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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하려는 노동자·농민들을 지방에서 막은 행위는 적법한 공무집행에 아니기에 공무집행방해 혐의는 무죄라는 판결이 또 나왔다. 앞으로는 경찰이 지방에서 노동자·농민들의 상경투쟁을 원천봉쇄하는 행위를 마음대로 못할 것으로 보인다.

 

창원지방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김경호)는 18일 오후 2시 315호 법정에서 농민 4명과 건설기계노조 조합원 5명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었다. 이들은 2007년 11월 11일 서울에서 열리는 범국민행동의날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경남 의령에서 출발하려 했지만 경찰이 막으면서 충돌이 빚어졌다.

 

당시 충돌로 노동자·농민뿐만 아니라 경찰도 다쳤다. 그날 오후 이들은 상경투쟁 원천봉쇄에 항의하며 의령경찰서 앞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다.

 

경찰과 검찰은 이들에 대해 공무집행방해와 상해, 집회와시위에관한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또 검찰은 의령농민회 소속 농민 3명에 대해 자굴산골프장 건설 반대 투쟁으로 빚어진 충돌과 관련해 함께 기소했으며, 재판부는 이들에 대해서만 병합 심리했다.

 

이날 재판부는 노동자·농민들에 대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라고 밝히면서, 나머지 상해나 집시법 위반 등에 대해서는 유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농민 2명에 대해 각 벌금 250만원, 나머지 농민 2명과 건설기계노조 조합원 4명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다른 1명에 대해서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김경호 판사는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하기 위한 상경투쟁을 경찰이 저지한 행위는 대법원에서 판시한 것과 같이 적합한 공무집행이라 볼 수 없다”면서 “의령은 서울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이루어진 경찰의 원천봉쇄 조치는 적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판사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경찰관이 다치고 순찰차량 유리창을 파손한 행위, 다중의 위협을 가한 행위는 인정되며, 경찰관한테 상해를 가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김 판사는 “당시 상경투쟁 원천봉쇄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는데, 집회 신고를 하지 않아 집시법을 위반했다”면서 “경찰의 원천봉쇄 조치가 적법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해죄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양형과 관련해 재판부는 “상해죄는 징역 3년 이상에 처해야 하나 경찰의 적법하지 않은 행위에 따라 대항하기 위해 우발적으로 벌어지고, 동종의 다른 범죄가 없는 점 등을 들어 최대한 감형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는 제해식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 의장을 비롯한 농민 회원과 김성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경남본부 사무처장 등 건설기계노조 조합원들이 나왔다. 이날 선고에 대해 노동자·농민단체는 판결문을 받아본 뒤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춘천지법도 비슷한 판결... 민사사건도 마찬가지 적용

 

경찰이 농민·노동자들의 상경투쟁을 지방에서 원천봉쇄한 행위는 적법하지 않다는 판결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지난 1월 28일 춘천지방법원 형사3단독 허경무 판사도 비슷한 판결을 내렸다. 강원도 춘천에서도 2007년 11월 11일 농민들이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하려고 했지만 경찰이 막아 충돌이 빚어졌다. 당시 충돌로 농민 2명이 경찰관을 밀친 혐의(공무집행 방해)로 기소되었던 것.

 

언론 보도에 따르면, 허 판사는 “집회 장소인 서울과 150㎞ 이상 떨어진 곳에서 시위에 참가하기 위한 출발 또는 이동을 막는 것은 경찰의 적법한 직무집행이 아니다”며 “이는 범죄 예방을 위한 경찰권 발동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므로 공무집행 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하면서 농민 2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었다.

 

허 판사는 “이 씨 등이 비록 금지 통고된 상경 집회에 참가하려 하더라도 집회장소 출입을 막거나 주변에서 참가를 제지하는 등의 방법도 가능한 만큼 경찰이 지방에서부터 원천 봉쇄해야 할 긴급성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민사소송에서도 경찰이 1심, 2심 모두 패소

 

항소심 재판부인 창원지방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허홍만)는 지난 13일 이병하 경남진보연합 공동대표(현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위원장) 등 88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위자료 청구소송에서 노동자·농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병하 공동대표 등은 2007년 11월 11일 서울에서 열렸던 '2007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하려고 했으나 경찰이 막아 대한민국을 상대로 버스임대 비용과 도시락 비용에 대한 손해배상과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송을 냈던 것.

 

지난해 8월 19일 1심 재판부인 창원지법 제8민사단독(판사 이미정)은 이 공동대표 등이 낸 소송에 대해, 대한민국은 88명에게 1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는데, 이번 항소심 재판부도 같이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서울 집회가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 등의 이유로 적법하게 금지처분됐다손 치더라도 집회 예정시간보다 무려 9시간30분 전에 400여km나 떨어진 곳에서 상경하려 했다는 행위만으로 범죄행위가 목전에서 행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항소심 재판부인 허홍만 재판장도 “1심 판결 이유가 대부분 그대로 맞다"면서 "집회예정시간보다 9시간30분 전에 그것도 400여km 떨어져 있는 경남에서 막은 것은 경찰관직무집행법을 정당하게 집행했다고 보기 어려워 피고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한미FTA저지경남도민운동본부 "공권력 오남용에 대한 강력한 경고"

 

한미FTA저지경남도민운동본부는 18일 이번 판결과 관련해 논평을 내고 “재판부의 당일 경찰의 공무집행방해 및 특수공무집행방해죄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을 환영하며 당연한 결정이다”며 “이번 재판결과는 지난 13일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 결과에 이어 다시금 대한민국 경찰과 검찰의 공권력 오남용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다”고 밝혔다.

 

또 이 단체는 “당일 일어난 충돌의 일차적 책임은 공권력을 남용한 경찰에게 있었다는 것과 경제 한파 속에서 농촌의 경제 사정을 고려했을 때 재판부의 선고결과 중 양형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며 “한 마리에 5만원 밖에 하지 않는 송아지 농사를 지으며 하루아침 250만원이라는 큰 돈을 벌금으로 내어야 하는 농민들의 한숨을, 재판부에서 보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태그:#원천봉쇄, #상경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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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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