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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도 1년이 지났다. 경제를 살린다며 ‘747정책(연평균 7% 성장, 10년 후 1인 당 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이란 슬로건을 걸고 출발했지만 이제는 슬그머니 그 정책을 거둔 모양이다. 밑 모르는 세계경제의 추락과 더불어 우리 경제도 추락의 끝이 안 보인다. 신빈곤층의 가계는 더욱 말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탁상행정’이 아니라 ‘현장정치’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의 지론이 인수위원장의 입에서 나온 것일 터. 이 대통령은 발로 뛰는 대통령이란 이미지로 남기를 원하는 것 같다.

 

새벽에 시장을 방문해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선물한 일이나 편지를 쓴 초등학생에게 선의를 베푼 일 등은 이 대통령 나름대로의 ‘현장정치’의 표본일 듯하다. 이토록 매스컴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현장정치의 선의를 연일 보도하는데도 빈곤계층의 삶은 가진 이들과는 달리 더욱 힘들어만 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벤트성 정치

 

2008년 1월 18일,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의미 있는(?) 사건이 하나 터졌다. 물론 매스컴은 이를 일제히 보도했다. 이름 하여 ‘대불단지 전봇대 뽑기 사건’이다. 벽돌을 운반하려고 해도 전봇대에 가로막혀 트레일러 운행이 힘들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인수위 간사회의에서 전남 영암의 대불국가산업단지를 방문했던 경험을 말하며 “트레일러가 지나갈 수 있도록 전봇대를 옮겨달라고 해도 몇 달이 돼도 안 옮겼다”며, “공장을 유치하면 뭐 하느냐. 사소한 것도 안 되는데”라고 했다.

 

대통령 당선인의 말 한마디는 그야말로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공직사회를 뒤흔드는 태풍이었다. 당시 산업자원부 사무관 3명이 영암으로 내려갔고, 한전에서도 거들어 그 다음날 전봇대는 뽑혔다. 당시 인수위도 이런 것이야말로 탁상행정의 표본이라며 현장정치를 역설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런 이벤트성 정치는 취임 후에도 계속 되고 있다.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든, 대통령이 지시해서 하는 것이든, 국민이 보기에는 모두 대통령이 하는 일이다. 특히 서민의 아픔을 헤아리는 듯이 보이는 이 대통령의 이벤트성 행보가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은 새벽에 가락동 농수산시장을 전격 방문했다. 시장을 들러보다 장사를 하는 박부자 할머니를 만나 부둥켜안았고 자신이 20년 동안 두르던 목도리를 선물했다. 이 사건은 금방 온 매스컴이 대서특필했다. 박 할머니를 만난 이후 이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박 할머니와의 일화를 말했다.

 

박 할머니는 금방 유명인사가 되었다. 앞 다투어 보도하던 매스컴에는 “대통령 목도리 집에 모셔놨지”라는 박 할머니의 말이 기사 제목이 되기도 했다.

 

박 할머니를 만난 후 지난 12월 23일 이 대통령은 아예 박 할머니를 포함한 어려운 이웃들 250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였다. 불우이웃돕기가 한창인 연말이었기에 대통령의 이런 행동은 예삿일이 아니었다.

 

'봉고차 소녀' 문제의 신속한 처리

 

‘목도리 할머니 이야기’가 들어갈 즈음, 이번에는 ‘봉고차 소녀’ 이야기가 매스컴을 들썩이고 있다. 지난달 16일 인천에 사는 김아무개(10)양의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지난 5일 청와대에 의해 공개되고, 이 대통령이 친히 김양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줄 것을 약속했다고 하는 게 알려지면서 연일 매스컴은 김양과 김양 가족에 관한 기사로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간 매스컴에 보도된 김양의 이야기는 이렇다. 인천에 어머니와 함께 셋방에서 가난하게 사는 초등학생인 김양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도와줄 것을 호소하는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엄마가 울면서 교회의 다락방에서 밤마다 기도하는 것이 안타까워 편지를 쓴 것이다.

