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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돌도 되지 않았을 때, 녀석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 기저귀를 엉덩이에 매단 채로 엄마 몰래 살살 화장실로 기어들어가 변기를 잡고 서서 안의 물을 휘휘 저으며 놀곤 했다. 엄마의 가슴에는 엊그제 일처럼 선연하건만 이제 그 녀석이 다음 달에 훈련소로 들어간단다.

국방부는 촛불시위가 한참이던 지난해 7월 수입쇠고기 배식을 중단하고 오리고기로 대체했지만 올해부터 수입쇠고기를 다시 군인들의 식탁에 올리고 있다. 미국 쇠고기를 공식적으로 제외할 수는 없다는 것이 국방부 방침인데 장병 정서를 고려해 아직은 미국 쇠고기를 선택하지 않고 있단다. 하지만 상황이 호전되면 언제라도 납품받을 수 있다는 태도다.

국방부 "미 쇠고기 공식적으로 제외할 수 없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한미 쇠고기 재협상 촉구 촛불문화제.
▲ 미 쇠고기 촛불 민심이 한풀 꺾이자 국방부는 슬그머니 수입산 쇠고기를 사병들의 식단에 포함시켰다. 사진은 지난해 여름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한미 쇠고기 재협상 촉구 촛불문화제.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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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초 미국 농무부장관 얼 버츠는 농업의 대량생산, 현대화, 통합, 중앙집중화를 위해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 등으로 경작률을 최대치로 올릴 것을 계획했는데 막대한 잉여 농산물은 가축생산에 투입되었다.

1억 마리가 넘는 소의 95%에게 식욕촉진제, 성장촉진제가 투입된다. 운동선수처럼 근육강화용 호르몬제를 투입받기도 하고 고칼로리 섭취로 간농양이 생기면 항생제를 맞는다. 2주일에 한 번씩 유즙분비호르몬제를 맞으며 종전의 세 배나 우유를 생산하느라 유선염을 앓는 젖소도 항생제를 맞는다.

유럽에선 2000년 11월 14일 이후 동물성 사료를 모든 가축에게 금지시켰지만, 미국은 여전히 동물성 사료를 초식동물인 소에게 먹이고 있다. 파리를 쫓느라 꼬리를 휘두르면 하루에 230g 정도 살이 빠지므로 비행기를 이용해서 다량의 살충제를 뿌린다. (영화 <패스트푸드 네이션>을 본 사람들은 헬리콥터 아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이 끝없이 펼쳐지는 바둑판 안에 갇혀 있는 어마어마한 수의 소떼를 기억할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축산업 사장이던 존 블록을 농무부 장관으로 임명했고, 그 다음 장관으로는 정육협회 회장이었던 리처드 링을 기용했다. 그 뒤로 미국 농무부는 축산업자들의 이익에 맞춰 규제들을 풀고 그들을 대변하는 나팔수가 되었다. 미국의 도축공장은 유럽의 10배나 되는 빠른 처리속도를 자랑한다. 영어도 모르는 불법체류자가 검수를 하다가 이상을 발견하고 가동을 중지시키면 바로 해고된단다. 업자들은 정치꾼들에게 막대한 뒷돈을 대고 눈에 핏발을 세우며 시장을 넓힌다.

2005년 12월, 미국 육류수출협회 필립회장은 "특정위험부위를 완전히 제거해 먹는 것은 복어의 독을 제거해 맛있는 복어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2008년 4월, 한국 농업통상정책관 민동석은 "미국 쇠고기는 특정위험물질만 제거하면 99.9% 안전하다. 마치 독을 제거한 복어를 우리가 아무 걱정 없이 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수입된 미 쇠고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2008년 한 해 동안 한국에 수입된 미국 쇠고기의 검역 불합격 건수는 총 66건(전체 불합격건수의 75%). 미 쇠고기 전수검사를 까다롭게 하는 일본에서 지난 3년간 10건만 불합격된 것을 생각한다면 미국이 애당초 수출할 때 한국으로 보내는 고기의 검역은 대충대충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수입된 미 쇠고기를 시장이나 식당에 가서 안 사먹으면 될까? 지난해 7월~11월 사이 정부에서 단속한 결과 미 쇠고기를 속여 판 사례가 35건 적발되었다. 그뿐일까? 음식점을 하는 선배에게 물어보니, 호주산을 쓰고 있지만 업자가 고깃덩어리를 갖다 주며 호주산이라고 말하니 그의 양심을 믿을 뿐 그것이 미국산인지 아닌지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단다.

