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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2월 17일)는 우리 쌍둥이 딸내미들의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생각해보면 앞니가 몇 개씩 빠진 철없는 어린 딸들 손을 잡고 입학식에 참석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 어느새 6년이란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 그들의 꿈같은 십대시절 첫 마디를 매듭짓는 졸업식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학교는 집 가까이에 있다보니 금방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서울에 사시는 아이들의 할머니께선 손녀들의 졸업식에 꼭 참석하겠노라며 아침 일찍 채비하시고 서둘러 우리 집에 오셨다. 나는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졸업식이 열리는 딸들의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날씨는 비교적 쌀쌀했다. 하지만 전날보다는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서인지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는 그다지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매년 수능시험 날이나 졸업식 때가 되면 멀쩡하게 따뜻하던 날씨가 추위로 훼방을 놓곤 했는데, 그날의 날씨는 다행스럽게도 예년의 징크스를 깨는 2월 중순의 평범한 날씨였다.

 

학교 정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꽃 파는 아줌마, 아저씨, 언니, 오빠들이 많았다. 그 분들은 졸업식에 참석한 학부모나 가족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을 보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축하화환을 내밀며 사주기를 권했다. 하지만 워낙에 요즘 경기가 안 좋다보니 사람들은 각자 미리 준비한 아담한 꽃다발을 하나씩 가져왔다. 그러다보니 꽃장사분들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하는 듯한 눈치였다.

 

오전 10시가 되니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식순에 따라 개회사와 국민의례가 순식간에 끝이 나고 졸업장 수여식이 진행되었다. 각종 상장 및 장학금 수여식이 꼬리를 물고서 바로 이어져 진행되었으며 속전속결로 졸업식은 속도를 내고 있었다. 그리곤 곧바로 교장선생님께서 교단에 등장하셔서 ‘학교장 회고사’를 하셨다.

 

교장선생님은 교단의 마이크 앞에 서자마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렇게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기까지는 그 동안 여러분들을 가르쳐주신 여러 선생님들의 노고가 있었습니다. 그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계신 모든 선생님들께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쳐 보세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운동장에 마련된 졸업생들 자리에서는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소리가 작게 들려왔고, 마치 개미 목소리 같은 느낌으로 윙~하니 짧은 옹알거림처럼 지나갔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다시 한 번 학생들에게 말씀하셨다.

 

“목소리가 매우 작게 들리는 것을 보니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별로 없는 모양이죠? 자~, 다시 한 번 크게 ‘선생님 감사 합니다’를 외쳐 보세요!”

 

그제서야 졸업생들 자리에서는 조금 전 보다는 큰 소리로 ‘선생님 감사 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렸다. 마지못해 대답하는 듯 한 졸업생들의 대답소리를 듣고 나자 교장선생님은 또다시 이렇게 말씀 하셨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여러분들을 위해 고생하셨다면, 집에서는 여러분들을 아침마다 밥 먹여 주시고, 보살펴 주신 부모님이 계십니다. 이번에는 부모님들께 ‘부모님 감사합니다.’하고 큰 소리로 외쳐 보세요!”

 

그러자 이번에도 6학년 졸업생들은 역시 내키지 않는다는 듯 모기처럼은 작은 목소리로 ‘부모님 감사 합니다!’하고 마뜩찮게 대답을 했다. 교장 선생님은 졸업생들의 성의 없어 보이는 작은 목소리를 듣고선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졸업생들을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제대로 못 가르치고, 집에서도 부모님들이 제대로 못 가르친 것 같네요. 여러분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선생님과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감사한 마음이 별로 없는 지 목소리가 너무 작네요.”

 

교장 선생님은 왠지 기분이 별로 유쾌하지 못한 듯 서둘러 ‘회고사’를 마치셨다.

 

얼마 후 재학생들이 졸업생 선배들에게 보내는 ‘송사’를 읽는 순서가 돌아왔다. 후배 남학생 아이가 읽어 내려가는 선배들에 대한 송사는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선명했다. 그런데 가만히 듣자하니 졸업생들 자리에서 작지만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졸업식장 주변에서 지켜보던 축하객들 틈에서도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들려왔다.

 

나는 그 상황을 바라보며 기분이 묘해졌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 초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인 ‘그때를 아십니까?’에 대한 기억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후배들이 송사를 읽어 내려가다 울컥 눈물방울을 터뜨리면, 순간 졸업식장은 눈물콧물 바다의 아수라장으로 변했었다. 또 답사를 하며 아쉬움의 눈물을 훔쳤던 순진했던 졸업생 대표의 숙연한 모습도 그 때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 때는 그랬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순박하고 정적(情的)이었던 것 같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 할 것 없이 선생님과 헤어지는 걸 슬퍼했고, 친구들과 이별하는 것을 가슴 아파했었다. 아마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그랬을는지도 모르겠다. 친구끼리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늘 나눠 먹고, 서로 빌려주고, 함께 어울려 놀았던 아름답고 정겨운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딸아이들의 졸업식장에 와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그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비단 아이들만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고, 어른들도 달라져 있었다. 학교 밖 골목은 큼지막한 고급 승용차들이 틈 없이 장악하고 있었고, 운동장 주변에는 졸업식 행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자기 아이들을 식이 진행되고 있는 중에도 자리에서 불러내어 마구 기념사진을 찍어대는 용감한 엄마 아빠들이 있었다. 

 

‘요즘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공부에 지치고 경쟁에 혹사당해서 감정이 메마른 걸까? 공교육의 현장인 학교보다는 자신들을 더욱 확실하고 철저하게 챙기고, 고강도 학습으로 밀착 마크하는(?) 학원선생님들에게 익숙해져서일까?’ 아니라면 일제고사를 비롯한 줄 세우기 시험과 전쟁 같은 사교육 놀음에 지친 아이들이 비로소 반항인지 저항인지를 시도하는 걸까? 나는 운동장 한 편에 서서 곰곰이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졸업식은 10시 40분 쯤 끝이 났다. 우리 집 쌍둥이 딸들은 졸업장을 챙겨들고서 엄마 아빠,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던 운동장으로 나왔다. 나는 아이들과 어머니를 나란히 세우고 졸업기념 사진을 찍었다. 아내와 나도 아이들을 중간에 세워놓고 한 장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운동장은 삼삼오오 가족들,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붐볐었다. 헌데 불과 20~30분 만에 운동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번개처럼 사진을 찍고 어딘가로 황급히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아마도 사람들은 큰 자가용 타고 멋진 곳으로 외식하러 갔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나도 식구들과 간만에 목에 기름칠 한 번 진하게 하려 밖으로 향할 테지만 말이다.

 

학교 밖으로 나오며 뒤를 돌아보니 운동장엔 순식간에 썰렁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눈물도 감동도 없는 졸업식이 치러진 휑한 초등학교 운동장이 등 뒤에 있어 몹시 찜찜했지만, 어느새 살갑게 다가와 아빠의 팔짱을 끼며 웃고 있는 쌍둥이 딸들을 보니 마음이 금세 활짝 피어났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 17일(화) 쌍둥이 딸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다녀와서 쓴 글 입니다.


#졸업식#초등학교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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