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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탐사보도> 이 책은  탐사보도의 전범이면서 교과서와 같다.
<세상을 바꾼 탐사보도>이 책은 탐사보도의 전범이면서 교과서와 같다. ⓒ 세종연구원

탐사보도의 전범으로 알려진 시모어 마이런 허시의 '베트남 전쟁의 밀라이 학살과 그 휴우증에 관한 보고'가 번역돼 출판됐다.

 

김석 KBS기자의 <세상을 바꾼 탐사보도-밀라이 학살과 그 후유증에 관한 보고->(세종연구원, 2009년 1월)는 탐사보도의 살아 있는 전설 시모어 마이런 허시가 70년도 쓴 '밀라이 학살과 그 휴우증 보고'를 조밀하게 번역했다.

 

2003년을 전후해 탐사저널리즘에 대한 국내 관심이 지속되고 있는 이때 이 책은 사료 가치만으로도 출간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이 책은 본격적인 의미에서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탐사저널리즘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0년 2월 허시가 처음 영어 원서를 출간한 시기만을 따져 보면 분명한 고전이다. 하지만 서가에 먼지만 쌓인 고전은 절대 아니다. 허시 기자가 지금도 여전히 현역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고, 지금도 정규 전투원에 의한 양민학살이 발생할 때마다 으레 '제2의 밀라이 학살'이라고 부르는 '밀라이'의 상징성이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허시 기자와 함께 이 책은 현대 미국 탐사보도의 살아 있는 교과서로 통한다. 밀라이 학살사건을 추적 보도할 당시 시모어 허시 기자는 고작 30대 초반이었다. 그리고 무명의 프리랜서 기자였다. 하지만 허시는 누구나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집요한 면이 많았다. 탐사 취재를 통해 자칫 은폐될 뻔한 민간인 학살의 전모를 낱낱이 밝힘으로써 미국에 가장 권위 있는 언론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허시의 밀라이 학살 보도는 미국 탐사저널리즘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밀라이 대학살은 68년 3월 16일 아침에 일어났다. 그 마을에 베트공이 있었을 가능성은 낮았다. 그날 아침 베트남 말라이 마을에서 캘리 중위가 이끈 미국 보병 찰리 중대가 베트남 민간인 400여 명을 학살한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역사에 묻힐 뻔했던 이 사건은 당시 종군기자였던 '로널드 해벌'이라는 병사가 베트남에서 귀국 후 사건의 전모를 미 의회 의원들에게 보내면서 베일이 하나 둘 벗겨졌다.

 

밀라이 학살사건은 AP통신이 첫 보도했다. 허시 기자가 1보를 쓰기 3개월 전인 69년 9월 6일 캘리 중위가 조사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100단어 미만으로 짧게 보도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이 사건은 미국 군부 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 민간인 학살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허시 기자는 8만 킬로의 비행과 전 미군 병사들과 50여 차례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를 종합해 5편의 장문의 기사를 작성했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그의 기사를 받아 주지 않았다. 허시는 친구와 '디스패체 뉴스서비스'라는 뉴스배급사를 설립해 기사를 배급했다. 미국의 30여 개 신문, 잡지에 동시에 실렸고, 미국에 반전의 물결이 몰아쳤고 마침내 허시의 기사는 미군의 베트남 철수와 종전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됐다.

 

허시가 사건의 진실을 하나하나 추적하는 이 보고서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긴박감이 넘치고 전투와 학살 현장을 마치 눈앞에서 보듯이 구체적인 정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꽝응아이에서 병사들은 실전에 대한 이런 농담도 하고 있었다. '죽은 것과 백인이 아닌 것은 모두 베트공이다." -본문 중에서-

 

허시 기자는 밀라이보도 이외에도 캄보디아에 대한 비밀폭격, CIA의 불법적인 국내사찰, 워터게이트 보도, 백악관 비밀도청, CIA와 헨리 키신저의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 개입 등 수많은 특종을 해냈다.

 

추천의 글을 쓴 김용진(전 탐사보도 팀장) KBS기자는 "막 움트고 있는 한국 탐사보도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하나의 원천이자 영감이 되고, 또 어처구니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죽어나가는 수많은 희생자를 그저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집단적 의식마비 현상에 하나의 각성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책을 번역한 김석 기자는 "매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포커스>의 인연으로 시모어 허시를 처음 접한 후 감동을 받았다"면서 "이런 감동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번역 작업에 도전하게 됐다"고 밝혔다.

 

밀라이 학살 탐사기사를 쓴 시모어 마이런 허시는 37년 시카고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시카고대학교를 졸업했고, 시카고의 <시티뉴스뷰로>의 경찰 담당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이후 UPI와 AP통신을 거쳐 <뉴욕타임스> 기자로 활동했고, 1979년 <뉴욕타임스>를 떠나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해 왔다. 그의 저서 <지휘계통>은 국내에서도 번역됐고, 지금까지 9권의 책을 펴냈다.

 

허시의 '밀라이 학살 보고서'를 번역한 김석 KBS기자는 2001년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KBS보도국에 입사해 사회부를 거쳐 2004년 8월부터 2006년까지 미디어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포커스> 기자로 활동했다. 2006년 11월부터 1년 동안 매체비평 전문지 <미디어 오늘>에 영화와 미디어에 관한 칼럼을 썼다. 2008년 1월부터 매체비평 전문 인터넷언론 <미디어스>에 '미디어 읽기'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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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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