청와대, 공공기관 구내식당에서는 한 곳도 쓰지 않는다고 하지만(<서울신문> 2009. 1. 13) 2008년 한 해 일단 5만톤이 수입되었으니 어디선가 속고 속이며 소비되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 수입판매업자들이야 대규모 소비처인 군대에 납품할 수 있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중고생 급식비용은 1식에 2500원. 우리 장병들의 1식은 1824원이다. 사병은 하루 35g의 쇠고기(국내산+외국산)를 먹는다. 농협무역이 외국산을 구매하면 부산세관을 거쳐 농축협을 통해 군부대로 납품된다. 농축협이 취급하는 국내산, 외국산 고기는 안전할까?

2008년 10월, 춘천지검은 군부대에 상한 닭을 공급한 업자와 축협 담당자를 구속했다. 냉동닭은 1년이 지나면 사료용으로 써야 하지만, 군납업자가 2년 전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곳에서 구입한 것을 군부대 검수인 등 각종 증명서를 위조해 납품한 것이다. 축협과장? 뇌물을 받은 죄로 구속되었다. 검찰은 조류독감이 유행할 때 대량으로 도축한 것을 싼값에 사두었다가 납품한 것으로 보인다며 군검수체제는 눈뜬 장님처럼 허술했다고 말했다.

2008년 12월, 부산지검은 군부대에 저질 쇠고기를 공급한 업자와 농협 담당자를 구속했다. 농협 검수실장? 20년 동안 운전 이외에 다른 경력이 없는 사람이었다. 업자가 저질 젖소 고기를 육우로 둔갑시켜 납품한 것인데 허술한 검수 구조에 수사관들도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전국의 주요 농협공판장에서 육우를 구매해 가공한 뒤 전국 43개 지역 군납조합을 통해 군부대에 납품하는 농협의 검수체계가 이 지경일 줄 누가 알았을까.

비양심적인 업체가 비전문적인 농축협관리에게 뇌물을 주고 엉터리 축산물을 넘기면, 그들은 다시 비전문적인 군검사관에게 넘기고 이는 장병들의 식탁에 올라간다. 과연 이런 고기들을 수시로 먹었을 우리 장병들의 건강엔 아무 문제가 없을까?

2007년 1월, 대구 경북 지역 5개 군부대에서 809명의 식중독환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군당국은 17명이라고 발표했다. 군 내부에서 '설사사고 엄중 문책'이란 엄포만 난무하는데 어떤 지휘관이 사고보고를 하겠는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선택되는 군납

사진은 사병들이 내부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사병들 식단에 조만간 미 쇠고기가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사병들이 내부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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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미 쇠고기가 군납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촛불시위가 있었음을 알면서도 검역위반 건수가 많은 것을 보면 해당 작업장에 수출금지조치를 취할 권한도 없는 한국시장에는 앞으로도 3류, 4류 고기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저질의 고기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업자들에게 선택되고 군납될 것이다.

광우병에 걸린 일본인은 15년 전 1개월간 영국여행을 하며 쇠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단지 싸다는 이유로 국가가 공급한 미 쇠고기를 먹고 우리 아들딸들이 제대 후 10년 이상 지나 광우병이 드러나거나 쉽게 치매환자가 된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지난달 미 쇠고기군납을 걱정하면서 인터넷에 둥지를 만들었다(다음 카페: 미 쇠고기군납반대 http://cafe.daum.net/antigunnab). 그리고 모여 있는 군인 가족들에게 연대를 하소연하려고 전의경의 부모들이 만든 사이트의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나는 두 곳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했다. 미 쇠고기 군납 반대는 시위대의 주장이었기 때문에 동조할 수 없단다. 위헌적인 전의경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부당했다.

