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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경제연구소에서 지난 2월 11일 CEO Information 691호로 '녹색뉴딜사업의 재조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21페이지 CEO 보고서를 분석하게 되었다. 먼저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내 소개를 하면, 나도 3년 동안 현대그룹에서 CEO Brief라는 형태의 보고서를 작성하였고, 한동안은 이런 보고서의 기획과 편집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아니면 "어차피 기업 입장"이라고 폄하할 생각은 없다.

일단 이 보고서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1.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최근 녹색뉴딜은, 어지간한 선진국은 다 하는 거다.
2. 이명박 정부의 녹색뉴딜은, 좋은 거다.
3. 쓸데없이 여기에 토 달 생각하지 말고, 그냥 따라라
  ("소모적인 논쟁은 자제해야 할 시점", 15페이지 중)

어차피 이 보고서는 이런 뻔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정부가 하는 얘기들과는 약간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어서 이걸 좀 짚어볼까 한다.

보고서 "녹색뉴딜=취로사업, 청년고용과는 무관"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전담할 '4대강 살리기 기획단'이 5일 과천청사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전담할 '4대강 살리기 기획단'이 5일 과천청사에서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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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부는 녹색뉴딜을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경제회생 정책 및 고용정책의 중요한 한 축으로 삼고 있지만, 삼성의 보고서는 이게 '청년 고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 보고서는 녹색뉴딜을 일종의 '취로사업'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것이 사회안전망이라고 말한다. 보고서는 이 경우에 생겨나는 일자리는 불안정하며, 임시직인 동시에 일용직이 대부분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즉 어차피 저소득층인 건설부문의 노무자들에게 이 사업의 혜택이 가는 것이므로, 한국형 뉴딜 사업은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고, 그래서 '사회 안전망 역할'을 수행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이건 약간의 논리적 문제이기는 한데, '역할'이라는 단어를 포함해서 약간의 뉘앙스를 주기는 했지만, 취로사업이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것은 좀 오버이기는 하다(재정정책과 관련된 복지정책의 범위에 대해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얘기이므로 길게 논의하지는 않겠다).

먼저 얘기해야 하는 것은, 이 대책이 근본적으로는 지금 시급히 문제가 되는 '청년 고용'(특히 80% 이상의 대학진학률을 기록하고 있는 정말로 시급한 20대 고용대책)과는 엇박자가 난다는 점이다. 물론 삼성 측에서도 이런 점들은 충분히 알고 있는 듯하고, 그래서 중장기적으로 이러한 한시적 일자리가 '그린 칼라' 형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적어놓기는 했다.

하지만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지금 그린뉴딜의 주축사업이 되는 '4대강 정비사업'의 경우, 풍력 발전이나 태양광 발전의 경우와 같이 건설단계가 아니라 '운영' 단계에서도 계속해서 고용이 일부분 창출될 수 있는 운영형 설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소소한 점들을 제외하면,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대체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경제학은 분류 기준이나 항목으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금액으로 얘기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이 보고서는 정부가 얘기하는 녹색성장 혹은 녹색뉴딜 등이 공히 가지고 있는 함정에 같이 빠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기간 중 핵심 사업과 연계 사업을 포함해서 총 50조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사업계획이 잡혀있는데, 이중 핵심사업만을 추리면 대략 40조원 정도의 사업이 된다. 그 금액과 비율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핵심 및 연계사업의 재정소요 및 일자리 창출규모
 핵심 및 연계사업의 재정소요 및 일자리 창출규모
ⓒ 기획재정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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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녹색뉴딜'엔 '녹색사업' 아닌 것만 60% 이상

여기에서 사실상 녹색사업으로 분류될 수 없고, 사회적 논란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 생태계 파괴사업인 '4대강 살리기'가 차지하는 비율이 36.76%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녹색사업 여부자체가 논란 중인 녹색교통망 확충이 24.51%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를 더하면, 중심사업의 68.2%가 된다. 이에 비하여 실제 탈탄 경제(de-carbonized economy)라고 할 수 있는 대체에너지에 대한 지원금은 5년간 2조원으로, 전체의 5.21%에 불과하다.

