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하느님, 그의 존재
.. ‘사랑하는 하느님, 이것 좀 도와주세요’라고 말할 때 난 그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그는 언제나 내 앞에 나타난다 .. 《리타 페르스휘르/유혜자 옮김-아빠의 만세발가락》(두레아이들,2007) 113쪽
‘그의 존재’와 ‘그는’이라고 나오는데, 이렇게 ‘그’라고 적기보다는 ‘하느님’이라고 밝힐 때가 한결 낫습니다.
┌ 그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
│→ 그분이 있는가 없는가를 믿지 않지만
│→ 그분이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 하느님이 있다고 믿지 않지만
└ …
여기에서는,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쯤으로 손봐도 어울리네요. “하느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르겠지만”쯤으로 손보아도 어울리고요.
“사랑하는 하느님, 도와주세요” 같은 말은, 하느님을 믿든 안 믿든 저절로 나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이 있는지를 믿지 않지만”으로 적어도 괜찮은 한편, “하느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이나 “하느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알 길이 없지만”쯤으로 적어도 괜찮습니다.
ㄴ. 사람은 그런 존재는 아냐
.. 성격의 문제지. 사람은 죄책감만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아냐 .. 《쿠마쿠라 타카토시/편집부 옮김-샤먼 시스터즈 (1)》(대원씨아이,2003) 56쪽
우리네 지식인들이라 할 사람들은 오랫동안 한문을 써 왔습니다. ‘크다’고 하는 나라일은 한문으로 움직였습니다. 생각하기로 이루어지는 사상과 철학은 한문으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지식인들은 편지 한 장을 주고받을 때에도 멋들어진(?) 한문을 쓰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 움직일 수 있는 존재는 아냐
│
│→ 움직일 수 있지는 않아
│→ 움직이지는 않아
│→ 안 움직여
└ …
작은 일도 그렇지만 크다고 하는 온갖 일을 할 때면, 살가운 벗과 주고받는 편지도 그렇지만 널리 쓰여야 할 굵직굵직한 글을 쓸 때면, 으레 한자로 적거나 한자말로 이야기를 하는 버릇이 깊이 자리를 잡은 우리 삶입니다. 이런 흐름이나 버릇은 문화나 전통으로 여기며 고이 이어받아 앞으로도 대물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흐름이나 버릇이 얼마나 이어받을 만한 문화나 전통인가를 곰곰이 되짚을 수 있습니다. 따져 볼 수 있습니다. 찬찬히 살피며 한결 나은 문화나 전통으로 새로워지도록 고칠 수는 없는지, 또는 거듭날 길은 없는가 하고 새롭게 가꿀 수 있어요.
“사람은 죄책감만으로는 안 움직여.” 하고 말할 수 없을까요. “사람은 미안하다는 생각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아.” 하고 말하면 자기 뜻을 제대로 건네지 못할까요.
어떤 일을 하든 ‘일하는 마음’과 ‘일하는 매무새’를 곰곰이 되짚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나날이 쓰는 말 한 마디를 할 때에도 어떤 마음과 매무새로 하느냐를 무엇보다도 깊이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ㄷ. 작고 힘이 없는 존재
.. 나는 최근 몇 년 전까지 작고 힘이 없는 존재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있었습니다 .. 《요시다 도시미찌/홍순명 옮김-잘 먹겠습니다》(그물코,2007) 9쪽
‘최근(最近)’은 ‘요사이’나 ‘요즈음’이나 ‘요’로 고칩니다. “몇 년(年) 전(前)까지”는 “몇 해 앞서까지”로 다듬어 줍니다.
┌ 작고 힘이 없는 존재인 내가
│
│→ 작고 힘이 없는 사람인 내가
│→ 작고 힘이 없는 내가
└ …
우리들은 작다고 하든 크다고 하든 똑같은 사람입니다. 누구나 목숨 하나 붙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 작고 힘이 없는 목숨붙이인 내가
우리는 사람이니 ‘작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고, 힘이 없는 목숨붙이이니 ‘힘이 없는 목숨붙이’라고 가리킬 수 있어요. 보기글에서는 이런 말 저런 말 넣지 말고 “작고 힘이 없는 내가”“작으면서 힘도 없는 내가”로 적어도 됩니다.
― 작고 힘이 없으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뒤따르는 ‘내가’까지 덜고 “작고 힘이 없으면서”만 적어 봅니다. 어떤 말이든 꾸밈없이 적을 때가 가장 단출하고 또렷하고 느낌이 살고 넉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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