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 이경태

관련사진보기


"용산 참사의 문제점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아니라, 경찰이 '왜' 그곳에 있어야 했느냐다. 용산 참사는 사적 주체 간의 재산권 분쟁이었다. 그런데 언제나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할 물리적 공권력인 경찰이 왜 그곳에 있어야 했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도시재생사업(재개발 사업)에 대한 철학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이 공간을 어떻게 재창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재개발에 나섰던 것이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지난 9일 오후 서울대 교정에서 만난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용산 참사를 '공권력의 편향개입'과 '철학이 없는 재개발'이 낳았다고 정리했다. 토지·주택 정책을 연구하는 도시정치경제학자인 그는 평소 현 토지보상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고, 개발이익에 배제된 힘없는 이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왔다.

김 교수는 "대기업과 경제적 효율 중심의 재개발은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이제 그에 대한 문제제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며 "특히 자본의 움직임에 따라 도시생애주기를 강제로 줄이는 한국의 현 재개발 사업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재개발 사업은 중대형 아파트 중심의 동시다발적 개발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자본의 효율만을 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개발 사업 때 발생할 이윤, 창출될 일자리, 개선될 경관 등 미화된 장점만 따져서는 안된다"며 "사라질 일자리, 쫓겨난 거주민들이 대체 경제활동을 못할 경우 감소할 이윤 등의 단점도 함께 따져야 재개발 사업을 통해 창출될 정확한 이득을 계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이 양자를 함께 따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용산 참사와 같은 악순환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건설산업 역시 부수고 짓는 데 머물러만 있어선 발전이 안 된다, 건설산업 구조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재개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용산참사, 왜 사적인 재산권 분쟁에 경찰이 개입했나?"

용산 참사가 일어나기 하루 전인 지난 1월 19일 오전 철거민들이 사고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고 있고 경찰과 용역철거반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함께 물을 쏘며 망루 설치를 방해하고 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나기 하루 전인 지난 1월 19일 오전 철거민들이 사고건물 옥상에 망루를 설치하고 있고 경찰과 용역철거반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함께 물을 쏘며 망루 설치를 방해하고 있다.
ⓒ 이정희 민노당 의원실

관련사진보기


- 용산 참사로 인해 현재 재개발 사업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도심지를 개발해 수익을 내기 위해서 특정 단위 면적당 자본집적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다. 현 구조상 자본을 투입하는 이, 즉 토지소유자·건설업자·시행사만이 개발이익을 가져간다. 문제는 이들이 개발을 통해 얻은 막대한 이익을 공공 쪽으로 돌리기 위한 여러 가지 환수장치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현 정권 들어 점점 완화되고 있다."

- 그래도 지난 몇 차례의 법 개정을 통해 주거세입자 등을 위한 보상조치가 강화되지 않았나?
"보상조치가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2007년 토지보상법을 개정해 세입자에게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를 모두 주게 한 것은 선진적 사례다. 그러나 토지보상법의 운용 및 개별법에서 공용수용권을 발동하는 경우를 보면 재개발 사업의 자본 편향성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기업도시개발특별법은 사업자가 더 이상 협의매수를 할 수 없을 때, 개발구역 토지면적의 50%를 확보하면 수용권을 행사할 수 있다."

-  그 경우 '사익을 위한 공용 수용권'이라며 합리화되는데...
"민간이 사익을 위해 사업을 시행하지만 해당 사업이 공익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모순적인 표현이다. 이는 공익의 개념이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데 근거한다. 최근 일부 국가가 제동을 걸고 나섰지만 전 세계적으로 공익의 개념에 '일자리 창출'을 포함시키고 있다. 해당 토지를 수용해 일자리가 창출된다면 공익적 목적이 달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엄격히 봐야 한다. 누구의 입장을 대변하는 공익 관념인지, 누구를 위한 토지 수요인지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 용산의 경우는 어떻게 보는가?
"용산은 사적 주체 간의 재산권 분쟁이다. 그에 국가가 성급히 개입해 특정 입장을 편들어 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참사에서 지적해야 할 문제는 경찰의 '과잉진압'이 아니라, 경찰이 '왜' 그곳에 있어야 했느냐다. 적어도 경찰이라는 물리적 공권력은 불편부당(不偏不黨)하게 사용됐어야 하지 않았나."

