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8000개의 일자리를 선택할 것인가? 안보를 선택할 것인가?'
2003년∼2004년께, 노무현 대통령은 제2롯데월드 초고층 신축 승인 여부를 두고 '일자리'와 '안보'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초기에는 '저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축을 승인하려고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일자리'보다 '안보'를 선택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은 16일 발행된 시사주간지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공군 기술진의 검토 결과, 활주로 각도를 틀더라도 초고층을 허용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제2롯데월드는 노무현 대통령의 숙원사업이었지만 이러한 안보문제 때문에 접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돌아간 그는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연수 중이다.
노무현 대통령 "무척 아쉽지만 국가안보 때문에 접을 수밖에..."이 전 장관은 "(제2롯데월드 신축을 추진하던 시기는) 한국경제가 첨단 고도 산업화의 길을 걷다 보니 성장 속의 저고용 문제로 대통령이 골머리를 앓던 때였다"며 "나는 보좌하는 처지에서 대통령 뜻을 적극 받들어 롯데에 초고층을 허용해주는 방향으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대통령이 군통수권자이고 군용공항에 관한 문제이므로 민간전문가 대신 공군 기술전문 장교 2명을 직접 불러다 초고층 허용이 가능한 방향으로 모든 기술검토를 시켰다"며 "하지만 종합 검토 결과 국가 안보문제와 항공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나왔다"고 전했다.
NSC는 이러한 검토 결과를 그대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무척 아쉽지만 중대한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라 초고층 허용은 접을 수밖에 없겠다"고 진한 아쉬움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 전 장관은 "노 대통령의 스타일은 참모나 국방 수뇌부에게 의견을 비교적 자유롭게 개진토록 하고 이치에 맞으면 속내로는 싫어도 따르는 편"이라며 "그때 군에서도 여러 간부가 대통령을 만나 제2롯데월드 초고층 허용에 반대한다고 개진했지만 이에 맞서 노 대통령은 자신의 뜻을 관철하겠다고 윽박지르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전 장관은 "군이 사기를 먹고 사는 집단이므로 대통령도 안보문제는 군의 의견을 가장 존중해준다는 원칙을 가져서 그런 것"이라고 설명했다.
"활주로 변경 비용 문제는 반대할 사유조차 되지 않았다"이 전 장관은 대통령 보고 전 공군측에 "활주로 각도를 틀어서라도 제2롯데월드를 승인해줄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할 정도로 초고층 승인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활주로 각도를 틀 경우 광범위한 비행안전 보호구역을 신규로 설정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검토 결과가 나왔다.
이 전 장관은 "국가 정책을 결정하면서 민원과의 형평성 측면에서 볼 때 그렇게는 갈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며 "당시 활주로 변경시 막대한 비용이 드는 문제 자체는 반대하는 데 고려 사유조차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도 활주로 각도를 변경하는 방안까지 검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희 국방부장관은 국회에서 "참여정부 당시에는 활주로 각도를 트는 대안은 검토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와 관련, 이 전 장관은 "나는 이런 거짓 주장이 나오는 데 대해 공군 측에 대단히 유감"이라며 "당시 공군은 활주로 각도를 트는 방안을 분명히 검토해서 NSC에 보고했고, 그 부작용까지 내놓았다"고 반박했다.
이 전 장관은 "그때 각도를 틀어서도 안 된다고 하던 문제를 지금 와서 갑자기 해결되는 것처럼 공군이 들고 나오는 이유를 도무지 납득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 장관은 "당시 공군은 두 개 활주로 모두 각도를 트는 방안을 검토했다"며 "지금 와서 주활주로 하나만 각도 변경을 검토했다는 것은 군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당시 관련자들의 처지를 생각해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 현재 공군 안에 있다"고 덧붙였다.
"군부는 정치군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다"또한 이 전 장관은 "이상희 장관은 그때 3군사령관이었는데 노 대통령 앞에서도 거침없는 소신발언을 했다"며 "이상희 장관을 포함해 당시 군 간부들 가운데 제2롯데 초고층 허용을 찬성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요즘 군 수뇌부가 이 문제를 두고 거짓말을 거듭하고, 반대론자에 대해 우격다짐식으로 나오다 보니 모양새가 다 구겨진 것으로 보인다"며 "이렇게 되면 군부는 정치군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문민통수권자 밑에서 군 수뇌부가 이렇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정치화된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국민과 군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