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향이야?”
은은한 향이 방안에 그득하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을 때에는 음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눈을 감고 있으니, 코끝을 자극하는 향이 있었다. 집사람은 그렇게 무디냐고 핀잔이다. 꽃 핀지가 며칠 되었는데, 이제야 그 것을 느끼느냐는 것이었다. 이유 있는 힐난에 할 말이 없다. 마음 가는 곳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눈을 15 도 상방으로 올리니,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책상 위에 화분이 놓여 있었다. 언제부터 그 곳에 있었을까? 기억이 없다. 매일 책상에 앉아 일을 보았다. 그런데 왜 화분을 보지 못하였는지, 나 스스로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다. 어찌되었건 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책상 왼쪽 모서리에 화분이 있었고 그 화분에는 난 꽃이 피어 있었다.
난화.
동양란이 아니다. 우리가 춘란이라고 부르는 난이 아니었다. 꽃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 있고 그 사이 사이에 꽃송이들이 피어 있다. 꽃을 보완하는 꽃잎이 아래로 3개가 여유의 멋을 자랑하고 있고 그 위로 또 다시 두 개가 쫑긋 세운 토끼 귀처럼 의젓하다. 그 아래에 수줍은 듯 붉은 입술 모양을 하고 피어 있는 꽃의 자태가 그렇게 우아할 수가 없다.
환하게 웃고 있는 꽃에는 봄이 배어 있었다. 밖은 갑작스레 추위가 몰아쳐서 한기가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그렇게 두렵지가 않다. 방안에 피어있는 꽃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겨울 추위가 아무리 심술을 부려도 그것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꽃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걱정이 되지 않는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모두가 힘들다. 그러나 환하게 웃고 있는 난화처럼 나아질 것이란 생각을 하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가슴 속에 뜨거운 열기가 솟구치고 있는 한, 아무리 어려움이 크다 할지라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가슴에 희망이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다는 사실을 꽃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꽃에 배어 있는 봄은 힘을 내게 한다. 봄이란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지 않은가? 코끝을 자극하고 있는 은은한 향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시나브로 몸과 마음이 따스해진다. 온몸에 스며드는 온기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새로운 힘이 세포 구석구석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책상 위에 피어 있는 꽃을 바라보면서 깨닫게 된다. 아무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봄이 다가오고 있어도 봄을 보려는 눈을 가지지 못하면 볼 수 없다. 마음의 눈을 뜨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꽃이 있어도 그 것이 보이지 않는다. 향기가 방안에 진동하여도 마음을 열지 않으면 그 향을 취할 수 없다.
난 꽃을 바라보면서 오관을 넘어선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의 단점에는 눈을 감고, 좋은 점을 찾는 데에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도처에 희망이 넘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가슴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 노력하게 되면 성취하지 못할 것이 없다. 난 향이 그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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