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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교육부 장관도 놀란', '촌동네의 반란', '강남을 이긴', '임실의 기적'이 거짓이었다지요? 우리는 교육부가 연출한 드라마틱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공짜로 본 것이지요. 누구는 '막장 드라마'라고도 합니다만.

지난 16일 교육부가 일제고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제가 학교에서 경험한 일에 비추어 볼 때, 교육부가 발표한 숫자와 통계, 그리고 그들의 말 속에 엄청난 거짓이 들어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 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일제고사 결과 발표를 어디까지 믿으시나요?'하는 기사를 밤새 썼습니다. 제목은 나중에 편집부 쪽에서 '아이들 줄 세우고 나니 행복하십니까?'로 바꾸어 달았습니다만.

교사 초임 시절, 거짓으로 보고하는 법부터 배웠습니다

작년 12월말에 갑자기 교육청에서 각 학교로 보낸 일제고사 결과 보고 공문입니다. 학교명이 노출되지 않도록 봉투에 담아서 '교감이 밀봉하여 인편 제출'이라고 했지만, 학교 수가 적어서 응시 인원수만 보면 대충 어느 학교인지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 일제고사 결과 보고 공문 작년 12월말에 갑자기 교육청에서 각 학교로 보낸 일제고사 결과 보고 공문입니다. 학교명이 노출되지 않도록 봉투에 담아서 '교감이 밀봉하여 인편 제출'이라고 했지만, 학교 수가 적어서 응시 인원수만 보면 대충 어느 학교인지 모를 사람은 없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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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 짐보따리를 싸들고 들어가 교사 생활을 시작한 곳은 집에서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다시 배를 타고 내려서 경운기나 트럭을 얻어 타고 들어가는 6학급의 작은 학교였습니다.

부임하자마자 6학년 담임에 '서무' 업무를 맡기더군요. 그 당시 학교에는 행정실이 없어서 지금 행정실에서 하는 일 대부분을 '서무' 담당 교사가 맡아 해야 했습니다. 처음엔 서무가 뭐하는 건지 몰랐는데 날마다 쏟아지는 문서 수발에다가 물품조사와 학교비품관리대장 정리, 소방 관련 일, 수질검사, 건축물관리, 양호(지금의 보건) 업무에다가 체육기구 관리에 날마다 밤낮으로 일에 치여 정신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반 아이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그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학교 일을 한 생각은 많이 나도 아이들 가르친 생각은 많이 나지 않습니다.

그때 제가 교사로 발령받고 학교에서 처음 배운 것은 수업 잘하는 법이 아닌, 거짓으로 보고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제게 "수업은 못해도 절대 표시 나지 않지만, 공문은 보고 안 하면 큰일난다"는 말을 수없이 하면서, 수업 시간 중에도 급하게 보낼 공문 있다고 숱하게 불러댔습니다. 이 소리는 요즘 교사들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소리인데, 놀랍게도 작년에 첫 발령을 받은 초임 교사들도 서른 해 전 저처럼 첫 해 1년 동안 가장 많이 배운 것이 거짓으로 공문 만들어 보내는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저 같은 중견교사들은 신참교사들이 오면 공문을 쉽고 빨리 작성해서 보내는 법부터 가르칩니다. 왜냐구요? 그래야 아이들 가르칠 시간, 수업 준비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거든요.

제가 발령을 받자마자 겪은 일 중에서 두 가지만 얘기해 보겠습니다.

