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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을 자가용으로 하시는 분들. 외롭고 지루함을 어떻게 달랠까요. 저의 경우 험난한 산악도로를 구불구불 달리느라 지루할 틈이 없지만 라디오를 이용해 외로움을 달래는 편입니다. 어제도 타자마자 켜지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운전 중이었습니다. 사연은 보통 아침을 함께 해주어 고맙네, 목소리가 아름답네, 오늘 생일인데 신청곡을 틀어달라는 등의 평이한 내용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수 보아는 많이들 아실 겁니다. 이수만이 키운 국제적인 스타. 국제적이라고 하면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오리곤 차트를 여러 번 섭렵한 여가수입니다. 하지만 이 가수의 노래를 듣기 힘이 듭니다. 국내에서 음반도 별로 나오지 않지만 어쩌다 나와도 활동을 별로 하지 않으니 방송을 통해서 듣기는 더 힘듭니다. 차라리 비처럼 한 열흘 버라이어티 활동하면 노래는 많이 나올 것 같은데요. 개인적인 바람입니다만.

어떤 청취자에게서 그 여자가수의 신청곡이 나왔습니다. 저는 “음. 오랜만에 보아노래 좀 듣겠군. 무슨 곡이라 그랬지.”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디제이의 차분한 음성이 노래를 들려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곧이어 이유를 설명했고, 현재의 방송법상 일본어 가사로 된 노래는 방송이 불가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니, 아직도 그렇단 말이야?”

소니의 워크맨. 당시는 돈있는 집 자식들이나 가지고 다녔다.
▲ 초기 워크맨 소니의 워크맨. 당시는 돈있는 집 자식들이나 가지고 다녔다.
ⓒ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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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지금의 10대들은 잘 모를 가수 이문세와 변진섭이 자웅을 겨루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때 학교에서 일부는 이어폰을 귀에 꼽고 눈을 감고 창가에서 폼을 잡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강남의 모 중학교에는 꽤 부자부모를 둔 학생들이 여럿 있었고, 그네들은 날렵하게 생긴 워크맨을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들 중 한 아이의 짝이었는데 우연히 흘러나온 일본어 음악소리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기껏 팝송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듣던 나로서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기에 듣기를 청했습니다. 인심이나 쓰듯 한쪽을 빌려준 친구는 설명까지 장황하게 더 했지요. 가수와 곡목은 지금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국내 가요에 비하면 꽤 경쾌하면서 세련된 느낌이 강했다는 느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일본어의 억양과 발음이 약간 거슬리긴 했지만, 곡 전체의 흐름에 방해를 줄 정도는 아니다 라고 생각했지요. 당시엔 일본어로 된 모든 문화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 대학을 다니던 97년의 어느 가을날 같은 과 동기들과 자취방에서 술 마시며 불법비디오로 영화를 보는 것은 학창시절을 추억하는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남자들끼리이니 다분히 빨간색(?)의 것들이 다수였다면 미개봉영화, 애니메이션, 고전영화도 그 목록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일본문화에 대한 동경의 정점이었던 영화. 러브레터.
▲ 영화포스터 일본문화에 대한 동경의 정점이었던 영화. 러브레터.
ⓒ 후지티브이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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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흥분한 친구가 설거지 내기 고스톱을 치고 있던 몇 몇을 불러 모으더니 죽이는(?) 영화라며 티브이 앞에 모았습니다. 그 영화가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였습니다. 너무나 환상적인 화면과 스토리. 잘근잘근 머릿속에서 씹혀서 가슴에 와 닫는 대사들이 벅찬 감동을 주었지요. 우리 모두 여주인공과 배경이 된 설산에서의 '오겡끼데스까'를 주고받듯이 서로에게 며칠씩이나 외쳐댔지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것이 1999년 겨울이었습니다. 당시 작은 모임에 친구들을 꼬드겨 극장에 데려가서 보았지요. 이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한 것은  1995년이었습니다. 너무 뒤쳐진다.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영화 였습니다. 당시 극장관객의 대부분이 비디오로 이미 접한 관객이라는 소문도 있었지요. 지금이야 인터넷이 있으니 이거 유명무실한 규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일본문화를 동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천박하며 과장된 면에 질려서 영화나 음악등을 찾아 보거나 듣거나 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취향에는 일본만화와 애니매이션, 제이팝, 일본영화까지 들어있습니다. 이는 기호에 따른 선택의 문제이지 규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98년 일부 영화에 대한 개방을 선포한 이래, 거의 다 된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아직도 규제가 남아 있었나요. 10년이 넘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일까요. 영화방영 및 비디오, 음반이 허용된 지금에 아직도 일본음악이 아니 일본에서 활동하는 우리 가수들의 음악을 라디오에서 들을 수 없단 말인가요.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이건 아니다 싶네요.


태그:#일본문화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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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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