 부상자 27명' 똑같은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이렇게 다른 세상을 만날 수도 있단 말인가!

기사를 송고하면서도 마음은 착잡했다, 참사 현장에 있었음에도 그러한 사실을 깡그리 몰랐다는 것에. 물론 어두운 밤이라 변명할 수 있을까? 8시 20분쯤 창녕군청에 상황실이 꾸려지고, 9시 30분쯤 김태호 경남도지사가 창녕군청을 찾아 상황을 보고 받는 모습이 보도되었다. 하지만 아쉬운 게 있다. 창녕군 부군수의 브리핑을 들으니 불기둥이 넘어와 사람들 덮쳤다고 하는데, 과연 순간적인 돌풍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서 날벼락을 맞은 것인가? 그렇다면 이번 참사는 천재인가?

솟구치는 불기둥을 보며 즐거워했다는 데 심한 자괴감이 들어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순간적으로 불기둥이 덮쳤다고 한다. 그래서 놀란 나머지 높다란 산성을 뛰어내리거나 바위 밑으로 뛰어내렸다는 얘기다. 뉴스 화면을 보니 방송촬영 카메라도 사진기도 휴대폰도 디카도 까맣게 녹아버렸거나 타버렸다. 하물며 불길에 휩싸인 사람들이야 얼마나 절박한 상황이었을까. 그러나 사망한 사람들은 화마에 그대로 희생이 되었다는 보도다.

이 많은 사람들이 상원제를 지켜보며 무엇을 바랐을까
▲ 관람객 이 많은 사람들이 상원제를 지켜보며 무엇을 바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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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사단을 놓고 책임공방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화왕산의 정황을 익히 알지 못하는 초행 나들이였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데 있다. 그랬으면 사전에 행사 안내나 주의사항 같은 것은 주최측이 세세하게 배려했어야 했다. 기자가 보기에 화왕산상 12㎞미터 5만 6천 평에 이르는 방대한 억새 평원을 사르는 데 불과 몇 십 명의 행사진행요원과 100여 명의 방화요원은 턱없이 부족한 인원이었다. 그리고 방화요원이 등짐으로 지고 있는 유등소화기는 가히 분무기 수준의 잔불 소화기에 지나지 않았다.

행사진행 전반에 걸쳐 주최측이 세세하게 배려했어야 했다

주최측은 이미 5회째 행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이번 행사도 별 무리 없이 치를 것이라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참사가 빚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소방장비는 물론 구급약품이 부족해서 화상을 입은 환자들을 응급처치도 제대로 못하고, 저체온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보온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더구나 들것이 없어서 행사용 플래카드와 대나무를 이용해서 환자를 이송했다고 한다. 사전에 준비했더라도 그렇게까지 우왕좌왕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상자는 늘어갔다. 자정 무렵 보도에 따르면 사상자가 무려 50여 명에 이르렀다. 사고를 접하자마자 창녕군은 700여명의 수색대를 동원하여 사상자와 실종자를 찾고 있다고 한다. 사후약방문격 이지만 그나마 발 빠른 대응이다. 하지만 어둠으로 인해 그나마도 10일 오전 6시에 실종자 수색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한다. 안타깝다.

마치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나듯한 화마
▲ 화마는 천재냐 인재냐 마치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나듯한 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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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억새태우기, #화왕산, #달집, #정월대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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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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