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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해 동안 한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인 문화산업은 뮤지컬이 아닐까. 전용극장이 들어서는가 하면 수십 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관람권도 동이 나기 일쑤이다. 보지는 않아도 유명 뮤지컬 몇 편쯤은 알고 있어야 문화인 대우를 받는다.

산업의 이름 뒤에는 그늘도 깊다. 제작 편 수는 늘었어도 흥행이 되는 주제에 편중되며 뮤지컬은 어느덧 전문 배우, 전문 극단의 전유물이 됐다. 여기에 당당히 반기를 든 사람들이 있다.

문화패의 쇠락에 도전장을 내다

'새 세상을 날고 싶은 연'의 노래 연습 모습.
 '새 세상을 날고 싶은 연'의 노래 연습 모습.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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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가게가 밀집한 천안시 성정동 가구 거리의 한 건물 지하.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눈이 내리던 지난 19일 스무평 지하 공간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노래와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가족과 보내는 저녁 시간 대신 노래와 춤 익히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은 천안지역 문화패 '새 세상을 날고 싶은 연'(연)의 단원들. 문화패 '연'은 오는 28일 백석동 하늘중앙교회 1층 비전홀에서 공식적인 첫 번째 창단 공연을 갖는다.

창단 공연 작품은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장진 원작의 뮤지컬 <아름다운 사인>. 직장인과 주부, 학생 등 평범한 시민들로 구성된 문화패 '연'은 창단 공연을 앞두고 2월부터 매일 연습을 진행하고 있다.

"시간이 있는 단원들은 낮부터도 연습을 해요. 본격적인 연습은 학원과 회사 등 직장을 다니는 단원들이 퇴근한 뒤부터 시작하죠. 공연이 임박한 요즘은 연습실에서 모여 저녁밥을 해 먹고 자정이나 새벽까지 연습을 합니다."

문화패 '연'의 대표 조혜경(37·여)씨의 말이다. 문화패 '연'의 단초는 작년 3월 싹텄다. 전농충남도연맹, 민주노동당 아산시위원회 등 정당과 사회단체에서 근무한 조혜경씨가 일을 쉬던 중 지인 두 명에게 문화패 결성을 제안했다. 조씨는 대학에서 연극동아리 활동을, 다른 두 명도 탈패 등 문화활동 경험이 있었던 탓에 이견없이 의기투합했다.

"한때는 노동조합이나 지역마다 노래패나 풍물패 등 문화패가 여럿 있었죠. 지금은 점점 줄어들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 빈 자리는 소비의 문화, 관람의 문화가 채웠죠. 대학 시절 활동에 대한 향수도 있었지만 더 이상 문화패의 소멸을 지켜 볼 수 없다는 오기가 발동했지요."

도원결의는 아니더라도 세 명이 뜻을 뭉쳤지만 문화패 결성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난관은 단원의 확보. 노래패 등 과거 문화패 활동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수소문하며 단원을 모집했다.

두 번째 난관은 연습공간. 다른 문화단체 사무실을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사용하던 중 뜻밖의 낭보가 전해졌다. 성정동 가구거리에 소재한 진보신당 충남도당이 건물의 지하공간을 연습공간으로 무상 대여해줬다. 당사를 드나들며 '연' 단원들의 연습 모습을 접한 몇몇 당원들이 단원으로 합류하는 등 일석이조의 효과가 나타났다.

촛불문화제도 단원 확충에 한몫

'새 세상을 날고 싶은 연'의 포스터.
 '새 세상을 날고 싶은 연'의 포스터.
ⓒ 윤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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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확충에는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도 한몫했다. 문화패 '연'은 쇠고기 수입반대의 뜨거운 정국에서 작년 5월 천안을 비롯해 아산과 당진 등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곳마다 찾아가 율동을 선보였다.

문화패 '연'의 가장 막내 단원인 김초롱(20·여)씨는 작년 5월 고3의 신분으로 천안의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다가 '연' 단원들의 율동을 보고 단원 가입을 결심했다. 싱글맘인 이행찬(37·여)씨도 촛불문화제가 인연이 되어 단원이 된 경우.

"촛불문화제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며 진보신당에 가입했고 '연'의 단원까지 됐죠. 문화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은 없지만 서른 중반을 지나며 한번쯤 해보고 싶었습니다."

행찬씨의 결합으로 단원을 7명까지 부풀린 '연'은 그동안 틈틈이 소규모 공연을 가졌다. 지역에서 열리는 FTA 반대 집회나 민주노총 충남지역본부 주최의 노동자문화제 등에 참가해 풍물공연을 선보였다. 작년 12월부터는 첫 창단공연으로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다.

문화패 '연'이 창단공연으로 선택한 장진 원작의 뮤지컬 <아름다운 사인(死因)>은 다양한 사연을 안고 자살한 여섯 명의 여자들이 같은 날, 검시실에 모여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는 줄거리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과 애환을 담고 있다.

연출을 맡은 조혜경 대표는 "단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 여성 이야기에 더 공감이 간 것 같다"고 전했다.

공연준비가 수월하지는 않았다. 7명의 단원만으로 1시간 30분이 넘는 뮤지컬을 소화하기란 애초 무리. 그러나 필요는 행동을 낳는 법. 신바람 등 지역의 다른 문화패 단원들이 후원자를 자청하고 나섰다.

조명과 음향, 의상 등 전문 기술이 필요한 부분은 단원들 모두가 인맥을 총동원해 봉사이다시피 떠맡겼다. 연습의 강행군 속에 단원들은 공연 경비를 마련하느라 어려운 형편에도 30만원씩을 갹출했다. 단원들의 남편이나 가족들은 밤마다 연습장을 찾아 야식을 제공했다.

'연'의 탄생부터 줄곧 같이 한 김선(37·여)씨는 "창단공연을 갖는다는 사실도 설레이지만 매일 얼굴을 맞대는 연습으로 단원들이라는 새로운 가족을 얻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이행찬씨는 "'아름다운 사인'의 대본을 받았을 때 내 얘기 같아 한참을 울었다"며 "연습 기간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조혜경 대표는 "부족하고 어설프더라도 우리의 공연이 또 다른 사람들을 문화의 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패 '연'의 문이 항상 열려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안지역 주간신문인 천안신문 515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윤평호 기자의 블로그 주소는 http://blog.naver.com/cnsisa



태그:#새 세상을 날고 싶은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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