교육청에서 학교 물품을 조사해서 보고하라는 공문이 내려왔기에, 담당인 저는 학교에 있는 비품관리대장을 들고 창고에 들어가서 비품대장에 맞춰 호미 몇 자루, 장도리 몇 개를 세었습니다. 몇 날 며칠을 세고 또 세도 장부에 있는 숫자와 맞지 않을 뿐더러, 어떻게 겨우 맞춰서 보고하고 나면 보고내용이 잘못되었다고 다시 보고하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또 다시 조사하는데, 역사가 오래된 학교다 보니 창고 속에 있는 물건은 아무리 세어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장부 숫자와 학교 비품과 싸우고 있는데, 학교 아저씨가 제 모습이 안 됐는지 넌지시 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세지 말고 그냥 장부 보고 가로 세로 숫자만 맞춰서 보고하면 됩니다" 하고요. 이 말에 저는 "저를 생각해서 해주시는 말씀은 고맙지만, 어떻게 공문인데 거짓으로 보고해요. 힘들어도 다시 정확하게 세어서 보고할게요" 했더니, "백날 세어봐야 퇴짜 맞기만 하고 맞지도 않으니 괜한 고생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편하게 해요. 괜찮아요. 그동안 다들 그렇게 보고했으니까"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버티다가 되돌려받은 공문을 다시 작성한다고 몇 날 며칠을 창고에서 보내도 도저히 숫자가 맞지 않자 결국 학교 아저씨가 가르쳐주신 방법대로 책상에 앉아 장부에 있는 숫자를 꿰어 맞춰(조작해)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교육청에서 '됐다' 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 같은 공문이 내려왔을 때는 창고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장부 숫자만 대충 꿰어 맞춰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편하게 '통과'되더군요.

물품보고와 수질검사를 통해 배운 '요령'

또 한 가지, 해마다 학교에서 먹는 물의 질을 검사해서(수질검사) 그 결과를 교육청에 보고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학교에 상수도 시설이 없어서 옛날식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먹기도 하고 걸레를 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우물물을 퍼서 수질검사를 하면 먹는 물 기준치에 불합격되기 일쑤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물 속을 들여다 보면 늘 걸레나 빗자루가 떠있는 게 보였으니까요. 문제는 수질 검사 결과가 나쁘면 교육청에서는 합격할 때까지 계속 다시 검사해서 '합격'한 결과를 보고하라고 하는 데 있습니다.

혹시 물통이 깨끗하지 않은가 싶어 물통을 더 확실하게 소독해서 물을 떠서 보냈는데 또 불합격을 맞았습니다. 교통이 불편한 시골에서 수질검사를 위해 물통을 들고 한 번 오가기에도 벅찬데 자꾸 불합격이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육청에서는 자꾸 '합격'한 보고를 원합니다. 그때 학교 아저씨가 제게 단번에 합격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선생, 그렇게 백날 해 봤자, 불합격일 게 뻔하니 이번엔 내가 가르쳐 주는 대로 해 봐요."

해서 그 방법을 보니 물통 하나에는 물 좋기로 소문난 동네 어느 집 지하수물을 담고, 또 하나에는 우물물을 끓여 식혀서 물통에 담습니다. 그렇게 해서도 합격이 안 되면, 수질검사 기관에 있는 상수도 물을 받아서 검사를 의뢰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었지만 우리 학교 물로는 1년 내내 검사해 봤자 불합격일 수밖에 없으니 '합격'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학교 아저씨가 가르쳐준 대로 해서 우리 학교는 수질 검사에서 '합격'을 받았고 교육청에 보고해서 수질검사를 통과했습니다.

수질검사에서는 '합격' 판정을 받았지만, 아이들은 계속 '불합격'된 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지요. 저는 2년 만에 그 학교를 떠나서 그 일을 잊었지만, 그 학교 아이들은 상수도 시설이 갖춰질 때까지 계속 그 물을 먹었을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수질 검사 목적은 잊고 오직 '합격'이란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기준치를 넘는 '합격'이란 결과만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면 교육청에서 나서서 좋은 물을 먹을 수 있게 우물을 새로 파 주든지 시설을 개선해 주든지 해야 하는데, 대책이 없는 교육청은 '불합격'을 보고한 책임만을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학교에서는 오직 '합격' 통지를 받는 방법만을 생각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갔고요.

