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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계약'이라는 것이 있다. 국어사전상 정의는 "경쟁이나 입찰에 의하지 않고 상대편을 임의로 선택해 체결하는 계약"을 뜻한다. 천안시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경우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그 법의 범위가 상당히 넓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장 또는 계약담당자가 수의계약을 할 수 있는 경우는 30여가지가 넘는다.

 

수해 등 경쟁에 부칠 여유가 없이 긴급히 처리해야 하는 재해복구가 수의계약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경우. 그 밖에 특허를 받았거나 농공단지에 입주한 공장이 직접 생산하는 물품, 지역사회 개발을 위해 추정가격이 2000만원 미만인 공사 등도 수의계약 대상이다.

 

수의계약은 천안시 본청에서는 계약부서인 재정과가 담당한다. 읍.면.동이나 사업소에서는 해당 계약부서가 수의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업무가 시 본청과 사업소, 읍.면.동별로 분산된 탓에 한해동안 천안시 전체에서 체결되는 수의계약의 정확한 규모를 산출하기란 쉽지 않다.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는 1000만원 이상의 수의계약을 체결하면 그 내역을 지방자치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천안시 홈페이지에도 '수의계약 내역공개' 코너가 별도로 개설되어 있다.

 

 

상위 10개 업체가 전체 수의계약의 23% 차지

 

수의계약은 공개경쟁입찰과 달리 특성상 특혜와 부정의 시비를 낳을 수 있는 개연성이 크다. 관련업계에서는 수의계약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이뤄지지 못한채 계약을 체결하는 업체가 매번 계약을 또 다시 수주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 수의계약은 일부 업체에 편중될까?

 

천안시 홈페이지 '수의계약 내역공개'에서 2008년 한해동안의 수의계약 결과를 산출해 분석한 결과 수의계약을 둘러싼 업체간 양극화 현상은 사실로 드러났다.

 

1000만원 이상 지난해 천안시 본청과 읍.면.동, 각 사업소에서 체결한 수의계약은 5백26건. 2백31개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천안시와 계약을 체결했다. 1개 업체당 평균 수의계약 체결 건수는 2.28건.

 

작년 한해동안 시와 체결한 수의계약 건수가 8건 이상인 상위 10개 업체는 2008년 천안시 수의계약 5백26건 가운데 23%를 차지했다. 시 본청, 읍.면.동, 각 사업소를 통틀어 작년 천안시와 1000만원 이상 가장 많은 수의계약을 체결한 상위 10개 업체는 모두 지역 건설사들이었다.

 

상위 10개사의 이름과 대표자, 사업장 주소는 성진건설(이규전.신부동) 미우건설(김진웅.원성동) 성우건설(유지형.성정동) 창원건설(이창원.오룡동) 석인건설(석호범.신방동) 천보건설(백장흠.구성동) 남산건설(박영국.구성동) 중앙건설(방윤권.성환읍) 조성건설(조종호.성남면) 중부건설(김성우.안서동) 등이다.

 

성진건설은 지난해 21건으로 최다 수의계약 체결건수를 보였다. 미우건설과 성우건설, 창원건설은 각각 14건으로 집계됐다. 석인건설, 천보건설은 각각 11건을 체결했고 남산건설, 중앙건설은 10건씩을 수의계약했다. 조성건설과 중부건설은 각각 8건의 수의계약을 천안시와 체결했다.

 

지난해 1건 이상 천안시와 1000만원 이상의 수의계약을 체결한 업체는 2백31개소. 이 가운데 61%의 업체는 수의계약 체결 건수가 1건에 머물렀다. 반면 전체 수의계약 체결 업체 수의 4.3%인 10개 업체는 적게는 업체당 8건, 많게는 20건이 넘는 수의계약을 달성했다.

 

지역건설업체의 한 대표는 "수의계약 수주율이 두드러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몇몇 업체는 다른 업체의 명의를 빌려 수의계약을 성사시킨다"며 "이를 감안하면 업체간 수의계약 격차는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부적정 업체와 수의계약 체결, 인터넷 공개 누락도

 

여러개 업체가 공개적으로 경쟁하는 공개경쟁입찰과 비교해 수의계약은 부적정 업체가 계약을 수주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광덕면사무소는 작년 10월 천안시 정기종합감사를 받았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광덕면은 관내 모지역의 2007년도 수로관 설치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철근.콘크리트 공사업 등록업체에게 맡겼다.

 

건설산업기본법과 시행령은 건설공사 발주자가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능력있는 건설업자를 선정해 건설공사가 적정하게 시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로관 설치공사의 경우 전문공사를 시공하는 업종 중 '상.하수도 설비 공사업' 등록업체와 계약을 시공해야 한다. 광덕면은 부정적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한 사실아 확인돼 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비슷한 사례는 다른 읍.면.동에서도 확인됐다.

