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요즘 뭣하고 살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 쓰고 지냅니다."
"오마이뉴스? 그게 뭔데?"
4년 전 내가 아끼는 후배한테 질문한 내용이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오마이뉴스라는 인터넷뉴스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가 쓴 글을 보면 대부분이 미담기사지만 가끔 사회 고발 내용도 있었다.
읽을 때마다 기존의 뉴스와는 다른 생경한 내용과 가슴을 울리는 사는 이야기 등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자는 나와는 먼 나라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글짓기라곤 초등학교 때 학급대표로 글 써본 게 전부였으니 개 꼬막보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생겼다. 내 일생일대에 결코 잊을 수 없던 승진사건. 부당한 법에 치를 떨며 몇날 며칠을 잠 못 이룰 때 내 사건을 언급하고 부당함을 지적해준 언론의 힘을 뼛속 깊이 느껴졌다. 나처럼 힘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디에 억울함을 하소연할 것인가?
법? 그건 이미 가진자들의 것일 뿐이었다. 사회정의를 위해 올바로 서있는 언론은 어디에 있을까? 더군다나 나처럼 글짓기에 문외한의 글을 받아줄 곳이 있을까?
있었다! 후배가 기사를 쓰는 오마이뉴스! 바로 그거다! 때마침 내 억울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후배가 "형님,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한 번 써보세요"라는 권유를 했다. 그때부터 육법을 공부하고 기사쓰기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독파했다.
반신반의하며 올린 첫 기사는 나를 전율케 했다. 내게도 그런 구석이 숨어 있었구나. 그 때부터 틈나는 대로 선배들의 기사를 읽고 독서를 하며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니 보이는 게 달랐다. 여느 말마따나 '목적이 이끄는 삶'이랄까. 사회와 사물을 보는 사고와 시야 및 느낌이 달라졌다.
2년 전 지인으로부터 하소연을 들었다.
"형님! 전라선 야간열차 배차 시간을 봐주세요. 미치겠어요. 서울에서 여수까지 오후 5시 반부터 11시 반까지 차가 한 대도 없어요. 서울에서 일보고 밤 시간에 이동하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입니까?"
주변사람에게 확인한 후 전국의 모든 열차시간을 다운받아 시간대별 차종별로 배차시간을 분석하여 보니 기가 막혔다. 이 내용을 기사화하여 보도하니 여수의 시민단체에서는 증차를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국회에서 문제가 됐다.
배차 담당자는 신년에 여객열차 1편을 증편해주기로 약속했는데 두 대가 증편됐다. 아마 여수박람회가 성공해 여객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결과라 여긴다.
나는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아 여수시 문화원 회원들이나 지역사회 연구소 회원들과 자주 역사탐방을 간다. 여수 좌수영성 창설 사적비를 찾아 방문하고 안내간판을 봤다. 안내문에는 정조대왕 때 창설한 것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오른쪽에 기록된 영문안내판이 문제였다.
전공이 영어이고 외국인들로부터 영어로 써진 안내문이 엉터리라는 얘기를 자주 들어서 유심히 들여다봤다.
정조대왕… → Kim Jeongjo….
King을 Kim으로 잘못 써놓고 외국인들까지 보라니. 더군다나 박람회가 코앞에 닥쳤는데. 그밖에도 여러 문화재가 잘못 번역되거나 철자가 틀린 곳이 있어 "정조대왕이 김정조라니…"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렸다. 그 기사는 여수시내의 모든 영문 안내 간판을 고치는 계기가 됐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훌륭한 후배 교사가 있다. 항상 연구하고 남을 배려하며 학생들과도 이메일 교환을 통해 소통하는 제자들로부터 존경받는 교사이다. 그가 연구하는 분야의 수업연구발표가 있었다.
나는 그가 쓴 자료를 미리 읽고 수업연구발표 기사를 썼다. 그 기사는 교육부문 톱으로 올랐지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후배가 다가와 "형님 때문에 저 큰상 받게 됐어요. 나 때문에 상이라니? 무슨 상? 형님 기사가 국정감사에서 인용되고 제 보고서가 대통령상 후보로 올라갔어요" 그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외눈박이 세상에서 두 눈 박힌 내가 바보가 됐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사회정화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공동대표가 된 나에게 시의회토론 제의가 들어왔다. 남 앞에 그것도 의원들 앞에서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론을 해야 한다? 한 번도 경험이 없는데. 고민하던 내게 자신감이 밀려왔다.
“그래! 한번 부딪쳐보자. 사회개혁에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동안 기사를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긴장은 됐지만 충분한 자료와 사회정화라는 의지 때문인지 전혀 떨리지가 않고 그런대로 괜찮게 토론을 마쳤다.
내가 썼던 '나홀로 입학생' 기사는 SBS에서 특집으로 15분간 방영됐고, 같이 근무하는 캐나다 출신 샤나에 대한 기사가 KBS 1 TV <러브인 아시아>에서 10분간 방송돼 그녀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었다.
작년 연말이었다. 이번에는 여수 MBC방송국에서 여수박람회 성공을 위한 TV토론에 참여해달라는 전갈이 왔다. 60분간 계속되는 토론에는 시장과 박람회 관계자 및 교수들이 대상이었다. 무엇이든지 처음이 문제지 두 번째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
그동안 기사 쓰면서 모은 자료와 해외사례를 충분히 모았기 때문에 그런대로 괜찮게 한 것 같았다. 칭찬에 인색한 아내도 녹화 방송을 지켜본 후 눈빛이 달라졌다.
방송국에는 내가 잘 아는 지인이 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토론후보로 내가 선정됐을 때 "시민단체대표지만 교사가 뭘 얼마나 알겠느냐?"는 회의론이 일었다. 그 때 그분이 일갈했다고 한다. "교사는 사회에 관심이 없는가? 그렇다면 오마이뉴스를 검색해보고 기사를 한번 읽어봐라"고 했다. 이만하면 됐다는 내부 검토 후 TV토론에 등장했다는 후문이다.
오마이뉴스!
내게는 내 안의 사회적 분노를 소통케 해주는 훌륭한 도구이자 사고와 삶의 방식을 바꿔준 내 인생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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