알맹이가 빠진 '기초학습 부진학생 제로화 대책'

이런 일을 겪은 지 벌써 서른 해가 다 돼 가는군요. 하지만, 21세기 지금 학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 교육과학부에서 발표한 일제고사 결과에 대한 각 시도 교육청의 대책이라는 것이 그중 하나입니다. 이번 일제고사 결과 발표 뒤 내세우고 있는 대책을 보면 '학습부진학생 제로화' 방법이 가장 많은데, 학습부진학생 제로화 방법이야말로 과거 수질검사처럼 근본적인 대책은 없고 오직 '합격증'만을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현재 각 학교마다 실시하고 있는 '기초학력책임지도제 운영 계획'. 가장 중요한 목적이 '기초학습 부진학생 Zero화'입니다.
▲ 기초학력책임지도제 운영 기본 계획 현재 각 학교마다 실시하고 있는 '기초학력책임지도제 운영 계획'. 가장 중요한 목적이 '기초학습 부진학생 Zero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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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부진학생 제로화'를 추진하다 보니 내용은 보지 않고 '제로'로 보고한 학교는 잘했다 하면서 교육감 표창에 인센티브를 주고, '제로'로 보고하지 않은 학교는 책임을 묻습니다. 그러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로'로 보고할 것을 부추깁니다.

이 '학습부진학생 제로화' 대책은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각 시도 교육청에서 '기초학습부진학생 책임지도제'에 '기초학습부진아동 제로화 운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마다 학년 초에 기초학습진단검사를 실시해서 기초학습부진아동을 지도하게 되어 있고, 1년에 다섯 번 검사해서 결과를 보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작년 1년 동안 저는 우리 학교 평가 담당으로서 교육청 공문에 따라 나름대로 열심히 기초학습부진아 지도에 힘썼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점은, 학년 초에는 기초학습부진아이들이 상당히 많다가 12월이 되면 그 아이들이 한 명도 남김 없이 모두 없어진(구제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신기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학년말이 되어도 한 아이를 기초학습부진아에서 구제하지 못했습니다.

교육청 공문에서 지시하는 평가지로 평가를 했지만, 기준 점수에 훨씬 미달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살펴보니 이 아이는 교사가 가르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조손가정 아이로 어렸을 때부터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지 못했고 지능도 상당히 낮아서 아무리 애써 가르쳐봐도 가르친 사람의 보람도 없이 6학년에 올라갈 아이가 1학년 2학기 정도 수준에서 발전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 아이를 가만히 진단해 보니 이 아이한테 가장 큰 문제는 수학 문제 하나를 더 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어른들 사이에서 상처받은 마음과 닫혀 있는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다행히도 2학기부터 교육청 예산으로 동네 아주머니인 기초학습도우미를 채용해서 방과 후에 따로 지도를 받으며, 교사보다도 편한 기초학습도우미 선생님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의 얼굴 표정이 많이 밝아졌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초학습부진아, 과연 없앨 수 있을까요

학교마다 공부를 아무리 자세히, 친절하게 많이 가르친다 해도 기초학습부진아동은 늘 한두 아이쯤 있게 마련입니다. 심지어 문제에 정답을 다 써서 주고 외우게 해서 똑같은 평가지로 시험을 봐도 20점도 못 맞히는 그런 아이는 학교마다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학교에는 ‘기초학습부진아’가 모두 구제되어 한 명도 없다 합니다. 그런데 다시 다음해가 되어 기초학습부진 진단평가를 하면 또다시 많이 나타납니다. 같은 평가지로 보는데도 학년 초에는 많다가 학년 말에는 모두 구제되는 현상,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기초학습부진아가 없어진 게, 교육부 말대로 교장의 '리더십'과 교사들의 '사명감'과 '열정' 때문이라고요?

글쎄요, 정말 그럴까요? 그 정답을 이번에 임실교육청에서 확실히 알려주었습니다만, 기초학습부진아들을 '제로'로 구제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0'으로 보고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생각하는 가장 쉽고 편한 '구제방법'이라는 것을 1년 동안 평가업무를 담당하면서 다시 한 번 확실히 잘 알게 되었습니다.


태그:#임실의 기적, #기초학습부진아동, #초등교육, #거짓보고, #허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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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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