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일단 시인하는 가운데
.. 이상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독자들의 혐오감을 일단 시인하는 가운데 이 글을 써 나가고자 한다 .. 《엔도오 슈우사쿠/윤현 옮김-예수 지하철을 타다》(세광공사,1981) 13쪽
‘이상(以上)’은 ‘이와 같이’나 ‘이처럼’으로 다듬습니다. “그리스도교인에 대(對)한 독자(讀者)들의 혐오감(嫌惡感)을”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인을 싫어하는 마음을”이나 “이 책을 읽는 분들께서 그리스도교인을 미워하는 마음을”로 손질합니다. ‘일단(一旦)’은 ‘먼저’로 손봅니다.
┌ 시인(尸咽) : [한의학] 풍열(風熱) 따위로 목 안이 헐어 가렵고 아픈 병
├ 시인(市人) = 상인(商人)
├ 시인(矢人) : [역사] 조선 시대에, 화살 만드는 일을 맡아 하던 사람
├ 시인(矢刃) : 화살과 칼이라는 뜻으로, ‘무기’를 이르는 말
├ 시인(寺人) : [역사] = 내시(內侍)
├ 시인(侍人) : [불교] = 시자(侍者)
├ 시인(是認) : 어떤 내용이나 사실이 옳거나 그러하다고 인정함
│ - 과오를 시인하다 / 문제점을 시인하다 / 부정을 시인하다 / 패배를 시인하다
├ 시인(時人) : 그 당시의 사람들
├ 시인(猜忍) : 시기심이 강하고 잔인함
├ 시인(詩人) : 시를 전문적으로 짓는 사람
│ - 원로 시인 / 여류 시인 / 낭만파 시인 / 시인과 소설가
│
├ 시인하는 가운데
│→ 받아들이는 가운데
│→ 되새기는 가운데
│→ 곱씹는 가운데
└ …
국어사전에 실린 ‘시인’은 모두 열 가지. 이 가운데 역사 낱말이 둘이고, 불교와 한의학 낱말이 있습니다. ‘市人’은 ‘商人’과 같은 말이라 하는데, 이렇게 적기보다는 ‘장사꾼’이라 적어 주면 낫다고 느낍니다. 아니, ‘장사꾼’을 가리키는 ‘상인’이라는 말은 더러 쓰기는 해도, ‘시인’이라 하면서 ‘장사꾼’을 가리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는지요.
화살과 칼을 가리켜서 ‘矢刃’으로 적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들을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아무도 못 알아들을 뿐 아니라, 한자로 적든 한자를 묶음표에 집어넣든 어느 한 사람도 못 알아듣지 않을까 싶은데. ‘화살칼’이나 ‘칼화살’로 적거나 ‘무기’라고 적어야 알맞다고 봅니다.
그때 사람들은 ‘그때 사람들’입니다. ‘時人’은 어떤 사람일까요. 글쎄요, 이런 한자말을 왜 자꾸 국어사전에 실어 놓으면서 토박이말이 밀려나게 하는지, 또 국어사전에 쓸데없는 한자말이 가득하게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다운 말을 실어야 하는 국어사전이며, 생각다운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는 국어사전이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시샘도 하면서 끔찍한 짓을 하는 모습은 “시샘도 하며 끔찍한”으로 적어 줄 때가 ‘猜忍’으로 적을 때보다 알아듣기 수월합니다. 더욱이 한글로 ‘시인’이라고 적는다 한들 어느 누구도 시샘도 하며 끔찍한 모습을 말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한자를 밝혀도 마찬가지입니다.
┌ 시인
└ 시쓰는 사람 / 시꾼 / 시쟁이
소설을 쓰는 사람은 ‘소설꾼’이나 ‘소설쟁이’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꾼’이나 ‘사진쟁이’입니다. 그림을 그리면 ‘그림꾼’이나 ‘그림쟁이’이고요. 책을 만들면 ‘책꾼’이나 ‘책쟁이’라 해 볼 수 있다고 느끼며, 영화를 찍으면 ‘영화꾼’이나 ‘영화쟁이’라 해 볼 수 있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이들은 꽤 예전부터 스스로를 두고 ‘만화쟁이’라 해 왔습니다. 노래를 부르면 ‘노래꾼’이나 ‘노래쟁이’이고, 춤을 추면 ‘춤꾼’이나 ‘춤쟁이’입니다. ‘댄서(dancer)’라고만 해야 멋이 나거나 남다르지 않습니다.
┌ 과오를 시인한다 → 잘못을 받아들인다
├ 문제점을 시인하다 → 문제점을 받아들이다
└ 패배를 시인하다 → 졌다고 두 손 들다
열 가지나 되는 한자말 ‘시인’을 곰곰이 헤아려 보았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 삶을 밝히거나 가꾸어 주는 낱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느 낱말이 우리 생각과 마음을 고이 쓰다듬어 줄는지 생각해 봅니다. 이런 숱한 한자말 ‘시인’을 우리가 어느 자리 어느 때에 써야 할까 곱씹어 봅니다. 국어학자들부터 생각이 얕았다고 할 터이나, 날마다 말하고 글쓰는 우리들부터 생각이 얕아서, 얄궂고 뒤틀린 국어사전 얼거리가 조금도 고쳐지지 않고 하나도 나아지지 않으며 앞으로도 새로워지기 어렵겠다는 느낌이 자꾸자꾸 듭니다.
ㄴ. 그것을 시인한다
.. 서씨 역시 무엇을 먹다 들킨 사람의 묘한 웃음으로 그것을 시인한다 .. 《김주연-나의 칼은 나의 작품》(민음사,1975) 14쪽
‘역시(亦是)’는 ‘또한’이나 ‘-도 마찬가지로’로 다듬고, “들킨 사람의 묘(妙)한 웃음으로”는 “들킨 사람마냥 야릇한 웃음으로”나 “들킨 사람처럼 알쏭달쏭한 웃음으로”로 다듬어 줍니다.
┌ 그것을 시인한다
│
│→ 그것을 받아들인다
│→ 그렇다고 말한다
│→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 …
시를 쓰는 서씨가 시인합니다. 시를 쓰는 서씨는 시인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이 시인한 셈입니다.
우리처럼 머리통이 굵어진 어른은 시를 쓰는 ‘시인’과 무엇을 받아들인다는 뜻에서 쓰는 ‘시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머리통이 굵어지지 않은 아이들은 어떠할까 궁금합니다. 이와 같은 말투를 우리 뒷사람한테 물려줄 만한가 또한 궁금합니다.
시를 쓰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을 새롭게 생각해 내면서 한결 낫게 붙이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무엇을 받아들인다고 할 때에는, 말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거나 ‘껴안는다’고 하거나 ‘그렇다 한다’고 할 때가 알맞지 않느냐 싶습니다.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때, 아니면 어쩔 수 없이라도 받아들일 때,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입’입니다.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 서씨도 무엇을 먹다 들킨 사람같이 살며시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아들인다
├ 서씨 또한 무엇을 먹다 들킨 사람처럼 빙긋 웃으며 그렇다고 얘기한다
├ 서씨도 무엇을 먹다 들킨 사람마냥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 서씨 또한 무엇을 먹다 들킨 사람과 같이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 …
즐거이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우리 말로 북돋워 나간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손으로 하나하나 가꾸면서, 우리 힘으로 차근차근 돌보면서, 우리 슬기를 싱그러이 펼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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