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노트북 앞에서 불공을 드리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방문을 슬며시 열고는 문지방 너머에서 "혹시 실상사에서도 메주를 파냐?"라고 물어오셨습니다. 예전에 담근 장은 다 먹었고 한동안 장을 담그지 않아 농협에서 사먹던 것을, 올해는 장을 담궈 먹으려는데 시장과 방앗간에서도 메주 4덩이를 10만원이나 달라고 해서 믿을 만한 곳에서 메주를 얻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옛날에는 밭에서 직접 길러 수확한 메주콩을 겨우내 가마솥에 쑤워 메주를 직접 띄워 장을 담가 먹었지만 지금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가마솥도 없고 메주를 띄울 공간도 없기 때문입니다.
장을 담그려면 좋은 메주는 기본!!
지리산 실상사를 근본도량으로 하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인드라망생협(http://www.budcoop.com) 조합원으로 가입해 간혹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고 있고, 귀농-생명-농업이야기와 생협 물품을 소개한 소식지를 매달 받아보고 있는 것을 알고 계신 어머니는 사찰에서 만든 메주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오셨습니다.
그래서 간만에 인드라망생협에서 메주를 찾아봤는데 "품절"이었습니다. 경북 봉화의 춘양면 친환경작목반이 2008년 산 무농약 백태로 만든 메주(4장, 7만5000원)의 재고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장을 손수 담그려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괜찮은 메주는 미리 사둬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인드라망생협뿐만 아니라 유기농-친환경 농수산물과 물품들을 간혹 구매하는 '무공이네(https://www.mugonghae.com)에 접속해서는 메주를 찾아봤는데 다행히 재고가 남아 있었습니다. 2008년 생산된 전환기 유기재배 햇콩으로 만든 메주 5장(5kg 내외, 9만4000원)이 나와있어 어머니께 보여드렸습니다. 인드라망생협의 메주가 가격도 그렇고 좋아보이지만 품절이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화면속의 메주를 보시더니 "역시 메주가 많이 없을거야" 하시면서 구매 가능한 메주를 주문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메주값을 주신다기에 그냥 제가 무통장입금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전환기 유기농 전통메주를 주문해 받아서는 날을 기다렸습니다. 장을 담글 그날을 말입니다.
화창한 날 정월장을 담가보세!!
장은 우리네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는 것이라, 옛부터 잡귀와 부정이 타지 않는 날에 담가왔습니다. 장독에 솔가지와 숯, 고추를 새끼줄에 끼워 금줄을 쳐 액막이를 하고, 한집 사람이 아닌 외부인이 장독(대)를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한 이유도 그러합니다. 장맛이 바로 음식의 맛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날이 우수인 오늘(18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오늘을 "말날"이라고 하셨고, 이날 담근 장은 정월장이라 합니다.그래서 어머니는 머리도 감고 몸을 정갈하게 하고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장 담글 준비를 하셨습니다.
우선 사온 메주를 수세미로 깨끗이 씻어 소쿠리에 물기가 빠지도록 담아놓고, 옥상에 올라가 고무대야에 국산 천일염을 풀어 소금물을 만들었습니다. 미리 소금물을 풀어놓고 그것을 가는체에 이물질을 걸러가며 독에 부었습니다. 소금물의 양은 어느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중간크기의 고무대야의 반정도가 중간크기의 장독에 부어졌습니다.
그 뒤에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뽀얀 메주를 "맛나게 장 잘되게 해주십시요!"라고 기도문을 되뇌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독안에 조심스레 앉혀졌습니다. 메주를 독에 넣고는 아버지가 구해왔다는 강원도산 참숯과 고추를 넣고 유리뚜껑을 닫아 두었습니다.
아참 정월장은 50-70일정도 숙성을 한 후 뜰 수 있다 하고, 걸러낸 간장을 솥에 담고 60-80℃ 정도에서 10-20분 정도 달이면 변질을 막고 색이 곱게 난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그렇게 동생 내외와 어린 조카를 안은 아버지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집 장 담그기는 화창한 겨울날과 함께 펼쳐졌습니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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