 

김양의 엄마는 근무하던 식당에서도 실직하고 모녀가 살고 있는 지하 셋방에서조차 쫓겨날 처지에 몰렸다. 김양은 “대통령 할아버지, 우리 엄마 눈에서 눈물만 안 나오게 해주세요. 저는 학원 같은 데 안 다녀도 상관없어요”라며 편지로 도움을 요청했다. 교회에서 받은 낡은 봉고차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가 못 돼 나라의 도움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김양의 편지를 받은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경기도 안양에 있는 보건복지종합상담센터(129콜센터)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직접 김양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김옥례(52)씨와도 통화를 했다. 이 대통령은 이때 긴급한 지원을 하고 일자리도 얻도록 해보겠다고 약속했다.

 

급기야 10일 매스컴은 일제히 김양 모녀의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보도했다. 결국 문제의 봉고차는 팔렸고 모녀는 인천시 남동구청으로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됐다. “한 달에 최대 69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으며, 정부의 저소득층 자활복지사업에 관련된 일자리도 얻을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한 달에 22만원인 월세를 여러 달째 내지 못해 내쫓길 지경이었는데, 이들의 딱한 사정을 들은 대한주택공사 인천지역본부가 남동구에 있는 42㎡ 넓이의 주공 다가구 매입 임대 주택에 살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일사천리로 모녀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매스컴에 따르면 360만원인 입주 보증금은 주택공사측이 사회공헌기금에서 대신 내주고, 모녀는 앞으로 매월 6만원의 임차료만 내면 된다고 한다. 임대 기간은 2년이지만 수급자 요건만 유지되면 2차례 연장해 최장 6년까지 살 수 있다. 이 소식을 접한 독지가들도 모녀를 돕겠다고 나서고 있다. 김양 모녀는 편지 한 통 썼다가 복지혜택을 복권 당첨되듯 받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벤트가 아니라 실질적 복지정책

 

그런데 문제는 이런 김양 모녀와 같은 딱한 사정을 가진 이들이 그 모녀밖에 없는 것이 아니란 데 있다. 보건복지가족부 자료에 의하면 기초생활수급권자가 10년 가까이 150만 여명에 이른다. 차상위계층도 복지부는 286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실은 그 이상일 것이 뻔하다.

 

작금 경제 불황 때문에 과거 중산층이던 계층이 새롭게 신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재산은 차상위계층보다 많지만 당장 현재 월소득이 4인 가구 기준으로 160만원이 안 되는 이들도 많다. 김양 모녀처럼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발견될 때마다 임시방편의 도움으로 대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대통령은 이런 신빈곤층에 관심을 기울이는 정책을 펴겠다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16일 전국 사회복지전담 공무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신빈곤층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사회안전망에서 이탈한 계층은 정부가 도와야 한다”고 대책을 지시했다.

 

이에 발맞춰 국무총리실 산하에 사회안전망 태스크포스(T/F)가 결성됐다. 기획재정부가 ‘경제위기 극복과 재도약을 위한 2009년 업무추진계획’에서 ‘서민생활안정 지원’을 계획하고, 신빈곤층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보건복지가족부도 2009년 업무보고에서 현행 제도와 대책이 신빈곤층 대책으로 미흡하다면서 ‘선제적 대응’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사회안전망 태스크포스와 재정부, 복지부 등 3개 부서가 각각 따로 놀고 있다. <국민일보>에 따르면, “재정부에서 외환위기 당시에 준하는 새로운 저소득층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10조원의 수정예산을 확대하면서 저소득층 복지 지출예산은 단 1조원을 배정했다

 

정부는 올해 긴급생계지원 대상자를 16만8000명으로 잡았지만 재정부 잠정 추산결과 올 들어 단 2주 만에 정부 예상치의 20%에 가까운 2만8000명이 긴급생계지원을 신청했다. 지난달 실업급여 신청자 역시 12만807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9% 급증했다. 이런 추세로 본다면 2~4조원은 족히 필요하다.

 

예산이 없는 정책이란 공허할 뿐이다. 복지정책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 도움이다. 이벤트가 아니라 실질적 예산편성이다. 사회안전망 구축이나 이벤트성 미담사례로 매스컴을 덮는다 해도 복지혜택을 받아야 할 빈곤계층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없다면 무주공산이다. 정부는 빈곤계층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태그:#복지정책, #이명박, #MB정부, #빈곤계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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