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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토예프스키 저/유성인 역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저/유성인 역 '죄와 벌' ⓒ 하서

성직자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하기는 하면서도 대개 누구나가 비슷한 경험을 가졌듯이 나도 한때는 아무 책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려고 하였던 것 같다. 원래 책을 많이 살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흔히는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서 빌려서 읽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책을 읽어 가노라면 무슨 책이거나 간에 어느 정도의 감명 같은 것을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세월과 함께 대개는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영영 나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뿐 아니라, 어느 의미로는 나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활력소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고 또는 그의 작품의 문학적 가치라든가 예술성 같은 것에 관한 한 전연 말할 자격조차 없다고 자인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의 하나인 <죄와 벌>에서 받은 깊은 인상은 다른 아무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이 만큼 큰 것이었다고 자부하고 싶다.

 

이 소설을 읽을 시절의 나의 정신적 입장이 나로 하여금 거기서 남다른 깊은 감명을 받도록 만들어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나는 매우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곡절 많은 청소년 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이러한 정신적, 사회적 기반이 나로 하여금 <죄와 벌>에 나오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에게서 나 자신의 분신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라스콜리니코프가 악덕 수전노로 인정되는 늙은 여인을 도끼로 쳐서 죽였을 때 나는 일체의 윤리 의식이나 도덕적 가치관을 떠나서 일종의 통쾌한 느낌마저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고백인데, 그것은 위에서 지적한 대로 내가 처하였던 사회적 요인으로 인하여 내 정신세계에 자리 잡고 있었던 운명에의 반발이 아니었던가 여겨진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가 그 노파를 죽이고 나서 무가치하게 매장되어 있는 많은 돈을 풀어 내어 자기와 같은 가난한 대학생의 학비로 사용되는 일이 선이라고 단정하였던 일이 오히려 하나의 새로운 정신적 갈등의 양상으로 자신에게 밀어닥칠 때에 그는 당황하게 되는 것이다.

 

그가 일단 선행으로 합리화하였던 살인 행위를 저지른 후에 부딪치는 다른 하나의 정신적 갈등... 마음의 평화를 잃고 불안과 초조와 불안정감에 시달려야 하였던 그에게서 나는 인간의 무한한 고민을 보아야 하였고, 동시에 나 자신의 또 하나의 다른 일면을 보여 주는 것만 같이 느꼈던 것이다.

 

살인 행위로써 강탈한 돈 뭉치를 감출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하고, 또 피 묻은 물건을 처리할 만한 적절한 방법도 발견되지 않아서 고민하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모습은 그대로 나와 그리고 인간의 모습인 것 같아서 나는 얼마나 그와 함께 안타까워하며 몸부림쳐야 했는지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죄인이다"라는 명제가 과연 기독교가 가르쳐 주는 신념이라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막연한 개념에 불과하였던 깃인데, 나는 <죄와 벌>의 작품 인물에게서 그처럼 처절한 모순과 부조리, 고뇌와 갈등을 실감할 수 있어 그것은 내게 있어서 소중한 하나의 체험이기도 하였다.

 

기독교를 형식이나 제도 혹은 교리나 신조의 면에서 이해하려고 하지 아니하고, 인간 실존의 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순과 죄 의식, 불안과 고민에서 삶을 추적하고 신을 만나는 것이라고 나는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신앙 이해, 인간 이해가 나의 삶을 성격지어 주었고 나의 신념의 바탕을 형성시켜 주었다면 그것은 실로 <죄와 벌>에서 얻은 것이었음이 확실한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도스토예프스키 ⓒ 박철

<죄와 벌>에서 받은 감명은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고 그 다음의 이야기도 역시 감격적이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인 소니아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소니아, 그녀는 참으로 인생의 참된 아름다움과 향기를 나에게 풍겨 주었다. 알코올 중독자요 병든 아버지를 위하여 가난에 시달린 그녀는 거리의 매소부의 소굴에 몸을 던졌으나, 그녀의 깊이 있는 영혼은 추호의 흐트러짐도 없이 고고한 뜻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가 고녀에게 자기가 저지른 죄과를 고백하였을 때에 그녀는 조용히 그에게 참회의 길을 권하는 것이다. 십자로 네거리에 나가서 땅에 입을 맞추고 큰 소리로 자신의 죄과를 고백하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성실한 충고에 라스콜리니코프는 몸을 떤다. 마음이 녹는다. 그녀에게서 그녀의 진실된 사랑에서 참 인간의 삶의 의미를 비로소 그는 느낀다. 그녀의 참된 사랑과 아름답고 고상한 인간성이 마침내 라스콜리니코프를 감동시킨 것처럼 언제까지나 나의 마음에도 끊임없는 감격과 희망을 느끼게 해준다. 나의 동역자 그리고 후배들, 그리고 교우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데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죄와 벌 1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민음사(2012)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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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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