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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옥산면 출신 원로작가 문길수(1928년)는 팔순이 넘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먹고 살려고 사진을 배웠다는 그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당에 다니다 사진기술을 배우게 된 동기, 사진관 개업과정에서 겪은 일화도 털어놓을 정도로 대하기가 편하다. 

문길수는 프로사진(직업사진)작가 출신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세계는 서정적이면서도 세련된 레스토랑 커피 한 잔이 생각나는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작품집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누드사진이 그것이다.

군산 사진계의 모태라 할 수 있는 홍건직 선생의 권유로 1963년 창작사진협회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문길수는 한국사진작가협회(사협)를 위시해 국제사진 교류전과 전국 사진 공모전 등을 개최하면서 빛과 렌즈를 통한 자신만의 영상 세계를 꿈꿔온 야심에 찬 작가이기도 하다.

문길수·이경애 부부 결혼사진과 50년 후 금혼식 때 찍은 사진
 문길수·이경애 부부 결혼사진과 50년 후 금혼식 때 찍은 사진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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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작가는 1983년에서 1988까지 사협 군산지부장을 역임 하는 동안 군산지역 사진예술 저변확대를 위해 매년 한·중 사진전을 개최했고, 아마추어 사진 모임 창단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창작활동과 꿈을 이루려고 혼신을 다하고 있다. 

추구하는 장르에 대해 문 작가는 영업사진부터 시작했지만, 회화주의 사진보다 리얼한 모더니즘 사진에 애착이 간다며 렌즈의 본질적인 묘사를 밑바탕으로 현실주의에 철저한 작품을 찍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작품보다 편집에 더 솜씨가 있는 것 같다며 자신을 낮추어 평가한다.  

어렸을 때부터 사진이 꿈이었던 문 작가는 열심히 사진기술을 배워 27세 되던 해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동아사진관’을 개업했다. 1958년에 군산사범학교 앨범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동안 1천 개가 넘는 학교앨범을 제작했다며 지나온 시간을 회상한다. 

문길수의 누드 사진 감상

문길수 작가의 작품집에는 비키니 차림과 누드 작품도 등장하는데, 교회 장로인 그의 작품 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문길수 작가의 작품집에는 비키니 차림과 누드 작품도 등장하는데, 교회 장로인 그의 작품 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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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누드에 부정적인 평을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벗은 몸은 기원전부터 예술로 평가되어오고 있다. 세계적인 걸작 중에 여성의 누드가 다수인 것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유교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우리와 문화차이로 접근이 어려웠을 뿐이라는 얘기다. 

인간의 육체를 사실 그대로 드러낸 누드 사진은 예술이자 작품이다. 여성의 누드 이상 아름답고 고귀한 작품이 또 있겠는가. 우리들 어머니나 누드모델이나 모두 여성인데, 배고픈 아기가 가장 먼저 찾는 게 어머니 젖인 것을 생각하면, 사진에 보이는 유방은 아기를 생산하는 작용과 더불어 위대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림도 그렇지만, 누드사진은 감상하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하다. 처음 대했을 때 우선 정복하고 싶은 마음보다 추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가야지 성욕이 앞선다면 누드의 진정한 의미는 사라지고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벗은 몸은 아름답다. 해서 성을 앞세우지 말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접근해야 누드의 진정한 가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벗은 몸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피조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칠순이 다 된 나이에 남들이 부담스러워하는 누드에 어렵지 않게 접근한 문길수 작가의 정신과 작품 욕심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문길수의 사진 활동

사협 군산지부장 시절, 대만을 방문, 중화민국 대만성 섭영학회 낭정산 이사장과 함께
 사협 군산지부장 시절, 대만을 방문, 중화민국 대만성 섭영학회 낭정산 이사장과 함께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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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길수의 데뷔작은 1964년 관광협회가 주최한 공모전에서 선유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제목: 관광선유도)이었는데 준 특선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는 1968년 9월 군산 JC 홍보위원장 시절 일본 나고야(名古屋) JC 및 다른 지역 단체들과도 한·일 사진교류전과 촬영대회를 열었으며, 1972년 11월 군산 김다방에서 제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일본, 대만, 한국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문 작가의 사진 활동은 14회의 개인전과 4권의 사진집 발간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특히 여권 발급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던 암흑기에 오사카(大阪), 센다이(仙台) 등 일본에서 4회, 대만에서 3회 개인전은 놀라운 경력이다. 

