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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2일)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님의 퇴임식 소식을 접하고 몇 자 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며칠 경찰을 떠나는 김 내정자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언론 지면이 가득합니다. 떠나는 님과 일부 경찰분들께는 조금은 불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퇴임식의 풍경과 일부 경찰들의 모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화염병, 염산병 등의 폭력시위로 고귀한 인명이 희생되는 불행한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퇴임사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 자체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용산참사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면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다섯 명의 용산 철거민 희생자들이 화염병을 들었다고 해서 공권력 투입에 의한 그들의 죽음이 정당화 될 수도 없거니와 무리하게 과잉진압에 동원되어 희생된 한 명의 경찰특공대원의 죽음에 대한 적절한 말씀도 아닙니다.

 

"용산 참사를 계기로 경찰의 법집행이 위축되지 않아야 한다"면서 "불법과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는 허약한 사상누각"이라고 강조하고, 또 "경찰이 강해야 국가가 선진화 된다"는 5공시절의 선전문구 같은 말씀도 하셨습니다.

 

맞는 말씀 같지만 듣고 나니 마음이 더 답답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불법과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경찰의 임무입니다. 그렇다고 경찰의 불법과 폭력이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용산참사를 계기로 경찰의 법집행이 위축될 것을 걱정하실 것이 아니라 경찰의 과잉진압과 무모한 계획으로 고귀한 시민들의 희생에 대해서 반성하고 책임지자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경찰특공대 투입에 사인하여 용산참사를 부른 본인의 책임을 언급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까. 경찰이 국민들 앞에 강해야 국가가 선진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경찰국가입니다. 경찰이 권력 앞에 강해야 국가가 선진화 되는 것입니다.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님,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용산 참사에 대해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본인 스스로는 "조직을 위한 희생"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지금이 전두환 5공시대여도 이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도의적 책임? 조직을 위한 희생? 용산참사 당시 무전기 꺼 놓았다(?)고 말했다고 해서 김석기님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5공때는 박종철 학생을 경찰 수장이 직접 물고문해서 그가 구속되었습니까. 그때도 불법과 폭력에 단호히 대처하는 방법으로 물을 이용해서 법치(?)를 세우려고  했겠지요.

 

님, 지금 대한민국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식의 함무라비 법전 시대입니까. 국가폭력이 정당화되는 나치시대입니까. 박정희 유신시대입니까.

 

김석기 전 경찰청장 내정자님, 본인이 말씀하시는 법치는 무엇입니까. 법을 정당하게 집행하셨다면 용산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경찰관직무집행규칙만 제대로 지켰어도 이번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취미가 경찰 생각이고 특기가 경찰사랑"이시라는 님, 묻겠습니다. 콘테이너에 실어 경찰특공대를 무리하게 투입하는 것에 사인할 때 경찰특공대원의 안전은 생각이 안 드셨습니까.

 

님의 자진사퇴 소식을 접하고 경찰내부통신망에는 현직 경찰들의 울분을 토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한 경찰은 "경찰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비참하고 원통한 심정을 가눌 길 없다"면서 "경찰이 언제까지 정치의 희생양이 돼야 하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정치권에 이용만 당해야 하냐는 볼멘소리도 많습니다. 님의 퇴임식에서는 엎드려 큰절을 하는 사람, 통곡하는 경찰관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님의 성품에 님을 존경하는 경찰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찰수장의 자리를 코 앞에 두고 물러나는 님이 짠해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소식을 접하고 갑자기 언젠가 배우 최민수씨가 했던 말이 스쳤습니다. "이건 아니잖아요, 이건…."

 

경찰청장=이용만 당함=정치적 희생양? 이것이 일부 경찰들의 생각인지 대다수 경찰들의 생각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언론에 비친 모습은 대다수 경찰들의 생각입니다. 두 가지만  묻고 싶습니다.

 

첫째, 왜 매번 경찰수뇌부는 이용만 당할 것을 알면서도 권력에 순응해서 하자는 대로, 또는 권력에 앞질러 알아서 일을 낼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광화문에 콘테이너 쌓으라고 직접지시했다는 소리는 지금까지 들리지 않습니다. 용산철거민 진압에 경찰특공대 투입하라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소리는 아직까지 없습니다. 김석기 서울경찰청장의 사인은 드러났습니다.

 

둘째, 왜 경찰수장의 책임= 일선 경찰 전체 책임! 경찰수장에 대한 비판= 일선 경찰 전체에 대한 비판! 이렇게 경찰들은 생각을 할까요? 국민들은 지금 일선 경찰들을 싸잡아서 용산참사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투입된 경찰특공대원들에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책임이 있는 경찰수장에게 국민의 희생에 대해서 책임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도 일선경찰들이 경찰청 수장의 사퇴에 저항(?)또는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쉽게 이해가 가지도 않지만, 책임을 따지자면 경찰수장을 맹종하게 만든 김석기님 본인의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님, "법과 원칙을 지키자"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는 "나 말고, 정부 빼고, 국민들 너희들만 법과 원칙을 지켜"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경찰청장 취임도 전에 자진사퇴(?)의 형식으로 물러나야 하는 님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래서 퇴임식에서 흘린 당신의 눈물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눈물에서 경찰청장 자리 앞에서 떠나야 하는 억울함(?)만이 읽히는 것은 저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취미가 시민생각이요, 특기가 시민사랑이었다'면 어제(12일) 서울경찰청장 퇴임식 자리가 아니라 경찰청장 취임식 자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또 진실로 '당신의 취미가 경찰생각이요, 특기가 경찰사랑이었다'면 국민들과 경찰들은 당신의 퇴임사에서 이 말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경찰수장이 정권에 이용 당하는 일, 경찰특공대가 과잉진압에 동원되는 등으로 고귀한 인명이 희생되는 불행한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랬다면 국민들도 당신의 퇴장에 미운정 고운정으로 같이 눈물 흘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반 시민으로 돌아온 님의 행복을 빌며 이만 줄입니다.


태그:#경찰청장, #과잉진압, #용산참사, #김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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