 

천안시는 작년 11월 청롱동주민센터를 종합감사했다. 감사결과 청룡동주민센터는 2007년과 2008년 관내 배수로 정비공사외 1건의 공사에 대해 상.하수도 설비공사업과 석공사업 등록업체와 계약을 시행해야 함에도 공사 내용에 부적합한 철근.콘크리트 공사업 등록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해 시공했다가 지적받았다.

 

성환읍사무소도 2007년과 2008년 어룡리 가드레일 설치공사외 4건의 공사를 시행하면서 공사 내용에 부적합한 전문 건설업 등록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확인돼 작년 12월 정기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공개경쟁입찰과 비교해 수의계약은 당사자간 담합이 수월해 서로가 부당하게 잇속을 챙기는 '짬짜미'의 가능성이 잠복되어 있다. 실제로 작년 7월 천안시 공무원 3명이 수의계약과 관련해 거액의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법적으로 1000만원 이상 수의계약 결과를 계약이행 완료일로부터 1년 이상 인터넷에 공개토록 명문화한 것도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부정의 염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이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종합체육시설관리사무소는 2007년과 2008년 조명용램프 안정기 교체공사외 11건의 시설공사에 대한 수의계약 내역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미공개했다가 시 자체감사에서 탄로났다. 수도사업소와 성남면사무소도 지난해 수의계약 내역의 일부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미공개했다가 시 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작년 수의계약 내역 분석 결과 계약 체결 후 몇 개월이 지난 뒤 인터넷 홈페이지에 늑장공개하는 사례도 눈에 띄었다. 지난해 6월 9일 본관 냉방기냉수 순환 펌프교체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체결한 시민문화회관은 4개월여가 지난 작년 11월 7일 수의계약 내역을 공개했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계약금액이 1000만원 이상인 수의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월별 수의계약 내역을 다음달 10일까지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경제 살리기에 수의계약 '화' 키울수도

재정조기집행으로 수의계약 적용 확대, 시의회-시민단체 개선 요구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경기상황을 끌어올리기 위해 정부는 재정의 조기집행을 산하 전 기관에 독려하고 있다. 천안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의 재정 조기집행방침에 부응하느라 시는 지난 1월 31일 현재 3428건, 금액으로 2315억원의 계약을 채결했다.

 

재정 조기집행은 경기침체를 막기위한 고육지책인점도 있지만 자칫하면 수의계약의 부정적인 '화'를 키울 수 있는 우려도 안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마련한 예산 조기집행 10대 준수지침은 각종 계약시 긴급입찰 또는 수의계약을 최대한 활용토록 하고 있다.

 

또한 지방재정 조기집행을 위한 지방계약법 시행령 개정으로 설계 및 타당성 조사 용역 등에 대해서는 올해 10월말까지 한시적으로 5000만원 이하인 경우는 1인 견적 수의계약이 가능하게 됐다. 정부는 수의계약 남발의 규제 수단인 계약심사.심의기간도 단축토록 권장하고 있다.

 

재정조기집행을 앞세워 수의계약이 빈번해지는 것에 비판적인 시선도 있다.

 

천안시의회 이명근 의원은 "수의계약은 될 수록 안하는 것이 합당하다"며 "수의계약을 할 경우에는 계약심의위원회를 거쳐서 정당성을 부여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재정조기집행에 휘말려 수의계약이 남발될 경우 차후 부실에 따른 피해가 더 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건설업계에서는 수의계약 자체를 전면 폐지하고 공개경쟁입찰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천안시협의회 관계자는 "현행 수의계약은 업체간 공정경쟁을 저해하고 일부 업체들의 독식을 양산하고 있다"며 "수의계약을 전면 폐지하고 공개경쟁입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전문건설협회는 수의계약 폐지를 골자로 한 건의서를 조만간 시에 접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찬수 시 계약관리팀장은 "천안시 수의계약은 지방자치단체 수의계약 운영요령과 법규를 준수해 이뤄지고 있다"며 "수의계약의 폐지는 자치단체의 권한 밖"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수의계약 폐지가 어렵다면 계약 수주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는 1인 견적서 제출의 2000만원 이하 수의계약 한도액을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밝혔다.

 

정병인 천안아산경실련 사무국장은 "천안시가 발주하는 수의계약이 학연이나 지연, 인맥에 따라 특정업체에 수주된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다"며 "불필요한 수의계약을 억제하기 위해 수의계약 대상을 1000만원 이하로 축소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종한 시의원은 수의계약 계획의 사전 공개를 주문했다. 전 의원은 "수의계약은 담당 공무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는 속성을 갖고 있다"며 "수의계약을 할 때에 사전에 계획을 공개해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는 투명하고 공정한 계약행정 추진을 위해 경쟁입찰 또는 수의계약에 의해 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1000만원 이상의 공사, 용역, 물품구매 등 한해동안의 발주계획을 매년 연초에 사전 공개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14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태그:#수의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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