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 동네(대전 서구 도마동 향우사거리 쪽) 구제물건 파는 곳이 여러 군데 있네."
모임을 끝내고 버스정거장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언뜻 눈에 띄는 옷가게가 있어서 보니 구제물건을 파는 곳이다. 새 물건은 아니지만 잘만 찾으면 라면 한 그릇 값으로도 괜찮은 머플러를 고를 수 있는 곳이 '구제'인지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주인은 30대쯤으로 손님을 편안하게 하는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가게 안쪽으로는 신발이나 모자, 벨트처럼 다양한 액세서리도 있어서 휘 둘러보다가 마침 발목까지 오는 부츠가 눈에 띄었다. 그렇잖아도 신고 있는 발목부츠를 너무 오래 신어서 새로 살까 망설이던 중이었다. 그렇다고 새 신발을 사려던 것은 아니었다. 벼룩시장이나 알뜰시장 같은 곳에 혹시 물건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 동안 신었던 황토 빛 누런 발목부츠는 친정언니가 사 놓고 맘에 들지 않는다 해서 신발장에 묵혀두고 있던 걸 내 물건으로 만든 것이다. 그게 벌써 십년이 다 돼간다. 뒷굽은 몇 번을 갈았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해마다 찾아 신으면서 ‘올해만 신고 버려야지’ 했던 발목부츠. 이젠 신발이 너무 편해서 차마 버릴 수가 없다. 그런데 지난겨울부터는 신발뒤쪽이 헤지고 떨어졌다. 아무래도 수명이 다 된 것 같았다.
내가 신발을 고르자 가게 주인이 말했다.
“지금 신으신 부츠 사이즈랑 똑 같은 거예요. 한번 신어보세요.”
신었던 신발을 벗자 가게 주인이 놀란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신었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알뜰하시니 정말 싸게 드려야겠다" 한다. 그래서 나는 얼마짜린데 얼마를 받을 거냐고 물었다.
“9천원인데 천원 빼드릴게요.”
“천원 만요?”
“어머, 내가 그래두 손님 알뜰해서 그거 빼주는 거에요.”
나는 가게 주인이 9천원을 다 받아도 사려고 했다. 빛깔도 무난하고 튼튼해 보이는 발목부츠는 원래 내 신발이었던 것처럼 편안했다. 신발값 8천원을 계산하자 비닐봉지를 꺼내는 가게 주인 앞으로 언제나 갖고 다니는 장바구니를 꺼냈다.
“그냥 신발만 주세요. 장바구니에 담을 게요.”
그러자 가게 주인은 신기한 물건이라도 본 것처럼 감탄사를 연발했다.
“어머 세상에 준비된 주부시네요. 그러면 난 또 가만 못 있지. 나가시면서 맘에 드는 옷 하나 골라보세요. 내가 그냥 하나 드릴게.”
장바구니 덕분에 그럴싸한 옷을 덤으로 얻었다. 봄가을에 입으면 좋을 원피스였다. 그날부터 신었던 발목부츠는 내 발에 안성맞춤으로 요즘 어디를 가도 나와 함께한다. 장바구니 챙기면 기분 좋게 따라오는 ‘덤’, 오늘 당장 가방 속에 장바구니를 넣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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