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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따라 내가 좋아하는 된장찌개가 저녁상에 올라와 맛있게 먹고 있는데 밥상머리에서 숙제를 하고 있는 손자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올해 9살 된 손자 도영이의 모습이 너무 귀엽고 대견해 나도 모르게 귀엽다는 표현의 뜻으로 손자놈 얼굴에 뽀뽀를 했다.

 

그런데, 이놈이 다짜고짜 하는 말이 이랬다.

 

"할아버지 하지 말아요. 할아버지한테서 입 냄새가 심하게 나요."

 

기가 막혔다. 그래서 좋은 말로 항의를 시작했다.

 

"도영아!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끓여주신 된장찌개를 먹고 있기 때문에 나는 냄새지 할아버지에게서 입 냄새가 나는 게 아냐. 할아버지가 우리 도영이 공부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착하고 예뻐서 뽀뽀를 한 건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더 기가 막힌 것이었다.

 

"아무튼 할아버진 핑계도 잘 대셔. 냄새 나는 것을 냄새 난다고 했는데, 왜 자꾸만 핑계를 대세요?"

 

나 원 참 …….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고 해도 이런 버릇을 그냥 간과하고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정색을 하고 으름장을 놨다.

 

"너, 말 다 했어?"

 

하지만 손자의 구시렁을 계속 이어졌다. 할아버진 만날 하실 말씀 없으시면 강제적으로 말을 하시네 어쩌네...

 

나는 먹던 밥상을 물리고 "윤도영, 너 안 되겠어, 일어서! 누가 할아버지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말하라고 가르치던? 그런 버릇 어디에서 배웠어?"라고 호통을 쳤다.

 

"학교에서 배웠어. 학원에서 배웠어. 친구들한테 배웠어."

 

도영이도 뭐가 불만인지 계속 입을 다물지 않고 대꾸하며 씰룩댄다.

 

결국 나는 손바닥으로 손자의 엉덩이와 종아리를 대여섯 대 때렸다. 도영이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씩씩거렸다.

 

"윤도영, 너 빨리 니 방에 가서 반성문 써가지고 와. 10분 동안."

 

10여 분 가량 지나니 도영이가 반성문을 내민다. 

 

'할아버지가 왕이라고 잘 모셔야 한다고 그러셨는데 말대꾸해서 죄송합니다.ㅎㅎㅎ'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요. 6학년 6반이나 된 할아버란 사람이 기껏 9살 손자녀석 앞에서 자칭 왕 노릇을 하며 아이와 싸우고 있다니 말입니다. 나는 두 손으로 손자아이를 꼭 껴안으면 말했습니다.

 

"도영아. 할아버지가 너를 너무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니 얼굴에 뽀뽀한 거야. 근데 그렇게 심한 말을 하면 할아버지가 섭섭하잖아. 앞으론 그렇게 나쁜말 하지마, 알았지? 그리고 오늘 할아버지가 우리 도영이 때려서 미안해."

 

그러자 도영이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먼저 잘못한 거 맞아요. 저 아프지 않아요. 앞으로도 잘못한 거 있으면 타일러 주세요."

 

마치 속이 꽉 찬 다 자란 아이처럼 말하는 손자녀석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요. 저에게 도영이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아이랍니다.

 

2009년 2월12일 

도영 할베 씀


태그:#할아버지가 쓰는 육아일기 , #도영이 , #도영할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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