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의 작가 스테프니 메이어의 2008년 작품 <호스트>에는 독특한 형태의 외계생명체가 등장한다. 소울(soul)이라는 이름의 이 생명체는 성인남성의 손바닥보다도 작은 크기다.
은색으로 밝게 빛나는 이 소울에는 천여 개에 달하는 얇은 깃털 같은 부착물이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소울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여러 행성을 옮겨다니면서 다른 생명체에 기생해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쩌면 '기생'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소울은 다른 생명체의 몸에 들어오는 순간 그 생명체의 모든 것을 장악한다. 그리고 소울의 의지와 소명대로 원래 생명체의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다.
<호스트>에서는 이런 소울에게 지구가 점령당한다. 인간의 몸에 소울을 강제로 삽입하는 것이다. 머리 뒤쪽을 수술용 칼로 절제한 후에 그 안쪽으로 소울을 넣는다. 그러면 소울은 인간의 뇌에 달라붙어서 해당 인간의 기억 및 언어능력, 사고력 등 모든 데이터베이스를 습득한 후에 그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소울은 이런 인간의 육체를 호스트(host)라고 부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울에게 지배당한 호스트는 원래 자신의 자아와 영혼을 상실한다. 눈동자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보통 인간과 전혀 다를바가 없다. 인간들도 그렇게 조금씩 소울에게 잠식당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인간이 소울에게 지배당한 이후다. 살아있는(?) 인간이라고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가 된다.
소울이 지구를 점령한 이유는 그들이 전쟁을 좋아해서 또는 지구를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소울이 지구로 옮겨오기 전에, 그들은 지구를 생각할 때면 흥분보다는 두려움이 앞서 있었다. 지구에는 냉담하고 폭력적이며,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인 '인간'이라는 종족이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지구를 침략한 외계생명체 '소울'
아름다운 행성인 지구를 인간이 망가뜨리고 있다. 보다못해 소울들은 인간을 대신해서 지구를 차지하기로 결정한다. 소울은 항상 친절하고 솔직하며 남을 의심하지 않는다. 욕심도 없고 언제나 타인과 종족을 우선시한다.
그들이 지구를 차지하자 지구는 빠른 속도로 조화를 되찾는다.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남을 착취하는 일도 없고, 사기를 쳐서 한몫 챙기려는 사건도 터지지 않는다. 총과 칼로 타인의 재산을 강탈하지도 않는다.
이기려고 경쟁하는 일도 없고, 각자가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한 만큼 물자를 가져간다. 이상적이지만 약간 비현실적인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와 정신을 빼앗기지 않고 숨어있는 몇몇의 인간들은 이런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독특한 형태의 외계인이 지구를 침략한다는 배경으로만 보자면 <호스트>를 판타지 SF 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의 전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호스트>의 주인공은 17세의 소녀 멜라니다. 그녀는 지구가 소울에게 점령당한 이후에 인간저항군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말이 저항군이지 이들의 활동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저항보다는 소울에게 발각되지 않고 목숨을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먹을 것을 찾아서 남의 집을 무단침입해야 하고, 소울에게 지배당한 집주인에게 들키기 전에 멀리 도망쳐야 한다. 소울이 인간들의 의약품을 대부분 폐기처분했기 때문에 심각한 부상이 생기거나 병에 걸리면 속수무책이다.
정체가 탄로나면 끌려가서 강제로 소울이 자신의 몸으로 삽입된다. 멜라니는 자신의 동생 제이미를 돌보며 살아가던 어느날, 역시 아직 지배당하지 않은 청년 제러드를 우연히 만난다. 그리고 그와 사랑에 빠지지만 집요한 소울들의 수색과 추적은 그녀를 그냥 두지 않는다. 멜라니도 추격당하던 끝에 정신을 잃고 강제로 소울을 자신의 몸에 받아 들인다.
인간저항군의 몸으로 들어온 소울
이때부터 멜라니와 소울의 전투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호스트는 소울이 삽입되면서 자아를 잃는다. 강인한 멜라니의 영혼은 소울이 들어온 이후에도 남아서 소울과 대화하고 티격태격하며 갈등한다. 멜라니를 물리치지 못하는 소울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서 자신의 소명을 뒤로 하고 제러드와 제이미를 찾아서 긴 방황을 시작한다.
작품의 배경은 SF의 일종이지만, 도입부를 지나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하나의 몸에 들어와있는 두 개의 영혼, 멜라니와 소울은 싸우고 논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의지한다. 공존할 수 없을 듯이 보이던 두 영혼은 서로를 조금씩 인정하게 된다.
소울은 육체를 빼앗긴 멜라니의 입장을 헤아리고, 멜라니는 타인의 몸에 기생해야 살아갈 수 있는 소울의 처지를 이해한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하나의 몸에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더라도, 제러드를 만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울에게 지배당한 멜라니를 보면 제러드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제러드를 보면 소울과 멜라니는 각각 어떻게 감정을 드러낼까.
이야기의 초점은 상당부분 여기에 맞춰진다. 저자 스테프니 메이어는 <트와일라잇>에서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진 여인을 그렸던 것처럼, 이번에는 외계생명과 인간의 교감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저자가 늘어놓는 독특한 외계생명체의 역사와 특징, 지구 밖의 수많은 행성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하지만 그보다는 공존하는 두 영혼의 감정과 그를 바라보는 인간들의 심리에 더욱 관심이 가게 된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종족이 다르다고 해서 그런 심정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지구에는 파괴적인 인간이 가득차 있지만, 인간들에게는 아직 순수한 감정이 남아있기에 이 행성에도 희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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