물론 이 사업들이 그린뉴딜이든 녹색성장이든 이런 타이틀을 붙이지 않았다면 없었을 사업인가? 그렇지 않다. 어차피 오바마의 당선으로 미국은 기후변화협약의 교토의정서 체계에 복귀하거나, 아니면 발리 로드맵에 의한 2단계 감축계획에 '감축공약(commitment)'을 제시하며 참여하게 될 것이 아닌가? 기후변화협약에 대비한 기술투자와 설비투자 그리고 보조금 지급은 하기로 되어 있는 일이고, 또 규모도 점점 높일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여기에서 정책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추가성(additionality)이라고 할 수 있다. 기준선(baseline)이라는 정책적 출발점에서 '이로 인하여 새로 생겨난 일'을 추가성이라고 부른다면, 녹색뉴딜에서는 어차피 진행되는 사업들에다가 한반도 대운하의 준비사업인 '4대강 살리기'가 거의 유일하게 추가성을 가지고 있는 일들이고, 나머지는 이 일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진행될 일에 대해서 대통령용 보고서의 껍데기만 바꿔 단, 전형적인 '호지키스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걸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모를까? 모를 리가 없다. 보고서 여기저기에 있는 조심스러운 문구들에서도 느낀다. "좋은 거니까 제발 비판하지 말아 달라"라는 것이 보고서 뒷면에 흐르고 있는 잠재적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에버랜드의 토목버전 보고서'가 되지 않으려면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 내걸린 삼성 깃발.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 내걸린 삼성 깃발.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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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여기에 이 보고서가 간과하고 있는 사항이 또 하나 있는데, 이것은 2008년까지 한국이 통합재정수지가 흑자를 유지하기 때문에 지금의 50조원가량의 추가 재정지출이 한국 정도되는 재무 건전성 국가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 점이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현 정부는 감세를 기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세입을 과감히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중이며, 종부세를 비롯한 지금의 재무 안전성의 근간이 되는 기초를 흔드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금년도의 세입세출의 추산이 4%의 경제성장률을 기초로 작성되었는데, 정부 성장률 예상치가 이미 마이너스 2%로 조정된 지금, 실제 2009년도의 세입에서 얼마나 차질이 생길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런 적자재정이 얼마나 계속될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누적 재정적자의 부담으로 인해서 국민경제에 얼마나 부담이 될지, 예측도 하기 어려운 현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정부에서의 균형재정 기조가 튼튼하니까, 몇 십조원은 그냥 정부 돈 꺼내 써도 별 상관없어 보인다는 분석은 좀 무책임해 보인다.

물론 기계적으로 기업 입장만 반영한다면, 정부야 있는 대로 기업에게 퍼주고, 재정적자로 도산을 하든 말든 알바야 없지만, 삼성경제연구소가 그래도 연구소라고 의견을 낼 때에는 기계적으로 '자본으로서의 삼성'의 입장만을 반영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나. 공익 그리고 국민경제에 대해서 국민들과 함께 고민해보겠다는 것이 연구소의 설립취지이고, 운영취지일 것이다. 이런 정도의 상호 이해는 가지고 있으니까,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가 전경련 보고서보다는 더 국민들에게 신뢰도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자, 정리해보자. 이름이 그린 뉴딜이든 녹색성장이든, 전형적인 탈탄 정책 5% 정도에 60% 이상의 반 생태적 토목사업을 끼워 넣어서, 녹색포장지로 사용한 것이 현재의 그린뉴딜 정책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반 생태 사업이 되는 것이고, 국토생태의 위기를 부추기는 사업이 되는 것이다. 국토 생태라는 시각으로 보면, 온통 강을 시멘트로 덮어버리고, 제방을 몇 겹으로 높이겠다는 지금의 사업은 하천의 시각으로 보면 살인마이다. 이런 살인마가 가진 약간의 미덕만 보고 '선인'이라는 평을 해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는 그 일을 하고 있다. 아무리 '그린'이고 아무리 '뉴딜'이라는 이름을 달아도, 반 생태 사업은 반 생태 사업이고, 경제성이 없는 사업은 경제성이 없는 사업이고, 막아야 할 사업은 막아야 하는 것이다.

언제부터 기후변화협약에 대비한 정책들이 이렇게 토목 사업의 포장지로 전락했는가. 그 본질은 아무리 삼성에서 이게 좋은 거라고 얘기해도 바뀌지 않는다. 정말로 삼성이 이렇게 '그린' 사업을 "좋은 것"으로 이해한다면, 온실가스 감축목표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라. 녹색은 좋은 것이라고 나서서 시멘트 사업을 두둔한다면, 삼성 자체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부터 자발적 협약 형태로라도 제시하시기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것을 에버랜드의 토목 버전 보고서로 이해할 수밖에 없고, 당분간 삼성에 대해 반 생태기업 운용이 경영기획의 목표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우석훈씨는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입니다.



태그:#녹색뉴딜 재조명, #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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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제, 환경-자원 문제에 대한 전문가. 경제학 전공. 기후변화협약 UNFCCC 기술이전 전문가그룹 아시아지역 대표 이사 현대환경연구원 연구위원, 에너지관리공단 팀장 역임 한국생태경제연구회 창립회원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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