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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담은 책은 과거의 것을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현실에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경우가 있다. 정구선의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도 그런 책이다.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는 조선시대에 살던 선비들, 특히 ‘의’가 아니라고 판단되면 왕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왕을 꾸짖기까지 한 ‘반골’ 선비들의 삶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이 현실과 닿아있고 심지어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조식’과 ‘장현광’의 삶을 통해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조식은 조선 전기의 유학자였다. “경상도의 상도에는 이황이 있어 학문을 숭상했고, 하도에는 조식이 있어 절의를 높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성품과 학문은 대단했다. 당시 조선을 다스리던 명종도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식에게 벼슬을 주려고 하나 조식은 뜻에 따르지 않는다. 다들 벼슬을 하려고 혈안이 됐던 시절에 조식은 관직을 내린 것부터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뿐인가. 조식은 사직의 상소를 쓰면서 조정과 왕을 비판한다. “전하의 국사가 이미 잘못되고 나라의 근본은 망해 천의가 이미 떠나갔고 인심도 떠나갔습니다… 소관은 아래에서 시시덕거리며 주색이나 즐기고, 대관은 위에서 어물거리며 오직 재물만 불립니다… 자전께서는 생각이 깊으시지만 깊숙한 궁중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으시고… ”등으로 신하를 비판하더니 기어코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를 언급하고 왕까지 꾸짖는다.

 

사대부가 권력이 있다고 하지만, 조선은 왕이 다스리던 나라였다. 왕권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게다가 이때는 문정왕후가 권력을 독점해 왕권의 힘이 하늘을 찌를 때였다. 그런데 조식은 왕에게 잘 보이려고 하기는커녕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었을 터다. 왜 그랬던 것일까? 소신 때문이 그런 것이 아닐까?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는 인조가 다스리던 시대의 장현광도 주목하고 있다. 장현광의 조선 후기의 대학자로 특히 <주역>에 조예가 깊은 걸로 유명했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인조와 그 세력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인조반정 직후의 민심을 회유하기 위해 그를 초빙하려 했으나 장현광은 그 뜻을 따르지 않고 시골로 간다.

 

그렇다면 장현광은 나라의 정치를 뒤로 하고 학문에만 전념한 것일까? 아니다. 그는 우국충정에서 우러나온 상소를 여러 차례 올렸는데, 그 내용이 뜻밖인 것이 많다. 감히 이런 상소를 쓸 수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내용이 날카롭기 때문이다.

 

“전하께서 반정으로 보위에 오르신 지 지금 11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모당에서 들으신 모유와 경연에서의 강론, 그리고 대소인들이 소장으로 진달한 것들 가운데 격언과 지론으로서 약석이 될 만한 것이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매양 듣고 답할 즈음에 반드시 ‘깊이 생각하겠다’하셨고 반드시 ‘가슴에 간직하여 잊지 않겠다’하셨는데… 몸소 실천하신 바가 있습니까? 흐르는 물처럼 간하는 말을 받아 들이고 공이 굴러가듯이 말을 듣는 것은 바로 제왕의 덕인데, 전하께서는 과연 실지로 이러한 덕이 있습니까?”

 

위의 장현광의 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조반정 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인조가 무엇을 했는가, 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왕이 잘못했다면 신하가 비판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교과서’적인 말이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장현광은 그렇게 했다. 진심으로 나라를 생각하기에 한 말일 것이다.

 

조식과 장현광, 그리고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에서 언급하는 또 다른 조선의 선비들을 보고 있노라면 오늘날의 정치인과 지식인을 떠올리게 된다. 지도자가 잘못한다고 생각할 때, 비판하는 사람이 있던가. 민심과 다른 길을 걷는 나라를 향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는 조선의 선비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에 담겨진 메시지는 과거를 향하지 않는다. ‘오늘’의 어떤 사람들을 향해 있다. 따끔한 일침으로 말이다. 돈과 명예, 권력을 탐하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하기만 하다.


조선의 발칙한 지식인을 만나다 - 왕을 꾸짖은 반골 선비들

정구선 지음, 애플북스(2009)


태그:#조식, #장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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