"현 재개발 사업, 조감도만 보고 진행하는 꼴"

용산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민 참사가 발생하기 전날인 지난 1월 19일 오후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 용산구 한강로 2가 5층 건물  바로옆 1층에 철거용역들이 붉은 색 스프레이로 '이사가라' '철거' 등 위협적인 낙서와 해골 그림을 그려 놓았다.
 용산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민 참사가 발생하기 전날인 지난 1월 19일 오후 철거민 5명과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한 용산구 한강로 2가 5층 건물 바로옆 1층에 철거용역들이 붉은 색 스프레이로 '이사가라' '철거' 등 위협적인 낙서와 해골 그림을 그려 놓았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 용산의 재개발조합이나 구청 측은 철거민들을 '생떼를 쓰는 이'로 표현한 적도 있다.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방해했다는 논리인데?
"흔히 우리 사회에선 재산권을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헌법에 따르면 재산권은 공공복리 적합 의무에 맞춰 행사해야 하고, 공적 목적을 위해 토지를 수용할 경우 '정당'한 보상을 해야한다. 재개발 사업 보상 문제는 결국 헌법의 질서를 제대로 지키느냐의 문제다."

- 재산권 문제와 관련해 앞서 용산4구역 상가세입자들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49조 6항의 '관리처분계획의 공람·인가 절차'로 사실상 영업권이 박탈되지만 그 손해 및 피해에 대한 보상규정은 없어 헌법 23조 3항에 보장된 재산권과 보상권을 침해했다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바 있다.
"쉽지 않은 문제라고 본다. 현재 토지보상법은 휴업을 하게 된 상가세입자에겐 3개월의 휴업보상비를 지불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도정법 49조 6항은 세입자를 처음부터 배제한 조항이다. 이 조항은 재개발 지구의 소유자들이 재정리한 소유 관계에 더 이상 새로운 이해관계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만약 관리처분인가가 난 이후에도 해당 상가의 영업이 계속된다면 비공식적인 권리관계가 계속 발생해 사업진행이 쉽지 않다. 재판부가 긍정적인 판단을 하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 권리금 법제화 문제는 어떤가? 각 정당이 권리금 문제 해결을 위한 T/F팀을 구성하기도 했다.
"이미 권리금을 법제화하려다 실패한 전례도 있다. 처음 임대차인은 해당 상가에 권리금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자본투자를 한 것이다. 회수가 불가능하게 됐을 때는 임대차인이 투자판단을 잘못했다고 지적할 수도 있다. 권리금은 기본적으로 건물주와 상관없이 임대차인 간 맺은 계약이다. 그런데 계약과 관계없는 건물주에게 완전 보상을 요구하기 힘들다. 또 만약 임대차인이 철거 계약이 공시된 상황에서도 입주했다면 그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상황 아닌가?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 안타깝지만 상당히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현행 보상규정을 더 강화해 생존권을 복원해주는 쪽이 기술적으로 쉽다고 본다."

- 결국 문제는 그 보상조치가 소유주·시행사·대기업에만 돌아간다는 것 아닌가.
"맞다. 우리나라 법제는 생활보상 중심주의가 아닌 물권중심 보상주의다. 물권 하나하나를 합산해 정당보상액으로 환산하는 방식이다. 이제 내 삶의 터전을 그대로 복원해주는, 생활보상을 도입하는 게 과제다. 예를 들면 현재 토지주·건물주 기준의 동의수준이나 확보 면적 중심의 사업 방식에 실거주자 기준의 동의수준 등을 도입하는 것을 들 수 있겠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재개발의 이익을 따질 때 자본을 투입하는 입장에서만 따진다. 재개발로 인해 떠나게 되는 이의 입장에서도 이익을 산정해 따져야 한다. 현재 재개발 조합이나 정부는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자리와 이윤, 그리고 경관 개선 등만을 강조한다. 조감도만 내놓은 셈인데 재개발로 인해 원래 생활하던 이들의 일자리와 거주지가 사라지고 경제적 활동이 둔화되는 것도 같이 따져 재개발로 인해 발생할 이윤을 따져야 한다."

