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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전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청소년단체 활동가들이 농성돌입 기자회견 열고 일제고사 폐지와 일제고사로 인한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23일 오전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청소년단체 활동가들이 농성돌입 기자회견 열고 일제고사 폐지와 일제고사로 인한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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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작의 비결', 연출 '교과부', 조연출 '전북도교육청', 극본 '임실교육청', 엑스트라 '학교', 배포 책임 '교과부', 상영 '신문과 방송'.

우리나라의 교육시계를 70년대로 돌려놓은 전북 임실 판 '조작의 비결'. 이 막장드라마는 학교, 임실교육청, 도교육청 등의 보고 과정에서 4단계에 걸쳐 '원천 조작' 또는 '조작 방조'행위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안병만 교과부장관은 지난 16일 "전북 임실지역 초6 학생은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전국 최저"라는 내용의 일제고사(학업성취도 평가) 분석 결과를 내놨다. 영어의 경우 '보통학력 이상'이 75.1%, 기초학력이 24.9%인 반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단 한명도 없어 '0%'라는 내용이었다. 교과부는 이런 결과를 놓고 '영어교육과 방과 후 학교 강화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최근 임실지역의 이 같은 수치가 원천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물론 '보통학력 이상'이나 '기초학력' 단계의 학생까지도 데이터가 '조작'됐다는 것이다.

'조작의 비결'... 1단계 임실교육청, 2단계 일선학교

 지난 19일 전북지역교육시민단체가 전북도교육청 앞에서 진행한 일제고사 조작 관련 기자회견 모습.
 지난 19일 전북지역교육시민단체가 전북도교육청 앞에서 진행한 일제고사 조작 관련 기자회견 모습.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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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드러난 전북도교육청의 감사 결과와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임실교육청 장학사는 특별한 조사 없이 제멋대로 수치를 기록해 도교육청에 보고했다. 이것이 바로 '1단계 조작'이다.

임실교육청은 최근까지도 지난 1월 6일에 이 지역 15개 초등학교에 전화를 걸어 결과를 확인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지난 19일 이 지역 4개 초등학교를 무작위로 뽑아 확인한 결과 3개 초등학교 교감, 교사는 "전화를 받은 바 없다"고 했고,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습부진학생 숫자를 묻는 전화에 읽기나 덧셈을 못하는 학생 수를 묻는 줄 알고 0명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2단계 조작은 일선 초등학교에서 벌어졌다. 임실교육청은 지난 1월 14일 '학습부진학생 책임지도 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제출'이란 제목의 공문을 각 초등학교에 보냈다. 다음 날인 15일까지 일제고사 결과를 보고해달라는 내용이었다.

방학 중 '하루 사이에 보고하라'는 초고속 지시에 따른 문서 작성 과정에서 일부 수치 조작 또는 부실작성이 발생했다. 지난 19일 사회공공성 공교육강화 전북네트워크가 공개한 이 지역 9개 초등학교 보고 공문에 따르면, 2개 학교를 뺀 나머지 7개 학교는 조작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몇몇 학교는 전체 학생이 '보통학력 이상'이라는 내용을 써 보냈고, 어떤 학교는 아예 빈칸인 채로 '백지 공문'을 발송했다. 또 공문 발송을 빼먹은 학교도 있었다.

이 지역의 한 교사는 "기초학력 미달학생이 없는 사실만 확인하고 나머지는 임의로 써서 보냈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교장이 '우리 학교는 기초학력 미달학생 없어야 한다는 말을 지난 해 10월 시험 전후에 여러 번 해 부담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교사는 "당초 임실교육청으로부터 성적산출을 위한 엑셀프로그램을 전달 받지 못해 임의대로 채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3단계 임실교육청, 4단계 전북도교육청... 그리고 '교과부'

 임실교육청이 지난 1월 14일 이 지역 15개 학교에 보낸 일제고사 결과 보고 공문.
 임실교육청이 지난 1월 14일 이 지역 15개 학교에 보낸 일제고사 결과 보고 공문.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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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문을 같은 달 15일 받아든 임실교육청은 백지공문과 같은 명백한 오류가 있음에도 일체의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백지 공문을 보낸 G초 교감은 "나중에서야 빈칸 공문을 보낸 사실을 알았는데, 이와 관련해 교육청의 전화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임실교육청이 벌인 3단계 조작 또는 조작방조 행위였다.

4단계 조작 또는 묵인행위 장본인은 전북도교육청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2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임실교육청은 1월 14일 14개 초등학교로부터 전자문서로 성취도 평가 결과를 받아 성적 통계를 작성, 도교육청에 '수정 보고'했으나 도교육청 담당 장학사는 18일 이를 확인하고서도 상급자나 교과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교육청 차원에서도 조작 또는 묵인행위가 벌어졌음을 의심케 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임실 '성적조작의 비결'이란 드라마는 총체적인 '막장' 행위 속에서 벌어졌다. 도교육청, 지역교육청, 학교에 이르기까지 조작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이 같은 총체적인 조작 탓에 교과부와 언론들도 혼란을 겪었다. 이 지역 전체 학생 254명 가운데 시험 응시자가 240명 또는 250명으로 들쭉날쭉했다. 조작 탓에 응시자 수도 알 수 없는 해괴한 모습이 연출된 탓이다.

다른 시도교육청도 이 같은 사례에서 자유로울 가능성이 특별히 없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지적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전교조는 23일 오전 정부중앙청사 앞 기자회견에서 다음처럼 주장했다.

"이번 '일제고사 성적조작 사건'의 원인은 이명박 정부의 속도전이며, 그 선봉은 교과부다. 애초 5%의 표집학생 성적만 통계 처리하겠다는 것이 교과부의 방침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12월 말 전수 통계로 변경되고, 각 학교에 며칠 만에 모든 학생의 성적 결과를 보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무슨 이유로 갑자기 5% 표집 통계가 100% 전수 통계로 바뀌었는지 어느 누구도 해명하지 않고, 이 엄중한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는 교과부 관료는 한 명도 없다."


#임실 조작#일제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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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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