1995년 전의경제도 위헌심판에서 판사들은 5:4로 힘겹게 합헌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국방의 의무란 외적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해서 국가의 정치적 독립성과 영토의 완전성을 지키는 국토방위의 의무를 말한다. 따라서 대간첩작전 수행을 임무로 하고 있는 전투경찰을 경찰의 순수한 치안업무인 집회 및 시위의 진압에 동원해서는 안 된다.

당시 위헌의견을 내었던 판사들의 견해를 중심으로 관련 헌법조문을 살펴보자.

[헌법77조] ①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비상계엄이 선포되지 않는 한 군인을 공공질서유지를 위해 출동시킬 수 없는 것이므로 전의경제는 위헌이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39조] ①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②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즉 전의경에게 내려진 시위진압명령은 국방의무를 벗어나는 것이다. 헌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는 또 다른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일반적인 행동자유권과 개성의 자유로운 발현권을 함축하고 있는 헌법 제10조를 침해한 것으로 위헌이다.)

[헌법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전경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차출되어 국방의 의무이행과 전혀 관계없이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진압하도록 명령 받는다. 이념, 가치, 철학 등 생각 없는 도구로, 정권의 노예처럼 '사용'하는 것은 위헌이다.)

결론적으로 병역의무자를 전투경찰로 전환배치하는 것은 헌법적 한계를 일탈한 편법이다. 따라서 2007년 정부는 점차적 감원을 통해 2012년 전투경찰의 완전폐지를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병무청은 2011년까지 전의경을 매년 1만2천명 수준으로 유지하겠다며 전의경제도 폐지 방침을 백지화했다.

이제 어머니들이 나서야 할 때

미 쇠고기가 공식적으로 배제될 수 없다는 기사를 본 이래로 어미인 나의 고민은 미 쇠고기 군납 반대와 전투경찰 폐지에 이어 생명존중 평화증진에 어머니들이 나서야 한다는 각성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징그러운 전쟁에서 무장해제와 평화협정체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은 양쪽의 아들 잃은 어머니들이다. 그녀들은 통곡하다가 상대방의 존재를 발견하고는 서로 눈물을 닦아주며 <어머니에게는 적군이 없다>는 슬로건으로 전쟁종식운동을 해오고 있다.

세계 도처에서 어머니들은 환경운동, 평화운동, 생명운동에 뛰어들었다. 이제 한국의 어머니들도 자기 자식의 출세와 안녕만을 위해 애쓰기보다 우리의 아들딸을 위해, 모든 이의 행복을 위해 생명존중과 평화증진을 위한 노력에 두 팔 걷고 나서야 할 때다.

군 장성과 사병은 동일한 내용의 식사를 해야 한다. 대통령도 사병이 먹는 고기를 드셨으면 좋겠다. 양심의 자유는 대통령 자리보다 숭고한 것이다. 위헌적인 제도들을 정비하라. 어머니들은 딸아들의 미래를 위해 함께 힘을 모아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자. 그들을 증오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온전한 자유를 위하여.

나는 곧 훈련소로 떠날 아들에게 혹시 전경으로 차출되면 헌법소원을 내자고 제안했다. 미 쇠고기 군납 반대, 전의경제 폐지에 동조하는 많은 어머니들의 연대를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 고은광순 기자는 평화재향군인회, 전국여성연대, 전국여성농민회, 인권운동사랑방 등 1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미 쇠고기 군납반대/http://cafe.daum.net/antigunnab 시민모임' 대표입니다.



태그:#미 쇠고기 , #군납 쇠고기, #엄마가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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