- 현재 여당과 정부가 논의하고 있는 분쟁조정위원회 설치 등의 방안은 어떻게 생각하나?
"긍정적으로 본다. 중립적인 입장에서 분쟁을 조정할 수 있도록 위원 선정 기준을 잘 정한다면 유명무실하지 않게 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경우 임대차 분쟁이 생겼을 때 관련 민간협회기구에서 해당 분쟁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정부는 10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 상가세입자에 대한 우선분양권 제공 및 휴업보상비 상향 조정 ▲ 주거세입자의 이주대책을 위한 순환개발 방식 추진 ▲ 분쟁조정위원회 신설 ▲ 지방자치단체장이 회계감사 및 감정평가사 선정 ▲ 세입자 보상에 대한 건물주의 책임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제도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시장성 가장 높은 곳만 재개발? 굳이 정부가 나설 필요 있나?"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김용창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 이경태

관련사진보기

- 재개발이 이뤄지는 곳이 비단 용산만이 아니다.  현재 서울시의 경우 뉴타운 등 대규모 재개발 지역만 34곳이다. 이렇게 곳곳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뤄지는 재개발 사업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을까?
"50년 동안 멀쩡히 살 수 있는 집을 20년 만에 부수겠다는 나라다.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안전진단검사를 통과하지 못해 재건축을 해야 하면 좋다고 플래카드를 붙이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외국의 경우 도심 재개발은 시장의 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정부 재정이 지속적으로 투자되는 곳, 즉 슬럼가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그러나 한국은 도시가스도 잘 들어오고 인터넷도 뚫려 정상적인 시장의 힘이 작동하는 곳을 대상으로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재개발 특징이 중대형 아파트 지상주의이지 않나. 다들 중대형 아파트로 주거를 옮기기 위해 도시생애주기를 강제로 단축시키는 것이다."  

- 현재 진행 중인 뉴타운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집값이 먼저 올라야 한다는 게 전제 조건인데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여당이든, 야당이든 가릴 것 없이 모두 뉴타운 만들겠다고 공약했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나서서 지구지정을 철회해 달라고 요청하는 상태다. 대개 압축성장을 한 국가는 전 지역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른다. 그동안 이 미래가치를 예상해 부동산을 통한 소득을 얻어왔다. 이제 우리 국가 경제는 과거와 같은 압축성장체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이제 재개발 시 지역별 이익편차가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더욱 더 신중하게 재개발 사업에 대한 공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도심의 공동화·슬럼화 문제 때문이라도 재개발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지 않나?
"기존의 재개발은 대자본 중심으로, 경제효율성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앞서 말한 사익을 위한 공용수용권이 그 단적인 예다. 이를 수정해야 한다. 최근 미국은 그를 제어하기 위해 대안적인 법개정이 이뤄지고 있고 각 주별로 관련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가지 않으면 용산 참사와 같은 악순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시장성이 가장 높은 지역부터 재개발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재개발은 버려진 땅과 주민을 위해 이뤄져야 한다. 시장이 알아서 투자타당성을 따져 사업을 벌이는데 국가마저 거기에 편승할 이유가 없다. 모두가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재개발 사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까?
"포이동과 같이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이들을 위한 재개발 사업을 벌여야 한다. 대재벌 회장의 한 표나 철거민의 한 표나 다 같은 한 표 아닌가. 그들을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질서를 어기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재개발 사업 때 발생될 이윤만 따질 것이 아니라 사라질 일자리, 쫓겨난 거주민들이 대체 경제활동을 못할 경우 감소될 이윤 등의 단점도 함께 따져야 한다. 또 산업구조를 위해서도 현 재개발 사업구조 개선은 필요하다. 부수고 지으면서 이득을 얻는 지금의 구조를 고수한다면 건설산업은 거기에만 멈춰있을 것이다. 산업구조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재개발 시스템을 재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태그:#용산참사, #재개발 사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