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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철거민 참사'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이메일이 폭로된 가운데,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는 13일 오전 청와대 부근에서 '청와대 여론조작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사죄, 전면 재수사 등을 촉구했다.
▲ 용산범대위, 여론조작 앞장 선 청와대 규탄 '용산 철거민 참사'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내용의 청와대 이메일이 폭로된 가운데, 용산철거민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는 13일 오전 청와대 부근에서 '청와대 여론조작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사죄, 전면 재수사 등을 촉구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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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명박 정부는 운이 좋아!"

세간에는 이런 말이 나돈다고 한다. 그런데 무얼 두고 운이 좋다고 하는 걸까?

경찰의 무리한 진압으로 6명이나 숨진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난 지 10일 만에 연쇄살인범 강호순씨가 잡혔고, '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으로 권력에 의한 여론조작 의혹을 받고 있을 때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걸 두고 하는 말이란다.

기자는 술자리에서 오갈 법한 이런 얘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여론의 동향에 민감한 권력이 자신들과 직접 관련 없는 사건들이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고 싶어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 자체는 물론이고 사건 직후 청와대가 보여준 태도는 그런 권력 속성의 일면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16일 저녁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진석 추기경의 안내를 받으며 조문을 하고 있다.
 지난 16일 저녁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진석 추기경의 안내를 받으며 조문을 하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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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경 선종‘은 돌아보되 이메일 지침은 여기서 끝내자?

'청와대 실세'라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19일 춘추관에 나타났다. 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이 터지고 '잠적'한 지 1주일 만이다. 본인은 "미필적 고의"라고 했지만, 누구의 평가처럼 "특유의 처세와 순발력"이 발휘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 대변인은 이메일 지침 사건을 둘러싼 부정적 여론이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계기로 정리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듯했다. 평소 '프레스 프렌들리'(press friendly)를 강조해온 그는 1주일 만에 만난 기자들 앞에 이런 얘기를 툭 던졌다.

"지난 1주일은 여야도, 이념의 차이도 없이 온 나라가 하나가 되어서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했다. 사회통합의 분위기가 계속돼서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이 대변인은 이런 '주문'도 했다.

"다음주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앞두고 있는데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 각 이해 당사자들이 나의 이해, 우리 집단의 이해를 넘어 무엇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국정조사·특검 도입은 물론이고, 한승수 국무총리를 위증 혐의로, 박형준 홍보기획관을 직권남용죄로 고발하겠다고 나선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한마디로 '정쟁은 그만하고 김수환 추기경 선종의 의미를 되돌아보라'는 것이다. 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을 추기경 선종으로 덮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를 위한, 청와대에 의한' 사건 종결... 그리고 '조중동'의 역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자료 사진).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자료 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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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에서 지휘책임과 관련해 "이성호 행정관이 사표를 냈으면 그것으로 사건은 끝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다소 피곤한 듯 이렇게 말했다.

"그만 하자. 그만 여기서 끝내고, 정쟁하는 것은 정쟁하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팩트(fact)를 가지고 얘기하자."

이 대변인은 춘추관 밖까지 따라나온 기자들에게 "다 나오지 않았냐"며 "그만하자"는 말을 몇 차례 되풀이했다.

사건의 진상은 이미 밝혀졌으니 그만 끝내자는 얘기다. 의혹들이 여전함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스스로 나서서 사건을 종결시킨 셈이다. 한마디로 '청와대에 의한, 청와대를 위한 사건 종결'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특히 기자의 귀를 잡아당긴 것은 이 대변인이 "대체로 알려진 사항 외에 더 나온 게 없지 않나, 언론에서도 판단하고 있을 것이고…"라고 말한 대목이다.

'권력에 의한 여론조작 의혹'이 짙은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크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파문이 확산될 즈음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것도 한 요인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있지만, 기자는 거대 보수언론인 '조중동'의 '조직적 무시'가 더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으면 조중동은 어떠했을까?

조중동이 '좌파정권'이라고 불렀던 노무현 정부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들은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비서관이나 수석이 물러날 때까지 '지독한 지면투쟁'을 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번 사건을 단신으로 처리하는 등 '사건 축소'에 급급했다. 

이 대변인이 "언론에서도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고 얘기한 것도, 청와대가 행정관의 사표 하나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것도, 바로 이런 '우호적 언론상황'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한 청와대 출입기자도 "이번 사건의 경우 청와대와 조중동이 서로 짜기라도 한 듯 호흡이 잘 맞았다"고 꼬집었을까?


태그:#청와대 이메일 지침 사건, #이동관, #조중동, #김수환, #용산철거민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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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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