그는 일본·대만의 개인전을 바탕으로 한국사진작가협회 군산지부장 6년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한·중 사진전을 개최했다. 지방의 지부가 ‘중화민국 대만성 攝影(촬영)학회’(이사장 채곤황)와 한·중전을 개설하고 대만 신죽시와도 결연을 맺고 합동교류전을 개최했다는 것은 외교적인 차원에서도 대단한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 

문 작가는 1986년 6년 임기를 마치고 사협 군산 지부장에서 물러나면서 후배들이 한·중전과 교류전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듬해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며 무척 애석해했다.

국제 와이즈 맨 군산클럽과 JC창립 멤버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오는 문 작가는 휴지를 보면 줍는 버릇이 있는 걸 보면 봉사정신을 타고난 것 같다며 웃는다. 그래서인지 사진 후배들도 근면하고, 성실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분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50년 넘게 운영해오던 ‘동아사진관’을 큰아들에게 물려준 문길수는 지금도 월례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데, 사진의 예술적 가치와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자전거를 만년 자가용으로 이용하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원로작가 문길수와의 인터뷰

군산 사진역사의 일부라고 표현해야 할까? 문 작가 아파트에는 그의 발자국과도 같은 사진관련 자료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다.
 군산 사진역사의 일부라고 표현해야 할까? 문 작가 아파트에는 그의 발자국과도 같은 사진관련 자료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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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고 언제 시작했는지요.
"당연히 먹고 살려고 사진을 시작했죠. 17세에 사진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기술자였던 사람이 일본인이 사진관을 함께 하자고 한다고 해서 돈을 어렵게 구해 주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사기를 당한 겁니다. 그래서 영동 입구에 있는 ‘안동사진관’에서 사진 기술을 익혔어요. 훗날 개업해서는 서울에서 유명했던 ‘란’ 사진관에 가서 배우기도 했죠."

- 저는 문길수 작가님을 어느 고등학교 앨범(1962년)에 나온 사진을 보고 알았는데, 모습이 참 멋지더군요.  
"1962년이면 30대 초반이니 한참 멋을 부리고 다닐 때군요. 앨범 얘기가 나왔으니 생각나는데 군산에서 저처럼 앨범을 많이 제작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시내에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24개 정도 되는데 그동안 만든 앨범이 1천 개가 넘는 것 같습니다. 바쁠 때는 기사를 3명씩 두었으니까요. 

요즘도 시내에 돌아다니다 보면 모르는 사람들이 인사를 할 때가 있어요. 수학여행을 함께  가서 그런지 꼭 동창을 만난 것처럼 반갑게 대합니다. 그런데 70이 넘은 분들이 인사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몇 번 경험한 뒤로는 항상 인사할 준비를 하고 다니지요. 답례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 작품집을 보면 서정적이면서도 인물사진이 주를 이루더군요.
"저는 아마추어 사진의 길목을 열어주신 홍건직 선생, 인물과 거리사진을 즐기시던 채원석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특히 채 선생님은 복잡한 거리와 다양한 인물 사진을 통해 우리의 삶을 리얼하게 보여주셨거든요. 아마 그분을 따라 배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포토샵을 공부하고 있으니·· 그래서 제 노하우는 사진촬영보다 편집인 것 같아요."

- 앞으로 개인전이나 사진집을 더 발간할 계획이 있으신지요. 
"요즘 사람들은 글만 들어가는 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어 사진이 들어가는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걱정입니다.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내자(아내)가 고생을 했는데, 돈이 들어가는 거라서 눈치도 보이고··허허." 

- 요즘은 무엇으로 소일하시는지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출사를 나가야 하는데 워낙 시간이 없어요. 대신 카메라를 손에 쥐고 다닙니다. 일요일에 교회에 다녀오면 빠지지 않고 글(서예)을 배우러 갑니다. 먹을 가는 것도 그렇고, 붓글씨 쓰기가 건강에 무척 좋은 것 같아요. 묵향은 맡으면 맡을수록 마음이 편해져서 좋거든요."

- 혹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그렇잖아도 하고 싶었던 얘긴데요. 보시다시피 수많은 사진 원판과 기록물들이 안방과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후배들 가정도 비슷하리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작은 기념관이라도 지어 보관하는 게 꿈입니다. 타 도시보다 일찍 정착한 군산 사진예술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선배들 자료도 함께요. 몇 년 전부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보낼 예정입니다. 그게 나이 먹은 사람이 할 일 아니겠어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꿈 이루시고, 내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문길수, #누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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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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